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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Nov 07. 2023

북두칠성을 찾아야 하는 이유



 

내 친동생 이름의 한자어 뜻은 ‘아름다운 별’이다. 하루는 동생이 말했다.

“언니, 내가 김상욱 물리학 박사님이 유튜브에서 별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어. 모든 사물은 더 이상 쪼개지지 못하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거야. 사람도 마찬가지이지. 그런데 사람이 죽어서 분해가 되면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원자 단위까지 쪼개져서 하늘을 떠돌아다닐 수도 있데. 그러다 우주로 가서 별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흡수가 되면 말이지 사람이 진짜 밤하늘에 별이 될 수도 있다는 거야! 나는 살아서도 별이고 죽어서도 별이 된다는 말이야. 너무 멋지지 않아?”

나는 죽어서 분해가 된 다음 우주까지 올라가 밤하늘에서 빛나는 별이 되는 상상을 해보았다. 내가 별을 평생 몇 번이나 보았을까? 도시에서 출퇴근할 때 가끔 한 두어 개 정도 보긴 한다. 좀 더 어두운 곳으로 갈 기회가 있어 그런 곳에 가서 우연히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 열 서너개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주 가끔이지만. 그리고 쏟아질 만큼 많은 별을 본 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이다. 가평에 어느 팬션 옆의 숲 속, 거제도 몽돌 해수욕장에서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깜깜하고 은밀한 곳, 캐나다 토보모리에서 캠핑했을 때 등등. 이것보다 더 많이 봤을 수도 있지만 내 기억은 의식의 저편에서 잠이 들어 이 정도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휴론 호수에 해변이 많은데 시어머니댁은 파빌리온 해변까지 걸어서 불과 5~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있다.  처음에 별장으로 구입하셔서 여름 별장으로 이용하시다가 은퇴 후에 원래 사시던 집을 정리 하시고 이 집을 약간 수리하신 후 본격적으로 이동해서 살고 계신다. 우리는 이곳에서 5주를 머물렀는데 우리가 도착하고 나서 첫 2주 동안은 시어머니께서 여행을 가시는 바람에 주인 없는 집에 남편과 나, 둘이서만 머물게 되었다. 

하루는 집 앞에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수도 없이 많은 별이 촘촘히 박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시어머니의 집은 약간 오르막길에 있어서 집을 수평으로 맞추기 위해 기울어진 부분에 나무로 계단과 데크(갑판)라고 불리는 테라스 공간을 널찍하게 설치하셨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그 데크에서 보냈는데 데크에 있는 테이블에서 낮에는 책도 보고 가끔 날씨가 좋으면 저녁도 밖에서 먹었다. 그날은 엄청난 수의 별을 목격하고 윌을 불렀다.

“윌! 빨리 나와서 밤하늘에 별들을 좀 봐봐! 정말이지 셀 수가 없어!”
  나는 데크에 있던 탁자와 의자를 한쪽으로 밀어버리고 담요를 가지고 나와 깔았다. 별은 계속 보고 싶은데 고개를 들고 있으니 목이 아팠기 때문에 그냥 담요를 깔고 누워 버렸다. 30분은 그렇게 누워 있었나 보다. 난생처음으로 별똥별을 보았는데 그날만 3개를 보았다. 반짝반짝 수많은 별 주변으로 희뿌연 안개 같은 것이 껴 있었는데 아마 이것을 은하수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짐작 해 보았다. 태어나서 은하수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두 눈으로 보고서도 짐작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별은 당연히 빛나는 거지만 뚫어지게 바라다 보니 어쩐지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어떻게 저렇게 깜빡깜빡하면서 빛을 내지? 그리고 ‘수많은’ 숫자에 압도당했다. 별들이 하늘에 너무 빽빽하게 박혀 있었고 은하수로 추정되는 환하고 희뿌연 연기들로 가득 차, 달도 없는 깜깜한 밤임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온통 하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너희들은 여기서 항상 이렇게 열심히 빛나고 있었니?’

 뭐가 그렇게 바빴던 걸까. 저 수많은 존재들의 향연을 나는 사십이 넘어서야 실감하게 되었다. 그들은 언제나 내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조상님들도, 내 조상님들의 조상님들도 이 별들을 똑같이 보고 계셨겠구나.  물론 별들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과정에서 어떤 별들은 조상님들이 살아계실 때 생성이 되어 그 빛이 지구까지 도달하는데 2000년 넘게 걸려서 조상님들은 보지 못하고 나만 볼 수 있는 별이 있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아름답게 빛나는 이 별들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이들은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데 나는 이 존재를 보지 못하는 장님으로 살고 있었구나. 영원 같은 시간 동안 빛나고 있을 이 별들 아래서 나는 먼지처럼 지나가고 말 인생을 살 뿐인데 뭐가 그리 대단하길래 이런 것 하나 즐기지 못하고 허덕허덕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산다는건 무엇일까? 별을 볼 수 없는 도시에 사는 삶이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나왔다. 너무나 광활하고 아름다운 대 자연에 압도되어 내가 먼지처럼 느껴질 때, 그럴 땐 눈물이 났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윌은 이 별들을 보며 다른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갑자기 윌이 말했다.

“넌 북두칠성이 어디 있는지 알아?”

“응, 저기 있잖아!”

북두칠성은 국자 모양으로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모양이어서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윌에게 보란 듯이 북두칠성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의기양양하고 약간은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윌이 다시 물었다.

“그럼 북극성은 어딨는 줄 알아?”

북극성은 지구의 자전축과 북쪽에서 일치하는(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별이기 때문에 별 중에 움직이지 않고 북쪽을 향해 언제나 빛나는 별이다. 위치에 변화가 없고 이를 중심으로 별들이 돌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예전부터 많은 이들이 특히, 항해해야 했던 조상들은 목적지를 찾기 위해 북극성을 찾았다.  바른 길을 위해 찾아야 하는 목표, 그것이 바로 북극성이었다.

“글쎄…….”

나는 북극성은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별이 그 별 같아 보였다. 윌은 검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네가 찾은 북두칠성 보이지? 저기 국자 머리 부분 두 별을 이어 5배 정도 떨어진 지점. 이렇게 쭉 이었을 때 홀로 영롱히 빛나는 저 별! 저게 바로 북극성이야!”

아 그렇구나. 내가 윌의 손가락을 눈으로 좇아가며 북극성을 찾고 나니 윌이 다시 말했다.

“이렇게 북극성을 찾기 위해 북두칠성을 먼저 찾으면 북극성이 어딨는지 쉽게 찾을 수 있잖아. 우리 삶의 의미나 목적이나 목표가 무엇인가 찾기 힘들 때 그 목표가 뭔지 먼저 찾지 말고 주변의 것을 먼저 찾으면 목표가 뭔지 아는 게 훨씬 쉬워 질지도 몰라.”

윌이 말을 마치고 나서 난 잠깐 아무 대꾸를 할 수 없었고 우리 둘 사이 잠깐 잔잔한 여운이 감돌았다. 나는 입을 꼭 다물고는 그 말의 의미를 한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내 삶의 의미가 뭔지 고뇌했던 지난 시간을 잠깐 떠올려 보았다. 

 삶의 의미를 찾는 문제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것이고 지금도 고민 중이며, 아니 죽을 때까지 고민하며 살겠지만 나는 그 고민으로 특별히 더 힘든 때가 있었다. 의사는 아픈 사람을 고쳐주는 소명으로 살고 변호사 판검사는 사회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고, 건축가들은 집을 짓고 도시를 설계하는데 나는 뭐지? 

사무실 의자에 앉아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고 전화나 받으며 내가 곧 없어지더라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인생. 내 인생은 누구에게라도 쉽게 대체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 덩그러니 앉아 밤하늘에 별도 못 보고 죽어라 일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고 도대체 나란 사람은 왜 태어난 것인지 이유를 알지 못해 힘들어해야만 했던 긴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은 감옥 같은 학교에 다니며 새벽 6시부터 자정까지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던 고3의  시간보다 더 답답했다. 대학교는 가기만 하면 된다는 목표라도 있었지, 도무지 인생의 목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이십 대 중반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홀로 떠 있는 배 한 척에서 불안에 떨며 등대의 불빛이 간절히 나타나길 기다리는 사람의 심정으로 이십대를 보냈다. 등대의 불빛을 찾으면 육지에 도달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간절한 희망으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닥치는 대로 견뎌내면서 헤쳐 나갔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윌의 말을 곱씹어 보며 생각했다. 내가 너무 목적 자체에만 집착한 것이 아닌가? 내가 무엇인지, 왜 태어났는지 도대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해할 것이 아니라 내 주변도 좀 살펴보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떨 때 행복한지 천천히 찾아보며 나만에 북두칠성을 먼저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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