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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Nov 08. 2023

근심이 없는 궁전


나는 독일로 여행을 가면서도 그들의 역사를 잘 몰랐다. 박물관 투어를 할 때 베를린 구 국립미술관에서 귀족인 것 같은 한 남자가 플루트를 불고 있는 커다란 그림 앞에 멈춰 서서 ‘이 사람은 누구지?’라는 궁금증으로 시작되어 독일 역사를 공부했다. 그 사람은 바로 많은 독일인들이 존경하는 프리드리히 대왕님이었다.


프리드리히 2세(Friedrich II, 1712~1786)는 프리드리히 대왕이라고 불리는 프로이센의 국왕이다. 철저하게 군인이었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와 교양 있는 세련된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프랑스 귀족 출신 가정교사를 초대하여 교육했고 어머니의 영향으로 프리드리히 대왕은 어려서 프랑스 의상이나 음악을 좋아하고, 프랑스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플루트를 부는 실력이 너무나 수준급이어서 프리드리히 대왕의 플루트 연주를 음악의 아버지인 바흐가 목격하고 찬사를 보낼 정도였다고 한다. 

아버지인 빌헬름 1세가 죽고 그는 막대한 국가자금과 최저정예의 군사를 물려받는다. 아버지의 군사훈련을 보고 참여하면서 통치와 군사 조직하는 것을 참고하였고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의 영향을 받고 그를 초대하여 철학적인 대화도 많이 나누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과감한 개혁정책을 실시한다. 고문 폐지, 언론검열폐지, 종교적 차별금지, 극장 건설 등을 추진하고 학문을 멸시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와 달리 베를린 아카데미를 부흥시킨다. 

 나는 지금 현대 사회에서 독일인 하면 떠오르는 것이 근면, 성실하고 철학적인 이미지인데 프리드리히 대왕님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니 ‘아, 독일인을 수식하는 단어들은 거의 프리드리히 대왕님의 이미지로부터 나온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융통성이 없고 딱딱하지만 바르고 근면한 이미지. 독일은 대학교도 학비가 무료인데 이렇게 지금까지도 교육에 진심인 독일 정책은 아마 프리드리히 대왕님의 교육 진흥정책에서부터 비롯된 것 같다.

 

프리드리히 대왕, 그가 있었던 궁전은 어땠을까? 나는 프리드리히 대왕이 포츠담에 여름 별장으로 세운 상수시궁전 [Sanssouci Place]에서 자주 머물렀고 이곳에서 묻혀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상수시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Sans Souci)'근심이 없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근심이 없다고 까지 이름을 붙여놓고 여기서 사색하고, 학자이자 친구인 볼테르를 불러들여 철학 공부를 했다고 하니 이곳에 궁금해졌다.

마침 너무 베를린에만 머물러 있어서 답답했는데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궁전에 가서 바람이나 쐬고 올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윌과 함께 숙소를 나섰다. 


우리는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일어나 게으름을 피우며 천천히 준비했다. 우리 숙소였던 알렉산더 플라자에서 바로 RE1 열차로 포츠담까지 1시간 만에 편하게 올 수 있었고 포츠담역에서 버스를 타고 상수시 궁전에 도착했다. 갑자기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역에서 우산 하나를 샀다.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궁전 앞에 가서 물어보니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해야 하는데 아래 보이는 도로 쪽에 있는 건물이 매표소니까 거기서 티켓을 구입하라고 했다. 매표소에 가서 티켓을 구입하려고 하니, 우리가 2시쯤 도착했는데 당일 티켓이 매진되었다고 한 것이 아닌가? 극장처럼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궁전 입장이 매진될 수가 있지? 포츠담에 오면 보고 싶었던 궁전이 2개였는데, 상수시 궁전과 포츠담회담이 열렸던 체칠리엔 호프궁이 두 번째이다. 체칠리엔 호프궁은 1945년 5월 독일이 항복한 후, 연합국 정상들이 이곳에 모여서 패전국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의논을 한 장소이다. 일본이 항복하면 카이로 선언에 따라 식민지가 다 해방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운명도 이곳에서 의논 한 셈이다. 한나라의 운명을 강대국들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좀 우습지만. 

이 포츠담 회담 이후로도 일본은 항복하지 않고 계속 전쟁을 밀고 나갔고 결국 미국에서 원자폭탄을 떨어뜨리게 된다. 이 역사적인 곳에 가보고 싶었지만 상수시 궁전에서 체칠리엔 호프 궁으로 가는 시간만 1시간 15분에서 반 정도 걸린다고 했다. 결국 너무 멀어서 여기도 못 갔다.

 미리 정보를 알아보지 않고 간 대가로 상수시 궁전의 외관만 훑어볼 수밖에 없었고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나의 표정을 보고 매표소 직원이 말했다.

 “4시에 신궁전은 볼 수 있는데 신궁전이라도 예약해 줄까요? 여기서 20분 정도만 걸어가면 돼요.”

여기까지 왔는데 그거라도 보자 싶어 우리는 신궁전을 예약했다

 

겨울이었지만 영상 9도로 비교적 온화한 날씨였지만, 비가 와서 온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서 매표소 옆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몸을 좀 녹이고 가기로 했다. 레스토랑 내부는 높은 층고 덕분에 탁 트여서 뻥 뚫린 느낌이 있었고 실내인데 야자수들이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마다 예쁜 촛불 장식이 있었다. 윌은 카푸치노를, 나는 드라이 샴페인 한 잔을 주문했다. 나는 알코올로 몸을 살짝 데우면서 실망감을 조금 추스른 후 신궁전으로 향했다. 


가는 길이 숲길이고 비가 왔기 때문에 풀 냄새가 신선했다. 

신궁전(Neues Palais)은 7년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769년에 지어진 궁전이다.

상수시궁전이 베르사유궁전을 본떠 로코코 양식으로 지어졌다면 신궁전의 외관은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내부에 들어가니 또 온통 로코코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200개의 방중 4개만 왕실에서 쓰고 나머지는 거의 귀족들과 접견 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하는데 프리드리히 2세가 죽고 거의 쓰지 않다가 1859년부터 1918년까지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드디어 건물 앞에 도착했는데 신궁전의 입구를 찾을 때 우린 좀 헤맸다. 건물은 멀리서 볼 때 보다 더 웅장했고 곳곳에 장식된 조각상들의 세부 장식이 현란했다.


입구에서 직원들이 백신 증명서와 신분증, 그리고 티켓을 확인했다. 우리가 건물 입구를 찾느라 예약한 시간보다 30분 늦게 왔는데 다행히 30분 뒤 타임에 투어를 예약 한 분들과 같이 들을 수 있었다. 

안내하시는 분이 말씀하셨다.

“참 다행이네요, 이분들이 오늘 마지막 투어 손님들이에요.  조금만 더 늦게 왔으면 아마 관람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 손님들과 같이 투어를 하라고 하면서 오디오 가이드를 건네주었다

나는 박물관에 그냥 입장해서 자유롭게 둘러보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궁궐에 예약한 시간에 맞게 입장을 하면, 가이드 한분이 그 예약한 타임에 그룹들을 따라다니며 궁궐의 각 방문을 열쇠로 열어주고 궁궐 내부 방이 하나씩 열릴 때마다 오디오 가이드에 번호를 입력해서 궁궐 내부의 건축양식이나 이야기들을 듣는 그런 방식이었다.

‘아, 그래서 매진이 있고, 마지막 타임이 있고 그런 거구나.’

처음에 조각상이 있는 넓은 방이 나왔고 오디오 가이드로 설명을 들은 다음 우리는 조개로 화려하게 장식된 연회장으로 이동했다. 연회장은 층고가 높았고 커다랗게 부풀린 여성의 치마 같은 샹들리에 몇 개가 연회장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큰 창문을 통해 밖에서 빛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대리석 바닥에 샹들리에가 호수 수면 아래 반사된 형상처럼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멋진 연회장에 이어 나타난 방은 로코코양식의 극치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을 만큼 화려했다. 벽지는 온통 붉고 천장과 벽에 식물 덩굴이나 꽃, 그리고 거미줄에 거미까지 세세하게 장식해 두었다. 오디오 가이드에서 방의 장식은 자연에 영감을 받아 꽃과 생물 위주로 표현했다고 설명해 주었다. 방의 벽면은 당대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그림으로 꽉꽉 채워져 있었다. 벽도 채워져 있었지만 그림도 빈틈없이 꽉꽉 채워져 있었다. 동양에서 중시했던 여백의 미와 정반대 되는 철학이다. 여백이 없는 방과 그림들을 보고 있으려니 난 좀 답답해졌다. 

마지막으로 우린 눈이 부신 또 다른 연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회장을 보니 영화나 드라마에 왕과 왕비가 귀족들을 초대해서 커다란 연회장에서 나란히 줄을 세워서 춤추게 했던 그런 장면이 생각났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당대 최고의 명품 드레스와 보석으로 치장하고 와서 춤추는 남녀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번쩍번쩍한 신궁전을 보며 귀족들의 화려했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지만, 항상 이런 예쁜 궁전을 보면 한편으로 그 시대 전쟁과 전염병 등으로 고통받고 가난하게 지냈을 서민들도 같이 생각이 난다. 그래서인지 괜히 씁쓸해졌다.

돌아오는 발걸음 내내 근심이 없는 궁전을 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정보를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그냥 궁전 가서 티켓 사서 구경하면 되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나의 게으름을 탓했다. 

한편으로는 상수시 궁전은 날씨 좋은 여름날 다시 한번 와서 보라고 운명적인 메시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Everything happens for a reason.

모든 일은 이유가 있어서 생기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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