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된 우울증으로 인해 기억나는 것이 많이 없는데, 그래도 회상하자면 대략 열 살 때부터 또래와는 굉장히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고 자주 생각했던 것 같다. 단순히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같이 수다를 떨면서 당시에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던 코팅텍을 공유하지 않고, 또 점심시간에 밥 먹은 뒤 운동장을 빙글빙글 돌지 않고 혼자 책만 주구장창 읽다가 사춘기가 빠르게 온 것은 아니다. 우리 집은 부모님의 규정상 학교 정규 수업이 끝난 뒤에는 바로 집에 돌아와야 했는데, 그래서 나는 또래 사이에서 ‘엄한 부모님 때문에 우리들이랑 같이 못 노는 애’였기 때문이다.
자식들 교육은 잘 시키고 싶다는 공통점을 가졌지만 성향이 다른 아버지와 어머니, 두 살 어린 동생과 나 사이에서 일어난 이야기는 너무 슬프고 또 어디부터 문제였으며 어디부터는 문제가 아니었을지 스스로 재단할 수 없으니 하지 않겠지만, 아무튼 그런 가정이라 고등학교에 가기 전까지는 모범생이었고 그만큼 외로움도 커졌다.
돌이켜보면 영화를 고르는 취향도 전부 여기에서 기인했던 것 같다. 나를 외롭게 하지 않는 영화, 설령 영화를 보고 나온 뒤의 나는 혼자이더라도 등장인물들은 외롭지 않고 새롭게 삶을 시작하거나 새롭게 만난 누군가가 언제나 곁에 있는 그런 것들.
<이터널 선샤인>이나 <로봇, 드림>처럼 서로를 거의 영구에 가깝게 기억하거나 사랑할 거라는 예감, <미션 임파서블>이나 <제이슨 본> 시리즈처럼 완전한 원에 가까운 결말이 나지는 못하더라도 주인공이 행복할 거라는 암시, <박물관이 살아있다>처럼 앞으로 모두가 행복할 거라는 예고를 강하게 주는 영화들.
영화를 보고 느끼는 감상은 사람들마다 다 다르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이런 영화들은 그랬다. 아마 이런 영화들 사이에 액션 영화가 유독 많이 섞여있을 텐데, 이건 아마 등장인물들의 고난은 그 영화 내에서 대부분 해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된 우울증을 언급했으니 쓰는 건데, 사회인이 되어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던 사이에 정신과에 가서 현재는 약물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완화되었다는 진단을 받았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단지 내가 정말로 우울증이 오랫동안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 돌이켜보니 그 때문에 흐릿해졌거나 잃어버린 시간이 꽤 길다는 사실만이 유감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잠이 너무 오지 않아서 매일 새벽 3~4시에 잠들게 되는 것이 알고 보니 우울증 때문이었다는 것도.
나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 꽤 어렵-다고 스스로 진단을 했고 이건 우울증이 있는 사람의 특성이 아니라 어디만 좀 아프면 바로 인터넷을 찾아보는 현대인의 특성이다-다는 특징을 알게 된 이후로 지금까지 봐온 영화나 소설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기억에 깊이 남은 것은 엄청난 액션을 보여준 액션 영화뿐이었고 예매 기록도 전부 그런 쪽이었다. 그 이후로 다른 장르의 영화를 진지하게 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누군가가 ‘그렇다면 이제는 감정을 잘 느끼게 되었겠네요?’ 라고 물어보면 면접 때나 짓는 사회적인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데, 운명이란 것은 내게 너는 모르는 사이에 감정 소모를 하지 않는 것들만 보고 싶어했다는 것을 알려주기만 하고 그걸 잘 하는 법은 하나도 안 알려줘서 여전히 허우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계속 영화를 보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동안 집과 학교만을 오가며 채우지 못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영화로나마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싶다는 것도 있고, 이렇게 계속 보다 보면 어떻게든 대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직 내 우울증과 그로 인해 생긴 질환이 완치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OTT가 아닌 영화관을 찾게 되지만(아직 혼자 2시간 정도 되는 영화를 집에서 가만히 보기에는 할 일도 많고 광고 메시지가 나를 너무 많이 찾는다.) 그럼에도 그렇게 외출하면서 우연히 같은 영화를 봤거나, 그로 인해 알게 된 사람들이 알려준 것이 꽤 많다.
어차피 나는 계속 나 자신과 살아가야 하는데, 영화를 이만큼 봤는데도 감정을 느끼기 어려운 게 뭐 어떻단 말인가. 어차피 사는 동안 영화는 계속해서 나올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