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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긋 May 31. 2024

떡볶이도 먹고 싶고, 브런치 작가도 되고 싶어.

-나의 발견

 성인이 되고 나서 글을 써 본 경험은 일기 이외에 별로 생각나질 않는다. 교육청에서 수업성찰문을 내면 문화상품권을 준다고 해서 제출을 했었다. 코로나 시절 OO광역시도시철도공사에서 주관하는 "내 인생의 책"이라는 주제로 독후감을 써서 얼마간의 원고료도 받았고, 좋은 기회로 해외연수를 갔을 때 에세이를 써서 30달러의 상금을 받았던 것이 거의 다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결과적으로 돈이 뒤따라오는 글만 썼던 건 우연이라 믿고 싶다. 나중에 그 글들이 책자의 일부로 나와서 나를 좀 뿌듯하게 만들었던 희미해진 기억도 더듬어진다.  

   

 갑자기 왜 나는 글을 쓰고자 하는가? 어떠한 것에 이끌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가? "작가"라는 거대한 단어와 평생 상관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나로서는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무의식 속에서는 한번쯤 상상하고 생각해 보았을 법한 질문에 답을 한번 찾아 나서기로 한다. 그 명확한 시작은 교육연수원에서 주관하는 "성찰과 치유의 글쓰기" 연수에서 강사님이 왜 글을 쓰고자 하는지에 대한 10분 글쓰기를 해보라고 했을 때부터이다. 성찰과 치유가 필요한 40대 중반의 길목에 서있는 내가 이 연수의 제목에 이끌림을 느낀 건 당연한 거였다. 나 같은 선생님들이 많았던 건지 연수가 오픈이 되자마자 30초 만에 마감되었다는 연구사님의 말씀에 마음 한 구석에서 살짝 희열도 느껴졌다.   

   

 글을 쓰려고 하는 다양한 계기가 있겠지만 이런 생각은 노화가 시작된 것부터 자연스럽게 발현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30대 중반 이후로 노화가 시작된 것 같지만 요즘 들어서 부쩍 노화를 인지하고 있다. 아니, 인지할 수밖에 없다. 점점 늘어나는 흰머리, 짙어지는 기미, 이제 귀엽지만은 않은 뱃살과 예전 같지 않은 체력 등을 겪으며 우울감에 빠졌던 시기를 몇 해 전에 보냈었다. 내 나이 40이었다. 평소 뭐든지 의욕이 넘쳤던 내가 우울감을 느끼고 일상생활에서 즐거움을 하나도 찾지 못했던 상황을 나 자신도 처음 겪어본 터라 적잖이 당황을 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노화가 진행되고 있을 테지만 우울한 기분이 덜 드는 건 내가 노화에 적응을 한 것도 있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있는 과정이라 나름의 해석을 하고 있어 따로 흰머리를 가리기 위한 염색도 하지 않는다. 이런 나를 존재만으로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고, 더 나아가 발견해 주고 탐구해 주는 과정에서 글쓰기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내 복잡한 머릿속에 스쳤고 결국 살아남았다.   

   

 나를 더 사랑해 주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가볍지만 진지한 탐색, 연구, 고찰, 관찰, 발견 따위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상황에서의 특별한 감정이나 생각은 왜 드는 건지 등에 대한 답을 내기 위해서 나 자신을 진지하지만 유쾌하게 들여다보고 싶고, 그 과정을 글로 남기는 것을 통해 연구를 하면 어느 정도 나에 대해서 결론이 날 것이다. 평소 자존감과 자존심은 그렇게 높거나 강하지는 않지만 자기애는 엄청 강한 나의 모습과 잘 어울리는 이유다. 뭔가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거리낌이 없고, 생각하고 원하는 것은 당장에 시도를 하는 나의 원동력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에서 나온다고 본다. 원래 나는 생각과 걱정이 많은 인간이지만 그 안에 유쾌함과 B급 정서를 애정한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하는 어떤 작가의 말이 내 맘속에 오랫동안 남았다. 진지함 속에 유쾌함을 찾는 습관은 내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한없이 힘들다면 힘든 인생의 과정에서 그 유쾌함이라는 무기는 정말 위대하다.      


 앞으로 글을 쓰기 위한 긴 여정에 이제 한 발을 내디뎠다. 목적지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일단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한 글자라도 쓰면 뒤로 가는 일은 없을 거라 본다. 마음에 안드는 문구를 왕창 지운다 하더라도 말이다. 지우는 것조차 그 여정의 과정으로 본다. 공은 절대로 뒤로 가지 않고 조금이라도 앞으로 무조건 간다는 골프 코치님의 말도 갑자기 떠올라 작은 웃음이 지어지며 또 한번의 깨달음을 얻는다.   

   

 언감생심! 작가가 되어 책을 내고 싶다는 마음도 쑥스럽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꿈틀대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글쓰는 행위를 통해서 나를 발견하는 일이 재밌을 것 같아 오랜만에 설렘을 느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도통 뭐가 즐겁거나 설레는 일이 없는 일상에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 듯 마음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조금 상기된다. 내가 앞으로 잘할 수 있을지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떨림이 오래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욕심내지 않고 하루에 한 줄이라도 나에 대해 오롯이 생각하고 글을 쓸 때면 소소하게 행복할 것 같다. 이토록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 우주에 또 없을 거라 확신한다.  

    

 오늘도 나는 내가 깎은 과일 중 제일 이쁘고 맛난 부분을 나에게 먼저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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