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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긋 May 31. 2024

아, 그것은 부끄러움이었구나!

 올해 학교를 옮기면서 5학년 1반 담임을 맡게 되었다. 지난 몇 해동안 개인플레이를 주로 하는 교담을 했던 터라 동학년이라는 단어가 조금은 낯설게 다가왔다. 더욱이 동학년으로 모인 우리 4명은 다 새롭게 발령을 받은 전입 동기들로서 다들 바쁘게 학교에 열심히 적응하느라 각자 나름대로 고군분투 중이었다. 따라서 교직원 문화체험의 날이 3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있었지만 이렇게 문화체험을 하러 나가는 것은 이번 5월이 처음이었다. 오랜만에 동학년 선생님들과 교직원 문화체험을 나가는 것에 직접 촌스럽게 티는 내지 않았지만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설렘을 느끼고 있었다. 전날부터 어디를 가야 하는지 검색을 하고 우연히 홍차 이야기가 나와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5학년 연구실이 아닌 예쁜 카페에서 우리는 드디어 다 함께 모일 수 있었다. 이런 게 바로 힐링이구나. 일상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행복감과 감사함을 느끼는 이렇게 쉬운 여자인 나 자신을 보며 내가 한번 또 반한다. 하지만 더 반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웃음이 많고 교장선생님의 성대모사  "사랑합니다아~"를 잘하는 3반 선생님이었다.


 4반 선생님이 특별실 열쇠 복사를 맡기느라 카페에 좀 늦게 오는 동안 우리 아줌마 셋은 수다를 잠시라도 쉴 수 없었다. 직원분의 추천을 받아 이름도 어려운 '웨딩임페리얼', '브렉퍼스트블렌드' 홍차와 카페 사장님이 직접 만드신 수제 애플파이를 1인당 1조각씩 야무지게 주문하고 나서 본격적인 폭풍 수다가 시작되었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2반 선생님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2반) 3반 선생님! 취미 있어요?

  (1반) 3반 선생님, 캠핑 좋아하잖아요.

  (3반) 응, 캠핑 좋아해요.

  (2반) 아, 맞다! 이런 말해도 되나?

  (1반) 왜? 뭔데 뭔데?

  (2반) 수련활동 공문 찾아보려고 3반 선생님 이름으로 검색을 했는데 엄청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1반) 왜? 뭔데 뭔데?


  2반 선생님이 무엇을 말할지 이미 알고 있다는 3반 선생님의 표정은 나의 궁금증을 더 키우기에 충분했다.


(3반) 아, 그거요?

(2반) 3반 선생님, 유튜버예요.

(1반) 와, 진짜요? 채널명이 뭔데 뭔데?


 채널명을 말하는 2반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유튜브에서 검색을 해보았다. 와우! 내 예상보다 구독자수가 10배는 많았다. 그냥 유튜버도 아니고 몇 만의 구독자를 보유한 분이라니 갑자기 3반 선생님이 달리 보였다. 그동안 일 처리 능력이나 학급 경영에서 슬쩍슬쩍 느낄 수 있었던 3반 선생님의 명석함과 재주에 대한 나의 촉은 틀리지 않았다.


(3반) 아유, 별거 아니에요. 아이 키우면서 소소하게 일상 올린 거예요. 제가 둘째 가졌을 때 자궁경부 길이가 26주 때 2cm도 안되어서 24시간 중 23시간을 누워 있어야 했어요. 그때 하도 무료해서 유튜브 시작한 거고, 요즘에는 동영상 별로 올리지 않아요.

(1반) 와, 대박!

(3반) 수익신청해 놔서 겸직신청을 해놓은 것뿐이에요. 아, 그걸 다른 분들도 공문에서 볼 수 있구나. 개인정보라서 안 보이는 줄 알았는데...

(1반) 와~ 수익이 얼마나 나와요?

(3반) 요즘에는 동영상도 안올리고 그래서 몇 만 원 안돼요. 근데 한창 때는 100만 원 넘게 받은 적도 있어요. 그리고 육아 용품 협찬이 많이 들어오는 데 공무원이라 하나도 받질 못했어요.

(2반) 왜 요즘은 안해요? 계속 하지, 너무 아깝다.

(3반) 이제 애들도 크고, 해외에서도 연락 오고 그러는 게 좀 그래서 이제는 안하고... 어쨌든 이 채널도 점점 수익이 0으로 수렴할 거예요.

(1반) 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나 소름 돋았어요. 대박!!

(3반) 별거 아니에요.


 3반 선생님의 별거 아니라는 반응은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동안 내가 딴 자격증과 취미 생활을 얼마나 떠벌리고 다녔는지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확 올라왔다. 재야의 숨겨진 고수는 겸손함이 생활에 묻어있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데 반해 하수인 나는 나의 지식, 생활, 경험담을 얼마나 자랑 아닌 자랑을 하고 다녔던가? 물론 나는 없는 사실은 말을 하지 않지만 진짜 능력 있는 사람은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나 자신이 자랑하기 좋아하는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다. 평소 관심 있는 내용들을 내가 먼저 말을 하며 나는 이런 것도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혼란스러운 이 감정은 무엇일까?


아, 그것은 부끄러움이었구나!


 사람마다 성향, 성격, 생각하는 게 다 달라 말하는 거,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기도 싫어하기도 한다. 나는 내 나름대로 겸손하다고 생각했는데 얼마나 오만함의 극치를 보여준 상황인가 생각해 보면 또다시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오늘밤은 이불킥 각이다.


 부끄러운 감정을 떨칠 수는 없지만 이 또한 나인걸 어쩌겠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런 나를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여야지 누굴 탓하겠나. 부끄러움을 아는 것도 살아 숨쉴 수 있는 고마운 감정이라 나름의 위로를 해본다. 또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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