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질 듯 기울여야 온전히 돌 수 있다

쇼트트랙과 니체, 그리고 위기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by 레슬러 플라톤

얼음판 위, 가장 아슬아슬한 순간의 미학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이 개막한 것을 알고 계신가요? jTBC와 공영방송 3사의 중계권 갈등으로 인해 jTBC가 단독으로 동계 올림픽을 중계하다 보니,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매우 큰 스포츠 축제임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이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조차 잘 알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하지만 4년간 땀 흘린 국가대표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많은 분들이 동계 올림픽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동계 올림픽에는 겨울 스포츠의 꽃이라 불리는 수많은 종목이 있지만, 우리 심장을 가장 쫄깃하게 만드는 건 단연 쇼트트랙입니다. 수많은 금메달이 나오는 우리나라의 효자 종목이기도 하지요.

쇼트트랙을 보면 직선 구간을 폭발적인 스피드로 질주하던 선수들이 코너(곡선 구간)에 진입하는 순간, 숨을 죽이고 화면을 응시하게 됩니다. 그들은 일제히 몸을 안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입니다. 빙판과 몸의 각도가 거의 수평에 가까울 정도로 아슬아슬합니다. 왼손 끝은 얼음 바닥을 짚고, 날카로운 스케이트 날 하나에 온 체중을 실은 채 위태롭게 회전합니다.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펜스에 처박힐 것만 같은, 보는 사람마저 불안하게 만드는 자세입니다.

여기서 문득 궁금증이 생깁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넘어지지 않기 위해 몸을 꼿꼿이 세우려 합니다. 그런데 왜 쇼트트랙 선수들은 가장 위험해 보이는 자세를 취해야만 가장 안전하게 코너를 돌 수 있는 걸까요?


운동역학의 대답: 원심력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기울기'다

그 비밀은 바로 '원심력'에 있습니다. 코너를 돌 때 우리 몸은 회전하는 바깥쪽으로 튕겨 나가려는 거대한 힘을 받습니다. 속도가 빠를수록, 회전 반경이 작을수록 이 힘은 더 강력해져서 우리를 트랙 밖으로 거칠게 밀어내려 합니다.

이 강력한 원심력과 싸워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힘으로 버티며 꼿꼿이 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원심력이 작용하는 반대 방향, 즉 안쪽으로 무게중심을 과감하게 무너뜨려야 합니다. 이를 '구심력'이라고 합니다.

빙판 위의 물리학은 냉혹합니다. 겁을 먹고 몸을 세우는 순간, 균형은 깨지고 선수는 여지없이 튕겨 나갑니다. "쓰러질 각오로 기울여야, 쓰러지지 않고 회전할 수 있다." 이것이 쇼트트랙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첫 번째 역설입니다.


image.png 우리나라 쇼트트랙 선수들 화이팅!


인생의 코너: 우리는 왜 뻣뻣하게 구는가

트랙 위의 선수들처럼, 우리 인생에도 예고 없이 가파른 '곡선 구간'이 찾아옵니다. 갑작스러운 실직, 믿었던 사람과의 이별, 건강의 악화, 혹은 노력했던 시험의 실패 같은 것들입니다. 이때 우리는 삶의 궤도 밖으로 밀려날 것 같은 엄청난 원심력, 즉 위기감을 느낍니다.

문제는 이때 가지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많은 사람이 위기 앞에서 본능적으로 몸을 뻣뻣하게 세웁니다.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일어날 리 없어"라며 현실을 부정하거나, "나는 약해 보이면 안 돼"라며 자존심을 꼿꼿이 세우고 버팁니다. 하지만 유연함을 잃은 뻣뻣한 자아는 외부의 충격을 흡수하지 못합니다. 결국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져 내리거나, 삶의 궤도에서 튕겨 나가고 맙니다.

가장 위험한 순간에 가장 뻣뻣하게 구는 것. 그것이 우리가 위기 앞에서 자주 범하는 실수입니다.


니체와 함께 코너 돌기: '아모르파티'와 손 짚을 용기

이 지점에서 우리는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아모르 파티(Amor Fati)", 즉 "네 운명을 사랑하라"라고 외쳤습니다. 이 말은 닥쳐온 불행에 체념하고 순응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닥친 고난과 운명을 적극적으로 껴안고, 그것을 삶의 동력으로 삼으라는 전투적인 주문입니다.

쇼트트랙 선수가 코너를 돌기 위해 빙판에 손을 짚듯, 우리도 위기의 순간에는 자세를 낮추고 차가운 빙판, 즉 현실과 접촉해야 합니다. 나의 약함을 인정하고, 고통의 방향으로 몸을 맡기는 것. 그것은 비굴함이 아닙니다. 코너를 돌파하기 위한 가장 역동적이고 전략적인 자세입니다.

나를 밖으로 밀어내는 고난이라는 원심력이 강할수록, 안으로 파고드는 의지라는 구심력도 강해야 합니다. 그 두 힘이 팽팽하게 맞설 때, 비로소 우리는 넘어지지 않고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지금 흔들리고 있다면, 잘 돌고 있는 것이다

혹시 지금 인생의 가파른 코너를 지나고 계신가요? 몸이 한쪽으로 쏠리고,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불안함에 잠 못 이루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지금 불안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건, 그만큼 치열하게 코너를 돌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튕겨 나가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는 당신의 모습은, 올림픽 결승전을 치르는 선수만큼이나 아름답고 처절합니다.

그러니 꼿꼿함을 버리고 과감하게 기울이세요. 그 아슬아슬한 기울기만이 당신을 새로운 직선 구간으로 데려다줄 것입니다. 쇼트트랙 선수처럼, 때로는 넘어질 듯한 자세가 가장 강한 자세입니다.

이 코너가 끝나면, 당신을 기다리는 시원한 직선 질주가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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