[프롤로그]니체가 찾던 진정한 위버멘쉬, 레슬러 플라톤

by 레슬러 플라톤

우리는 플라톤을 하얀 수염을 늘어뜨리고, 손가락으로 하늘(이데아)을 가리키는 근엄한 노학자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시간을 2,500년 전 아테네의 뜨거운 태양 아래로 되돌려본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모습의 청년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의 본명은 아리스토클레스. 귀족 가문 출신의 이 청년은 도서관이 아닌 흙먼지 날리는 레슬링 경기장에 있었습니다. 떡 벌어진 어깨와 두꺼운 가슴, 상대 선수를 단숨에 메치는 폭발적인 힘. 그의 레슬링 코치는 이 건장한 청년을 보며 이렇게 불렀습니다. "어이, 플라톤(Platon)! (어깨가 넓은 녀석!)" 그렇습니다. 서양 철학의 아버지 플라톤은 고대 그리스 4대 제전 중 하나인 '이스트미아 게임'에 출전해 우승까지 거머쥐었던, 진짜 엘리트 레슬링 선수였습니다.


괴물과 약골 사이, 교실에서 마주한 플라톤의 경고

평생 몸으로 부딪치며 한계를 넘어본 경험 때문이었을까요?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인간 교육의 핵심으로 '균형'을 집요하게 강조합니다. 그는 수호자 계급을 기르기 위해 두 가지 필수 과목을 제시합니다. 하나는 신체를 위한 체육(Gymnastics)이고, 다른 하나는 영혼을 위한 시가(Music)입니다. 플라톤은 이 두 가지의 균형이 무너질 때 인간은 망가진다고 경고합니다. 체육만 하고 인문학을 모르면 힘만 앞세우는 '야만인'이 되고, 반대로 책만 읽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고난을 견디지 못하는 '유약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10년 차 체육 교사로서 매일 운동장에서 이 경고가 여전히 유효함을 목격합니다. 교실에서는 우등생이지만 운동장에서는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고 쉽게 포기해 버리는 아이들을 봅니다. 반대로, 체력은 넘쳐나지만 규칙과 배려를 배우지 못해 거친 힘을 함부로 휘두르는 아이들도 봅니다. 플라톤의 표현대로라면 한쪽은 너무 '유약'하고, 한쪽은 너무 '거친' 상태인 것이죠.

그에게 체육은 단순히 근육을 키우는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영혼의 기개(Thumos)를 단련하여, 삶의 시련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단단한 의지를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즉, "가장 완벽한 음악가는 악기를 잘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문무의 조화를 통해 자신의 영혼을 아름답게 조율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레슬러 플라톤의 결론이었습니다.


니체의 오해, 그리고 위버멘쉬

먼 훗날,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플라톤을 맹렬히 비판합니다. 니체는 플라톤이 생명력 넘치는 현실(신체/대지)을 부정하고, 가짜 저세상(이데아)으로 도망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인간이 자신을 끊임없이 극복하고 창조하는 존재, 즉 '위버멘쉬(Übermensch, 초인)'가 되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위버멘쉬는 운명을 사랑하며(Amor Fati), 강인한 신체와 권력에의 의지를 통해 삶을 긍정하는 존재입니다. 니체에게 신체는 "커다란 이성"이었고, 정신은 그 신체의 장난감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니체가 놓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맨 '신체를 긍정하고 자신을 극복하는 인간'의 표본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저는 감히 말하건대, 니체가 비판했던 늙은 철학자 플라톤이 아니라, 아테네의 링 위에서 땀 흘리던 청년 '레슬러 플라톤'이야말로 니체가 꿈꾸던 위버멘쉬의 원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서

오늘날 우리는 어떤 모습입니까? 어떤 이는 헬스장에서 거울 속 근육에만 집착하며 생각 없는 야만인이 되어가고, 어떤 이는 모니터 앞에서 거북목을 한 채 건강을 잃어버린 유약한 지식인이 되어갑니다. 진정한 성장은 몸과 마음이 함께 나아갈 때 이루어집니다. 무거운 바벨을 들어 올리며 한계를 시험하는 것은 니체의 '자기 극복'이며, 흐르는 땀을 닦으며 삶의 태도를 고민하는 것은 플라톤의 '영혼 조율'입니다.

우리는 '레슬러 플라톤'을 다시 소환해야 합니다. 강인한 신체에 단단한 사유를 채워 넣는 것. 그리하여 어제보다 더 나은 나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현대인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위버멘쉬의 길입니다.

저는 이 브런치를 통해 그 잃어버린 조화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때로는 격렬한 땀 냄새로, 때로는 고요한 사색으로 채워질 <레슬러 플라톤의 철학 체육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자, 이제 운동화 끈을 묶고 사유의 링 위로 올라갈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