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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Nov 08. 2023

프라하의 겨울


니콜라가 말했다. 

“소피아, 베를린에서 프라하로 갈 땐 버스를 타지 말고 꼭 기차를 타고 가야 해. 넌 분명히 창밖의 풍경을 좋아할 거야.”

그녀는 베를린에 있을 때 우리 룸메이트이다. 베를린 에어비앤비는 방 두 개에 거실과 욕실을 공유하는 구조였는데 니콜라와 다리아쉬가 한방, 나와 윌이 한 방을 쓰면서 지냈다. 그들은 체코 사람으로 독일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프라하로 가는 기차표는 빨리 예매할수록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꼭 2주 전에는 예약을 미리 하라는 정보도 덧붙여 주었다. 그래서 18유로를 주고 떠나기 2주 전에 미리 기차표를 샀는데 당일날 다시 체크해 보니 그녀의 말대로 기차표는 57유로가 되어있었다.

프라하는 한국 사람들이 다들 예쁘다고 해서 몹시 궁금한 도시였다. 니콜라 말대로 베를린에서 프라하로 가는 기차의 창밖은 아름다웠다. 작은 산들 아래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있었고 풍경이 너무 귀여워서 한국의 시골 가는 길과는 또 다른 낭만을 선사해 주었다. 프라하에서는 일주일 있었는데 에어비앤비로 방만 하나 빌려서 에어비앤비 호스트와 함께 주방, 화장실 공유하여 사용하였다. 얀은 백인 체코인이었고 그의 아내는 카타카는 인도인이었다. 우리가 숙소에 체크인한 후 그들은 이것저것 숙소를 이용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고 주변 관광지 정보도 알려주었다. 베를린 숙소가 기숙사 같았다면 프라하 숙소는 주인집 손님방에 잠깐 머물다가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구시가지가 시작되는 입구에 내린 후 아무 행선지 없이 무작정 돌아다녔는데 모든 골목, 건물들, 바닥까지 너무 아름다웠다. 곳곳에 Bohemia라는 간판들이 보였다.

보헤미안(bohemian)의 사전적 정의는 사회의 관습에 구애되지 않는 방랑자,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사람, 특히 예술가이다. 체코의 서부지역을 독일어로 보헤미아라고 부르는데 이 보헤미아 지방에 유랑 민족인 집시가 많이 살고 있었고 15세기경 프랑스 인들이 집시를 보헤미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예술인 ‘보헤미안’처럼 살고 싶었는데 마침 내가 그 땅에 직접 오게 되어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체코의 건물들은 베를린의 것과 비슷했지만 좀 더 아기자기한 느낌이 있었다. 마치 동화 속에 들어와서 걷고 있는 기분, 사람이 살지 않는 놀이동산에 와있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저기 보이는 커피숍의 인테리어가 감각적이고 고풍스러웠고 커피값도 별로 비싸지 않았다. 배가 고파서 굴뚝 빵에 아이스크림 넣은 것을 간식으로 사서 먹었다. 오후 두 시쯤 나와 슬렁슬렁 걸어 다녔는데 4시가 되자 해가 떨어지고 어둑어둑해졌고 상점마다 꾸며 놓은 크리스마스 장식들에 하나둘 불이 켜졌다. 미로와 같은 골목을 요리조리 걷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커다란 광장에 도달해 있었다. 모든 골목이 천문시계가 있는 광장으로 연결되었다. 

광장에 다다르자 1410년에 지어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시계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천문 시계 반대편으로 아직 크리스마스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철거하지 않은 거대한 트리가 있었고 틴 성모 마리아 성당, 프라하 구시청사, 얀 후스 동상이 병풍처럼 광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얀 후스는 독일의 마틴 루터보다 이미 100년이나 전에 마틴 루터가 했던 가톨릭 개혁을 주장하다 화형 당한 종교 지도자였다. 

니콜라는 건축을 전공했는데 프라하 광장에서 서양의 중요한 건축양식들이 모두 한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아! 니콜라가 이런 환경에서 자랐으니 건축에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었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라하에는 고딕양식,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로마네스크양식 등 역사상 모든 시기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이 모여있었다. 건축을 잘 모르지만, 독일 여행을 하며 파악해 둔 몇 가지 상식만으로 몇 개의 프라하의 건축물을 조금 구별할 수 있었다. 틴 성모 마리아 교회의 뾰족한 쌍탑은 틀림없이 날카로운 형태와 수직지향적인 특성의 고딕양식이고, 모차르트가 오르간을 연주했다는 푸른빛 돔이 인상적인 성 니콜라스 성당은 건물에 불규칙한 곡선과 곡면을 많이 이용한 바로크양식이라는 것 정도.

바로크양식과 로코코양식을 이미 독일의 상수시궁전과 신궁전에서 보고 와서 프라하 광장의 건물을 바라보는데 이해를 도와주었다. 르네상스 양식은 사실 프라하에선 잘 몰랐고 이탈리아 피렌체를 방문했을 때 브루넬리스키가 디자인한 피렌체 대성당을 보며 공부했다.


우리는 건축물 종합백화점과 같은 건물들을 등지고 카를교로 향했다. 영어로는 찰스 브리지(Charles Bridge)라고 읽어서 가끔 윌이랑 이야기하다 보면 목적지가 헷갈린다. 이탈리아 피렌체도 영어권 사람들은 플로렌스(Florence)라고 말한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어떤 언어보다 한글로 하는 발음 표기가 그 나라 사람들이 그 지역을 이야기하는 발음과 가장 흡사하다. 찰스 브리지보다 ‘카를’이지! 카를 4세에 의해 1357년에 세워진 카를교에 도착하니 여러 사람이 다리 위에서 그림도 팔고 공연도 하고 있었다. 다리 건너 보이는 프라하성과 궁전 아래쪽 집들이 밤하늘 아래 로맨틱한 빛을 뿜어내며 반짝거렸고 블타바강 수면 아래서 불빛들과 함께 너울거렸다. 

낮에 카를교에서 바라본 프라하 성

우리는 그렇게 지구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다리를 건너 필스너 간판이 크게 쓰여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체코에서 유명하다는 흑맥주인 코젤 맥주를 주문했다. 그들은 맥주 거품을 거의 1/3 가량 넘치게 맥주를 채워 우리에게 가져다주었다. 나는 맥주를 잘 못 마시는 체질인데도 불구하고 코젤 생맥주는 걸어 다니느라 메마른 내 목구멍을 감싸며 부드럽게 잘 넘어갔다. 


그날 이후 구시가지에 세 번 정도 더 나와보았다. 그런데 이렇게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쩐지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나가면 또 똑같이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나는 마치 내가 예쁜 스노볼 안에 갇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이곳에 살면 지루하고 지겨워질 수도 있겠다, 다른 세상을 보고 싶어서 떠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이곳에 오는 것이 평생소원일 수도 있을 텐데 그들은 오고, 이곳 사람들은 떠나고. 이렇게 인간은 이동하는 동물이 된 것일까?


프라하에 있을 때 독일에 있던 니콜라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연말에 2주 동안 휴가라서 가족들과 시간 보내려고 프라하에 가려고 하는데 너희가 있는 마지막 날 시간이 괜찮으면 함께 만나지 않을래? 프라하에 있는 내 친구들에게 너희들 이야기를 했더니 그 친구들도 너희를 같이 만나고 싶데. 함께 만나지 않을래? ”

“물론이지!”

니콜라는 우리가 카를교 건너편 코젤 생맥주를 마셨던 곳에서 멀지 않은 식당의 홈페이지 링크를 문자로 보내 주었다. 이곳에 체코 전통 음식들이 맛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나와 윌, 니콜라 커플, 니콜라 친구 커플까지 이렇게 6명이 그 맛집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니콜라가 튀긴 치즈를 꼭 먹어봐야 한다고 해서 윌은 그걸 시켰고, 나는 굴라쉬를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고 굴라쉬와 함께 나온 빵을 손으로 집어서 양념에 찍어 먹으려고 하니 니콜라가 쿡쿡 웃으며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하라고 했다. 나이프로 빵을 자르고, 국물에 밥 말아먹는 느낌으로 빵을 소스에 듬뿍 적셔서 먹는 거라고 알려주었다. 프라하의 굴라쉬는 소고기 덩어리들이 큼직큼직했고 찜 요리처럼 나왔다.  빵은 촉촉했으며 빵을 듬뿍 찍어 먹던 소스가 꽤 짭조름해서 맥주 안주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으면서 이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그들은 2차를 가자며 이 지역 사람들밖에 모르는 술집에 우리를 데리고 갔다. 


그곳은 보통 자리가 없다고 하던데 다행히 우리가 간 그 시간에 한 테이블이 비어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이 6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긴 벤치형 테이블이 딱 3개 있었고 식당 내부는 두꺼운 아치형의 천장이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중세 시대 어느 마을 술집에 방문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서 맥주를 주문했다. 니콜라의 친구가 말했다.

“이 술집은 우리 엄마 아빠가 대학교 때 데이트하던 곳이야. 굉장히 오래된 술집이야.”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 있던 나머지 두 테이블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 모두 노인들이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인 분들이 맥주를 한잔씩 시켜놓고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여자 손님은 없었다. 

우리는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체코 사람들의 60%가 무교라고 하는 점이었다. 아니, 이렇게 교회랑 성당이 많은데 다 무교라고? 이유인즉슨 공산주의 때문에 거의 이 친구들 부모님 세대부터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공산주의는 다른 종교를 엄격하게 금지하기 때문에 근대로 넘어오면서 무교로 바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성당과 교회가 많은 프라하에 정말 아이러니 한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샷을 마시자고 해서 주문을 했다. 체코 사람들은 주로 맥주를 마시지만 뭔가 센 술을 마시고 싶을 때 과일을 발효해서 만든 브랜디와 같은 술을 마시는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함께 마신 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주로 자두나 배와 같은 과일을 발효해서 만든 도수가 센 과일주를 소주잔과 같은 샷 잔에다 마셨다.

니콜라 어머니는 프라하에서 조금 떨어진 교외에 사시는데, 그녀의 고향 집에 가면 참나무(oak) 통에다가 과일주를 잔뜩 만들어 놓고 귀한 손님이 오거나 명절에 가족이 모이면 샷 잔에다 이 과일주를 나눠 준다고 했다. 니콜라가 남자 친구인 다리아쉬를 처음으로 그녀의 집에 데려갔는데 니콜라의 아버지가 다리아쉬에게 독한 과일주를 끊임없이 내어주셔서 본인은 죽는 줄 알았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날을 회상하며 고통스러운 듯이 익살맞게 일그러트린 그의 표정을 보니 너무 웃겨서 모두 크게 웃었다. 그리고 한국 문화랑 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결혼할 사람 데려왔을 때 아버지가 남자 친구 술버릇을 보겠다며 엄청나게 술을 권하고 남자 친구는 거절도 못 하고 술을 받는 족족 잔을 비우는 장면이 상상되었다.

니콜라의 말에 따르면 집에 6개 정도 샷 잔이 들어가는 구멍 난 직사각형 동판에 손잡이가 달린 도구가 있는데 손잡이 부분에 엄지손가락으로 돌려서 종소리를 낼 수 있는 장치가 있다고 한다. 명절에 식구들이 모이면 샷 잔에 술을 부어 동판에 담고 손잡이 부분에 종을 울리면서 '자~ 샷 마실 시간입니다!' 이렇게 외치며 부엌에서 가족들이 있는 식탁까지 가져온다고 했다. 이야기만 들어도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이 들떠서 함께 술을 마시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우리는 술을 얼큰하게 마시고, 술집을 나왔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웠던지 친구들이 프라하의 야경을 우리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흔쾌히 가자고 하자 그들은 체코 성이 있는 뒤쪽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좁은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갔다. 니콜라가 웃으며 말했다.

“소피아, 내가 보라고 할 때까지 절대 뒤돌아보지 마!”

그리고 조금 더 걸어간 후 그녀가 말했다.

“자, 이제 됐어! 이제 도시를 내려다봐!”



큰 나무 아래로 도시가 한눈에 펼쳐졌다. 프라하의 예쁜 건물들이 까만 밤하늘 아래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이곳이 프라하에서 가장 멋진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며 그들은 자주 이곳에 온다고 했다. 프라하의 어느 겨울날. 마무리까지 완벽한 값진 경험이었다. 나는 소중한 시간을 내어 이방인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준 친구들이 정말 고마웠다.


여행을 다닐수록 느낀다. 혼자여도 물론 좋겠지만 함께여서 나의 여행이 더 풍부해진다는 것을.

프라하의 겨울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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