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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Nov 11. 2023

새장 속의 예쁜 새 한 마리

헝가리에 오기 전에 역사 공부를 할 때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후이자 헝가리 왕국의 왕비인 엘리자베트 여왕에 대해 알게 되었다. 여왕의 헝가리식 이름은 비텔스바흐 에르제베트(Wittelsbach Erzsebet)이고 별명인 씨씨(Sisi)로 잘 알려져 있다. 엘리자베트 황후는 미모가 대단히 아름다워 지금도 미녀 왕비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다. 그녀는 외모를 아주 중요시하고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다이이트도 무리하게 감행했으며 키가 170cm 넘는데 몸무게 46~49kg을 죽을 때까지 유지했다고 한다. 


바비인형 뺨치게 아름다운 엘리자베트 황후


그녀는 바이에른 공국의 공주로 태어났지만 자유분방하게 자랐다. 이 시대에는 근친혼 관습이 있었으므로 15세 때 엄마 언니의 아들인, 이종사촌 프란츠 요제프 1세와 결혼하게 되었는데 원래 엘리자베트 언니 헬레네와 결혼을 시키려고 하였으나 프란츠 요제프가 맞선 보던 날 동생 엘리자베트를 보고 한눈에 반해 그녀에게 구혼하게 된다. 

프란츠 요제프 1세와 결혼하면서 오스트리아 황후가 되었지만, 오스트리아 제국의 엄격한 황실 예법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시어머니에게 항상 억압받으며 지내게 된다. 결혼 후 조피, 기젤라, 루돌프, 마리 발레리 4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조피는 헝가리 여행 중 2살 때 요절했고, 기젤라와 루돌프는 시어머니가 뺏어가서 키워버린다. 그러던 중 성인이 된 아들 루돌프는 벨기에 공주 스테파니랑 사랑 없는 정략결혼을 하고 마리 베체라는 여인과 바람을 피우게 되는데 그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루돌프 나이 30세에 17세인 그녀와 동반자살을 하게 되었고, 엘리자베트 황후는 아들의 자살소식에 깊은 실의에 빠져 항상 검은 상복을 다녔으며 여행을 다니며 평생을 살아간다. 

그녀가 60세 되던 해에 제네바에서 배를 타고 어디로 가려던 중 젊은 남자와 부딪히게 되는데 이때 뾰족한 파일에 찔려 암살당한다. 그는 25살의 이탈리아 남자로 무정부주의자였는데 씨씨가 스위스 제네바에 여행 온 걸 신문으로 보고 쫓아와서 그녀를 찔렀지만, 씨씨는 몸을 꽉 조이는 코르셋을 입고 다녀서 본인이 찔린 줄도 모르고 계속 걸어 다녔고 결국 과다출혈로 사망하게 되었다. 

불운의 삶을 살았던 황후이지만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유럽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특히 헝가리 사람들이 황후를 지극히 환영하고 좋아했는데 정치에 잘 개입하지 않던 황후이지만 1867년 헝가리의 독립 내각 구성을 강력하게 지지하였다. 그래서 헝가리에 엘리자베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나는 그녀가 너무 궁금하여 그녀를 만나러 가 보기로 했다.  헝가리에 ‘괴될뢰’(Gödöllő)라는 궁전이 있는데 씨씨 황후가 헝가리에 올 때마다 머무른 곳이었다고 한다. 윌은 공부하고 싶다고 해서 숙소에 남아있고 나는 혼자 나섰다. 그 궁전은 부다페스트 도심에서 북동쪽으로 35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궁전을 찾아가기 위해 도착한 고속버스정류장이 좀 신기했다. 넓은 도로 한가운데 버스정류장 표지판만 하나 덜렁 있었고 시내버스가 아닌 고속버스들이 이곳에 정차하는 것 같았다. ‘이곳이 버스정류장 맞아?’ 싶을 만큼 허술하고 아무것도 없었다. 몇 시에 어디로 가는 차가 도착하는지 정보를 알 수도 없었다. 우리나라 고속버스 터미널 생각하면 이곳은 허허벌판에 기가 막힌 고속버스정류장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핸드폰에 앱으로 시간을 다운로드하여 보면서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심카드를 구매하지 않아 내 핸드폰에는 인터넷이 없었다. 요즘 세상에 인터넷이 없이 여행한다는 것은 참으로 불안하기 짝이 없지만 또 없으면 없는 대로 다 해결이 되긴 한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중 한 분에게 물어봤다. 영어를 하실 줄 몰랐지만 친절하게 손짓발짓하며 도와주셔서 괴될레로 가는 버스에 다행히 탈 수 있었다. 버스비는 기사에게 현금으로 지불했고 잔돈은 거슬러주셨다. 버스에 앉아 한 삼십 분 정도 편하게 앉아 바깥 풍경도 구경하고 갔는데 괴될레에 도착해서 내리는 곳이 4군데나 있는 걸 알게 되었다. 내려야 할 정류장이 어딘지 정확히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있다가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다행히 영어를 할 줄 아는 어린 여학생에게 도움을 받아 정류장에 무사히 내렸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십 분 정도 걸으니 바로 궁전이 보였다. 이곳은 원래 그러셜코비치 백작이란 사람이 자신의 저택으로 1733에 건설한 바로크식 건물이었는데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매입을 했고 이곳에 엘리자베트 황후가 자주 오게 되었다고 한다. 답답한 오스트리아 궁전에  갇혀서 시어머니의 감시를 받고 있는데 왜 안 벗어나고 싶었겠나!


헝가리 괴될레 궁전

궁전 안으로 들어가 입장료를 사려고 하니 오늘 촬영이 있어서 촬영으로 궁전 내부 보는 것이 제한될 수도 있으니 반값에 입장료를 할인해 준다고 했다. 반값으로 할인된 입장료를 지불하고 텅텅 빈 것 같은 궁전을 돌아보았다. 독일에서처럼 따로 예약을 해 사람들이 문을 열어주며 설명해 주는 시스템은 없었다. 궁전은 아담했고 소박한 느낌까지 들어서 마음이 편했다. 씨씨 황후가 이곳에 오면 좋아할 만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방에 걸려있는 가족들의 초상화 그림들과 사진들을 바라보았다.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엘리자베트,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그려진 흑백 사진이었다. 




그들 집안 사정을 다 알고 바라보는 내 눈에는 사진이 어쩐지 슬퍼 보였다. 곳곳에 있는 그녀의 조각상이나 그림을 보는데 2022년을 살아가는 동양 여자 눈에도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왕비의 모습이 시선을 붙들어 맸다.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은 미인이었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예쁜 사람을 좋아한다. 범죄자도 이쁘면 팬클럽이 생기는 세상이다. 이렇게 이뻤으니 사람들이 엄청나게 좋아했겠다 싶었다. 모나코의 왕비 그레이스 켈리도 생각이 났다. 



어떤 방 하나에 1872년 대관식 커다란 그림이 벽면 전체를 채우고 있었고 엘리자베트 황후가 그날 입고 있었던 옷과 왕관, 액세서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전시된 드레스는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왕관도 그랬다. 나는 5세기 신라시대에 화려했던 금관을 생각하니 17세기에 그 찬란했던 오스트리아 황후가 입었던 드레스를 보며 이 시대 사람들은 본인들이 최고라 생각했겠지만(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꽃 피웠던 화려한 동양 문화를 접했을 때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방을 차례차례 둘러보고 있는데 마침 입장료를 살 때 경고해 주셨던 것과 같이 촬영팀들이 나타나 궁전 내부에서 촬영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헝가리 여인 한 분이 씨씨 황후가 입었을 것 같은 17세기 스타일 드레스를 입고 궁전을 내부를 걸어 다녔다. 그분을 보고 있으니 묘하게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지금 그 시대에 와서 궁전에 사는 사람들을 몰래 훔쳐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중에, 한국에 와서 씨씨의 생애에 관한 네플릭스의  ‘The empress’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는데 ‘내가 궁전에서 봤던 그분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었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복도에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사람들 초상화가 양쪽 벽에 쭉 걸려 있었다. 근친혼으로 주걱턱이 점점 심해진 합스부르크가의 대표적인 인물들을 쭉 지나니 복도 끝에 파란색 드레스의 마리아 테레지아의 거대한 초상화가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 당시 파란색으로 옷을 염색하는 염료가 매우 비쌌기 때문에 파란색 드레스는 왕족, 왕비, 부유한 귀족들 외엔 입지 못하는 고귀함의 상징이었다. 인간들은 계급사회를 만든 후에 높은 계급의 사람들은 언제나 고귀해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너희들은 절대로 나와 같을 수 없다며 평범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욕망을 값비싸거나 희귀한 재화를 소비하면서 그렇게 표출했다. 지금도 변함이 없는 걸 보면 인간의 기본 욕망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합스부르크 공국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궁전 안쪽을 관람하고 밖에 정원으로 나가보았다. 엘리자베트 여왕이 검은 옷을 입고 이곳에서 승마하며 뛰어다니는 모습, 나무에 기대어 쉬는 모습들을 상상해 보았다. 황후는 비엔나의 궁전을 몹시 답답해하여 헝가리에 많이 와 있었다고 한다. 



사사건건 왕실 규정을 들먹이며 뭐 하나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었던 처지를 한탄하며, 자신을 얽매고 속박하는 삶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답답한 궁전에 갇혀있는 모양이 꼭 예쁜 새 한 마리가 새장에 갇혀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금수저, 흙수저 하면서 금수저로 태어난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결혼을 통해서라도 그런 집안에 속하길 갈망한다. 어디 우리나라뿐이겠는가? 자본주의 세상이라면 사람 사는 곳마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재벌 2세와의 사랑과 결혼, 이별 주제는 언제나 한국 드라마 이야깃거리의 단골손님이다. 보통은 여자 쪽이든 남자 쪽이든 돈이 많은 집안사람들이 우월한 지위에 있으며 돈이 많지 않은 집안사람들에게 함부로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렇지 않은 집안도 가물에 콩 나듯 있긴 하겠지만. 과연 부자 집안에 시집 장가를 가서 그들이 정해놓은 규정대로 나의 자유를 포기하고 사는 삶이 행복한 것인가? 내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가? 한번 태어나 사는 인생 내 맘대로 살다 가는 게 좋은 것 아닌가? 


여행을 하며 ‘커다란 궁전에 잘 꾸며져 있는 정원이 너무 싫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줄도 딱 맞고 대칭적으로 꾸며놓은 정원에 가면 숨이 막힌다. 꽃도 뒤죽박죽 피어있고 연못도 있고 크고 작은 나무들이 뒤엉켜 자라는 곳, 사람이 잘 가꾸어 놓지 않은 듯한 그런 비밀의 숲 같은 정원이 좋다. 그런 곳에 가면 마음도 편하고 하루 종일 편하게 쉴 수 있다. 

다시 태어나도 숨 막힌 정원을 바라다보는 공주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새장에 갇힌 예쁜 새가 되어 살고 싶지 않다. 새는 인간에게 없는 날개가 있다. 본디 훨훨 날아다니며 생활을 해야 하는 동물인데 날개를 다친 것도 아니고 새장 속에 갇혀만 있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욕망에 의해 난다는 목적이 아니라 보이기 위한다는 목적으로 쓰인다면 100캐럿 다이아몬드를 목에 차고 있다고 해도 과연 행복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자유가 속박당하더라도 남에게 멋져 보이기만 하면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나는 숲 속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그런 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숲 속이라는 내가 원하는 환경이 필요하고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이 둘 중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살고 싶은 나의 강한 의지가 첫 번째가 되어야 한다. 환경 때문에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면 환경을 바꿔줄 필요가 있다. 그곳이 새장이라면 탈출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가끔 새장 문이 열려 있어도 나의 새장이 너무나 안락하고 익숙해서 탈출해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때 되면 먹이가 나오고 마음껏 물을 먹을 수 있고 나의 ‘날갯짓하고 싶은 욕망’ 따위만 포기한다면 죽을 때까지 천적의 위험 없이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삶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숲 속에서 독수리에게도 쫓겨보고, 먹이 사냥에 성공해 성취감도 느껴봐야 내가 이 세상에 살다 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숲 속으로 나갔다가 적응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위험천만해 보이지만 아름다운 숲 속으로 뛰어들어 이 세상을 진정으로 즐기며 잘 살다 가고 싶은 부류라고 한 번 더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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