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언더독'의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이미 바디와 지미 버틀러가 증명한 밑바닥의 반란

by 레슬러 플라톤

우리는 왜 '언더독(Underdog)'의 반란에 열광하는가

스포츠 세계에는 영원불멸한 흥행 코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언더독(이길 확률이 적은 약자)의 반란'입니다.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천재가 1등을 하는 이야기는 '감탄'을 자아내지만, 가슴을 울리는 '감동'은 없습니다. 골리앗이 다윗을 이기는 건 너무나 당연해서 하품이 나오기 때문이죠. 하지만 가진 것 없는 다윗이 돌멩이 하나로 거인을 쓰러뜨릴 때, 우리는 주먹을 불끈 쥐고 눈물을 흘립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대부분은 골리앗이 아니라 다윗이기 때문입니다. 금수저보다는 흙수저가 많고, 천재보다는 범재가 많은 세상. 우리는 매일 현실이라는 거인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약자가 흘린 땀방울이 강자의 타고난 재능을 뒤집는 순간, 우리는 그 모습에서 우리 자신의 가능성과 희망을 봅니다.

여기, 인생의 스코어보드가 0:10으로 뒤진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권을 거부한 두 명의 '언더독'이 있습니다.


제이미 바디: 뜨거운 오븐 앞의 노동자, 전자발찌를 찬 스트라이커

프리미어리그의 한 획을 그었던 공격수 제이미 바디. 하지만 시계를 조금만 뒤로 돌려 그의 20대 초반을 들여다보면, 그곳엔 화려한 조명 대신 시커먼 공장의 매연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는 의료용 부목을 만드는 탄소 섬유 공장의 노동자였습니다. 1,000도가 넘는 뜨거운 오븐 앞에서 하루 12시간씩 무거운 자재를 들어 나르며 최저 시급을 받았습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일을 그만두면 당장 생계가 막막했습니다. 그에게 축구는 일이 끝난 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나가는, 관중도 없는 8부 리그의 취미 생활일 뿐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인생 최악의 사건이 터집니다. 청각 장애가 있는 친구가 괴롭힘 당하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해 주먹을 휘두르다 폭행죄로 기소된 것입니다. 법원은 그에게 6개월간 전자발찌 착용과 오후 6시 이후 통행금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발목에는 죄수처럼 전자발찌를 차고, 경기를 뛰다가도 오후 6시가 다가오면 통금 시간을 맞추기 위해 교체 사인을 보내고 펜스를 넘어 집으로 도망쳐야 했던 그 비참함을. 사람들은 그를 보며 수군거렸습니다. "저 인생은 이제 끝났어. 공장이나 다니면서 사고나 치겠지."

하지만 바디는 그 공장 바닥의 기름때와 사람들의 비웃음을 연료로 삼았습니다. "두고 봐라. 내가 여기서 썩을 놈인지." 그는 미친 듯이 달렸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8부 리그 진흙탕에서 죽기 살기로 골을 넣었고, 5년 뒤 그는 공장 작업복 대신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인 프리미어리그의 선수로서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창단 132년 만에 레스터 시티를 우승시키며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습니다. 그 능력을 인정받은 바디는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으로 월드컵에까지 나가게 됩니다. 전자발찌를 찼던 문제아가 나라를 대표하는 축구선수가 된 것이죠.


제목 없는 프레젠테이션 (3).jpg 제이미 바디(좌)와 지미 버틀러(우)


지미 버틀러: "네 얼굴이 싫어"라며 버려진 소년

농구 코트 위로 시선을 돌려볼까요? NBA 최고의 '악바리'이자 클러치의 사나이, 지미 버틀러의 시작은 더욱 잔혹했습니다. 그가 고작 13살이던 어느 날, 텍사스의 집 현관에서 친어머니는 믿을 수 없는 말을 내뱉습니다. "네 꼴이 보기 싫다. 나가라."

그렇게 그는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길거리로 내쫓겼습니다. 춥고 배고픈 노숙자 생활. 며칠은 이 친구 집에서, 며칠은 저 친구 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소파를 전전했습니다. 어린 소년에게 세상은 지옥 그 자체였을 겁니다. 가장 사랑받아야 할 부모에게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으니까요.

어려운 환경에서도 농구에 대한 끈을 놓지 않은 그였지만, 고등학교 때까지도 무명 중의 무명이었습니다. 팔은 짧았고, 운동능력은 평범했습니다. 하지만 길거리 생활은 그에게 '생존 본능'을 심어주었습니다. 대학 시절, 미셸 램버트라는 친구 어머니의 도움으로 간신히 정착하게 된 그는, 재능 대신 '광기 어린 노력'을 선택했습니다.

NBA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꼴찌인 30순위로 지명됐을 때,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새벽 4시에 체육관 불을 켜고, 남들이 쉴 때 한 발 더 뛰었습니다. 훗날 인터뷰에서 기자가 불우했던 과거에 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과거를 불쌍하게 여기지 마세요. 그 끔찍했던 일들이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었으니까요. 나는 내 인생을 사랑합니다."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던 그 소년은 이제 연봉 600억 원을 받는 슈퍼스타가 되어, 자신을 비웃던 운명에게 실력으로 복수했습니다.


바닥을 쳐본 공만이 가장 높이 튀어 오른다

철학자 니체는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비유를 하나 던집니다.

"나무가 높이, 빛을 향해 뻗어 나가려 할수록, 그 뿌리는 더 깊게 땅속으로, 어둠 속으로, 심연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우리는 흔히 화려한 가지와 풍성한 열매, 즉 '성공'만을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니체는 그 성공을 지탱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땅속, 차갑고 축축한 흙을 뚫고 들어간 '뿌리의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뿌리가 어둠을 견디지 못하면, 나무는 결코 태양을 향해 높이 자랄 수 없습니다.

제이미 바디가 견뎌낸 1,000도의 오븐 열기, 지미 버틀러가 견뎌낸 거리의 냉기. 그것은 단순히 불행한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프리미어리그와 NBA라는 가장 높은 곳으로 뻗어 나가기 위해, 가장 깊은 곳으로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었습니다.

니체는 또한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강해진다'는 것은 단순히 맷집이 좋아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통을 통해 삶을 사랑하는 태도, 즉 '아모르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를 배우게 된다는 뜻입니다.

금수저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들은 '패배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자라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디와 버틀러 같은 '밑바닥 출신'들은 이미 잃을 것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운명을 온몸으로 껴안았습니다. 그들에게 결핍과 배고픔은 저주가 아니라, 누구보다 지독하고 끈질긴 승부사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축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물리학적으로 공은 바닥에 세게 부딪힐수록 더 높이 튀어 오릅니다. 이것을 우리는 '탄성'이라고 부릅니다. 세상이 그들을 '실패자'라고 낙인찍으며 바닥으로 내동댕이칠 때, 그들은 부서진 것이 아니라 그 반동을 이용해 더 높이 튀어 오를 힘을 응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강함은 온실 속이 아니라, 비바람 치는 광야에서 만들어집니다. 그것이 바로 바닥을 쳐본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위대한 무기입니다.


당신이라는 공은 아직 가장 높이 올라가지 않았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현실이 제이미 바디의 공장 바닥처럼 차갑고, 지미 버틀러의 거리처럼 외로울 수 있습니다. 남들은 저만치 앞서가는데 나만 실패한 것 같아 불안할 것입니다.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느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패배자가 아니라, 아직 뒤집을 기회를 노리고 있는 '언더독'일뿐입니다. 인생은 속도전이 아닙니다.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이 시련은 추락이 아니라, 더 높이 튀어 오르기 위해 바닥을 꾹 누르고 있는 시간입니다. 제이미 바디는 운동선수로서 황혼기에 접어들어가는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빛을 봤고, 지미 버틀러도 서른이 넘어서야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당신의 전성기, 당신 인생이라는 공은 아직 가장 높은 곳까지 튀어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당신은 결코 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멈추지 말고 달리세요. 가장 위대한 반란은, 언제나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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