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미안해."
오늘도 나는 남편의 버스를 탑니다.
내 남편은 버스 기사입니다.
내 마음이 아프기 전까지는
내가 남편의 버스를 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남편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어느 날 남편은 회사 사장님께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사장님, 제 아내가 몸이 좀 아파서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운행하는 버스에
아내를 태우고 다녀도 될까요?"
사장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말했습니다.
"그래요. 혼자 집에 있는 것보다 낫겠네요.
대신 운전은 늘 안전하게 하세요."
그날 이후 나는 남편의 버스를 타게 되었습니다.
버스 맨 뒤 창가 자리에 앉으면
운전석 위 작은 룸미러가 보입니다.
남편은 가끔 그 거울을 통해
버스 안을 살핍니다.
그리고 아주 잠깐
내가 앉아 있는 자리도 바라봅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괜히 창밖을 보는 척합니다.
아침마다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서 있습니다.
버스 문이 열리면 사람들은 바쁜 얼굴로 올라탑니다.
남편은 늘 같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안녕하세요."
하지만 어떤 날은
인사를 받아주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어느 날 한 승객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왜 이렇게 늦어요? 운전 좀 똑바로 해요!"
또 어떤 날은 버스 안에서
큰 소리가 나기도 합니다.
"기사님, 졸음운전 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맨 뒤 자리에서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봅니다.
남편은 잠시 고개를 숙이며 말합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운전대를 잡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이 조금 아픕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버스를 타는 승객들이 우리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사모님 오늘은 좀 괜찮으세요?"
"기사님, 사모님 잘 챙기셔야 합니다."
어떤 분은 웃으며 인사를 하고
어떤 분은 따뜻한 말을 건네고 내립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버스는 잠시 차고지에 멈춥니다.
남편은 내 옆에 앉아
아픈 아내와 함께 점심을 먹습니다.
도시락을 나누어 먹을 때도 있고
근처 식당에서 따뜻한 국 한 그릇을 먹을 때도 있습니다.
그 시간만큼은
버스 기사도 아니고
아픈 아내도 아닙니다.
그저
남편과 아내입니다.
어느 비 오는 날이었습니다.
버스 창문에는 빗방울이 조용히 흘러내리고
사람들은 젖은 옷을 털며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그날도 버스 안에서는
잠깐 큰 소리가 났습니다.
"기사님, 좀 빨리 갑시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차분하게 운전대를 잡고 있었습니다.
버스가 어느 정류장에 멈췄을 때
한 할머니가 천천히 올라왔습니다.
남편은 몸을 살짝 앞으로 숙이며 말했습니다.
"천천히 올라오세요."
할머니는 버스비를 내고
잠시 남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기사 양반."
남편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아까 어떤 사람이 화내는 거 봤어요."
잠시 버스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할머니는 다시 말했습니다.
"그래도 기사 양반은 참 친절하네.
이 버스 타면 마음이 편해."
남편은 잠시 웃으며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버스 문이 닫히고
버스는 다시 빗길을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맨 뒤 창가 자리에서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봅니다.
운전석 위 작은 룸미러에
남편의 눈이 잠깐 비쳤습니다.
그리고 아주 잠깐
내가 앉아 있는 자리도 바라봅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내 남편은
그저 버스를 운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하루를 싣고
도시의 길을 달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아픈 아내의 하루도
조용히 함께 싣고 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남편의 버스에 올라탑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버스를 타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버스에는 언제나
나를 먼저 태워 주는 기사가 있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