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30년이 넘은 오래된 아파트다. 여기서 산 지도 거의 10년이 다 되어간다. 부모님과 친언니네도 같은 아파트에 살아 아이가 어렸을 때 별다른 고민 없이 이 집을 사버렸다. 주변에 산과 개울이 있고 산책로도 잘 조성되어 있어 매우 만족하며 산다. 신축아파트의 견본주택을 한 번씩 보러 가면 가격과 최첨단 편의시설에 눈이 휘둥그레지지만 나는 우리 집이 정말로 좋다. 나의 취향이 가득 담긴 곳이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들이 나의 취향을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는 느낌보다 집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덕분에 내 마음껏 집을 꾸밀 수 있게 되었다.
일단 나는 청소보다 정리정돈을 좋아한다. 어떤 정리정돈 전문가에 의하면 청소는 몸을 닦는 세신, 정리는 다이어트, 정돈은 몸의 라인을 만들어주는 필라테스라고 한다. 너무 찰떡같은 비유다. 한때 미니멀라이프를 꿈꾸며 집에 있는 많은 물건들을 비워냈었다. 결혼할 때 찍은 웨딩포토의 액자도 사진만 두고 프레임을 정리하였고, 아이의 어렸을 적 사진 액자도 사진만 남기고 많이 비웠다. 결혼할 때 장만한 한복도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였을 때 남편의 한복은 딱 한번 입었던 거라 엄마가 많이 아까워하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집 물건의 다이어트를 하고 나니 내 마음까지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한참 뒤 정리수납전문가 2급 자격증을 취득하고 우리 집을 맘껏 정리 정돈하는데 에너지를 아낌없이 발산하였다. 물건이 비워진 자리에 조금씩 물건이 차고는 있지만 항상 물건이 많아지는 것을 경계하며 비움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구석구석 내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하나도 없다.
우리 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화이트와 우드이다. 나무에서 느낄 수 있는 정감 있고 따듯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덕분에 라탄으로 만들어진 소품이 우리 집에는 많다. 라탄전등, 라탄바구니, 라탄휴지곽, 라탄거울 등이 우리 집 곳곳에 가득하다. 라탄은 왠지 여름에만 어울릴 것 같은 이미지가 있는데 우리 집 라탄소품은 사계절 내내 나에게 만족감을 준다. 라탄이 주는 편안함과 자연친화적 느낌이 너무 좋아 자격증까지 따버렸다. 식탁도 화이트 톤의 우드 느낌으로 바꾸니 집안 전체가 밝아진 느낌이었다. 식탁이나 소파를 바꾸는 결정도 오롯이 나의 몫이고 나의 취향만 반영되었다. 우리 집 남자들의 의견은 하나도 들어있지 않지만 언제나 그렇듯 별다른 불만이 없는 게 좋은 거라 믿고 싶다.
우리 집은 방이 총 3개가 있는데 하나는 안방, 다른 하나는 아이 방, 나머지 방은 나의 취미방이다. 취미방은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와 기타 그리고 재봉틀 책상이 들어있다. 미니멀리즘을 지향하고 있으나 취미부자인 나의 성향 때문에 원하는 만큼의 미니멀 라이프는 꿈꿀 수 없지만 감수를 해야 하는 부분이다. 오래된 아파트라 수납공간이 부족하여 식료품을 두는 선반도 하나 장만하여 이 방을 우리 가족들이 자주 드나들기도 한다. 요즘 들어서 재봉틀 부자재 때문에 부쩍 물건이 많아졌지만 정리정돈을 잘하는 나의 습관 때문에 이 방도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다.
집을 좋아하는 나는 집순이다. 집에 있으면 하루 종일 바쁘다. 혼자서도 할 게 너무나 많다. 피아노 연습도 하고, 재봉틀로 소품도 만든다. 넷플릭스를 보며 거실에 있는 사이클도 한 번씩 탄다. 유튜브를 보면서 줌바댄스도 한 번씩 따라 한다. 소파에 앉아 떠다니는 구름을 보며 책도 읽고 글도 쓴다. 확장형이 아니라 베란다에 캠핑용 의자와 이케아 탁자를 놓을 수 있는데 이 공간도 정말 사랑한다. 정남향이라 햇살도 많이 들어와서 한여름이 아니면 베란다에서 차 한잔 하는 것도 힐링이 된다. 엄청난 구옥이라 집값은 다른 아파트의 전셋값도 되지 않지만 나는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다. 하루하루 다르게 늙어가시는 부모님과 가까이 사는 것도 좋고, 거미와 같은 벌레는 많지만 산을 1년 내내 볼 수 있어 계절의 변화에 따라 산의 색이 달라지는 것도 전혀 질릴 수 없는 장면이다.
구름멍, 산멍을 하며 자연과 함께 하는 것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큰 축복이라 깨닫는 요즘이다. 청소를 말끔히 해놓고 소파에 앉아 우리 집을 한번 둘러보며 저 멀리 풍경을 볼 때면 이런 호사가 없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욕심내지 않고 앞으로도 소소하고 소박하게 가족과 함께 잘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