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미냐노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의 소도시 중 하나이다. 시에나를 기준으로 북서쪽에 위치해 있고 우리 숙소가 있는 포지본시에서 서쪽으로 12km 정도 떨어져 있다. 버스를 타면 30분 정도 걸린다. 조승연 작가님의 유튜브에 따르면 중세시대에 이곳은 순례자들이 지나가는 순례길이었는데 11~12세기에 사프란을 팔아 중인들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그 당시 귀족들은 중인들이 자기네들과 같이 똑같이 될 까봐 겁을 먹고 'Samturary law'라는 법을 제정하여 마차를 탄다거나 리본을 크게 단다거나 귀족과 비슷한 생활을 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돈을 많이 모았지만 이 돈을 쓸데가 없어지자 중인들은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탑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70개의 가문들이 높이 70m가 넘는 72개의 탑을 쌓았고 그중에 지금은 14개 남아있다. 이곳은 199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우리는 이 탑의 도시를 보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산지미냐노에 도착하자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아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도시 입구의 한 가게 처마 밑에 들어가 비를 피하면서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았다. 마른하늘에 부슬부슬 내리던 비를 올려다보니 왠지 금방 그칠 것 같아서 우산은 따로 사지 않았다. 우선 비를 맞으며 도시 안쪽을 들어 가 보기로 했다. 입구에서 길 양쪽으로 낮은 건물들이 도시 안쪽으로 뻗어 있었고 건물 안에 가게들은 와인이나 기념품, 식재료를 판매하고 있었다. 조금만 걸어가자 곧 넓은 광장이 나왔고 그 광장 가운데 우물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왼쪽 편에 젤라토 가게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우리는 젤라토 가게와 우물이 잘 보이는 어느 레스토랑, 테라스에 테이블에 펼쳐진 큰 우산 안으로 쏙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와인을 한잔 주문하고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주문한 와인이 나왔고 와인잔을 공중에 빙빙 돌리며 향기를 맡아보니 향긋한 와인과 신선한 흙냄새가 공기 중에 뒤섞여 콧속으로 성큼 들어왔다. 그러고 나서 혀끝을 와인잔 속으로 살짝 밀어 넣을 때 방금 맡았던 비와 흙냄새가 함께 밀려 들어와 와인의 풍미를 더 해주었다. 후드득 떨어지는 빗속에서 들떠있는 광장의 관관객 들은 잠시 어디론가 흩어졌다.
비가 그치고 우리는 산 지미냐노의 시청사를 끼고 중앙 광장 안쪽으로 살짝 더 들어갔다. 그 광장은 높은 탑들로 둘러 쌓여 있다. 중세시대 돈을 과시하기 위해 높게 올려진 탑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았다. 사람은 돈이 생기면 어떻게 해서든 본인이 다른 사람과 다르고 더 특별하고 고귀하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드나 보다.
19세기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 선생님은 이런 이들을 유한계급이라 불렀다. 나는 이 책, 유한계급을 참 재미있게 읽었다. 그에 따르면 우리 인간들 세상이 미개한 집단에서 야만사회로 넘어오면서 유한계급이 생겨났다고 한다. 야만 사회는 주로 대형동물을 사냥하거나 이웃 마을을 약탈하여 부를 축척했는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이전에 다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쏟았던 에너지를 자신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한에서 자신의 목적 달성하기 위한 에너지로 전환하는 일을 명예로운 일로 생각했다. 바로 강탈에 의한 재산 취득 활동, 다른 말로 약탈이다.
사냥이나 약탈로 획득한 전리품을 탁월한 능력의 증거로 평가했고 강탈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재화를 획득하는 일을 부끄러워했다. 살육행위를 고상한 직무라 여겨 무기나 도구에 신비한 가치도 부여했다. 이 사람들은 존경을 받기 위해 부와 권력을 증거로 제시해야 했는데 바로 시간을 비생산적으로 소비하는 일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생산 활동을 면제받은 사람들이 한가로운 삶을 사는 것을 우아하고 고결하다고 생각했다. 노동은 비천한 일, 경멸해야 할 일, 피해야 할 일이었다. 많은 돈을 가지고 있음을 남들에게 증명하는 최고의 방법은 그 돈이 자신에게 아무 소용없다는 듯이 행동하라는 것이다. 부자들은 하인을 고용하여 자신들을 생산 활동에서 제외시킨다. 그리고 부자들은 편리성을 고려하여 옷을 선택하지 않고 과시적으로 선택한다. 누가 보더라도 금방 금력상 지위를 알아볼 수 있게 표현한다. 그래서 부자들에게 옷은 몸을 보호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그리고 부자들은 본인들을 가치 있는 계급으로 믿기 시작했다. 오늘날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데 약탈 자체가 명예로운 일로 여겨지는 습관이 진화하여 이제는 돈 자체가 명예롭고 존경받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돈이 많을수록 자존심이나 자만심이 높아지는 결과를 가져왔고 성공의 잣대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진취적으로 본인의 노력만으로 자본을 획득한 경우보다 부모가 재산이 많아 증여나 양도받는 경우를 더 세련된 것으로 여기고 있다데 오늘날 갑자기 돈을 버는 신흥부자를 ‘졸부’라고 비판하는 것과 일치한다. 이들은 돈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면서 서로 경쟁하는데 이를 명예롭거나 칭찬받을만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대한 여가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비생산적으로 보낸다는 것을 과시한다.
소스타인 베블런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내가 사는 세상이 진짜 세상이 아니라 우화 속에 나오는 멍청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자들이 마치 바보들처럼 느껴지고 그 속에 살아가며 부자를 존경하고 부자처럼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바보같이 느껴진다. 나는 그동안 왜 돈이 많은 것을 명예롭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자본주의 국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인가? 사회주의 국가에서 태어났으면 돈을 우러러보지 않았을까? 사회주의든 그 어떤 이상을 가진 국가던지 간에 사람들은 돈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약탈적 본성 때문인가? 궁금한데 정답은 없다. 왜 인간이 약탈이나 돈 같은 것을 최고의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지에 대한 연구는 학자들에게 맡기고, 나는 돈을 최고로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세계에 태어났지만 스스로 돈에 대한 가치를 최고가 아닌 다른 레벨로 재정립해 보기로 했다.
돈을 최고로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고 무시하기엔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조차 돈을 주고 사야 하는 마당이기 대문에 현실과 맞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다만 내가 돈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중요해졌다. 돈이 많다는 오직 그 사실 하나 만이 명예롭거나 존경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타당해 보였다. 그러면 돈을 명예롭다고 믿고 이것을 과시하는 사람들과 나 자신을 비교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돈의 가치를 최고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행복의 가치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저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그들이 정해놓은 돈의 가치를 우러러보며 쫓아가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나 스스로의 버전으로 돈의 가치를 재정립하며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 보자는 것이다. 돈을 많이 모으는 것을 인생의 최종 목표로 삼지 않고 돈을 최종 목표에 대한 수단으로 대하며 적당히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게 계획을 세워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때는 돈으로 고통받았다. 특히 남들과 비교하면서 많이 괴로워했다. 책을 읽고 여행을 다니고 경험하며 돈에 대한 가치를 다시 정리하면서 돈이 인생의 주체가 아니라 나를 인생의 주체자로서 놓고 중심을 잡게 되었고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혹시 예전에 나처럼 돈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에게 돈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 비싼 명품이 사고 싶은가 등의 질문을 사회의 기준에서가 아니라 본인 입장에서 해 보며 자신만의 돈의 가치를 정리해 보길 권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