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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Dec 29. 2023

어쩐지 쓸쓸 해 보이는 도시

 그리스 하면 생각나는 도시가 두 개 있다. 아테네와 산토리니.

 산토리니는 사람들이 하도 아름답다고 노래를 불러서 한번 보고 싶었지만 하루 숙박비가 30만 원에 육박했고 물가가 너무 비싸서 포기했다. 반면 아테네는 신화를 품고 있는 곳, 민주주의가 탄생한 곳, 서양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철학자들의 낳은 곳,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에 불을 지핀 곳이라 한번 정도 가 보고 싶었는데 마침 저렴한 에어비엔비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친구를 만나러 그리스 테살라노니키로 가기 전 아테네에 들러 3일 정도 둘러보기로 했다. 

아테네 공항에 저녁에 도착했고 공항에서 숙소까지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아크로폴리스를 기준으로 남쪽에 있는 언덕 어디쯤에 있었다. 숙소에 도착한 날은 이동하느라 눈덩이처럼 쌓인 피로가 눈꺼풀과 어깨에 내려앉아 꼼짝없이 숙소에서 쉬었다. 


 다음날, 일찍부터 부산스럽게 일어나 아테네를 돌아볼 준비를 했다. 

 우리는 여행 내내 사실 한국에 있는 윌 친구들과 '룬 문자(rune)'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아테네 와서 가장 처음 찾아간 곳이 파르테논 신전이 아니고 '룬문자'가 적힌 돌을 판매하는 가게였다. '룬문자'란 말하자면 고대 북유럽, 게르만어의 알파벳이라고 볼 수 있는데, 문자 하나하나에 상징적이고 주술적 의미가 있다. 그래서 북유럽 신화를 영화나 드라마로 만든 영상이나, 게임에서 이 문자를 많이 볼 수 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도 이 문자가 가끔 나오고 미국 드라마 '바이킹'에서도 그 당시 무당들이 이 문자가 새겨진 돌이나 뼛조각 혹은 나무조각을 던지거나 해석하는 장면이 나온다. 문자는 24글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친구들과 각 한 글자씩 일주일 동안 그 글자가 가진 의미와 힘을 생각해 보며 함께 공부했다. 사실 바이킹들이 내려와 온 유럽을 휩쓸고 다녔으니, 유럽을 여행하는 내내 그들의 고대 문자를 공부하는 일은 참 재밌었다. 


 우리는 그리스 뒷골목 어딘가 룬이 새겨진 돌을 구매할 수 있는 가게를 찾아 나섰다. 사람들이 여행을 다니며 여행지에서 판매하는 자석이나 컵, 인형등을 사모으는 것처럼 그냥 왠지 그리스에서 룬이 적혀있는 돌을 사는 것이 뭔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지역 버스를 타고 관광지를 완전히 벗어나 아테네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갔고 버스에 내려서 골목 요리조리 걸어 다녔다.

단지 관광지에서 20~30분 정도만 벗어났을 뿐인데 모든 건물들에 칠이 벗겨져 있었고 문은 닫은 가게들도 많이 보였다. 평일 대낮이었지만 거리가 텅텅 비어 있었으며 골목들에 생기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개발되지 않은 어느 시골 지역에 와 있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예전에 베트남 하노이에 갔을 때 그 도시가 우리나라의 딱 70년대에 멈춰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마치 과거로 시간여행을 온 것 같았다. 못 살고 잘 살고를 떠나 베트남 하노이라는 도시엔 활력이 넘쳤다. 장사하는 사람들, 출퇴근하는 사람들, 볼일 보러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역동적인 도시를 보며 이 도시가 얼마나 성장하고 있는지 피부로 느꼈다. 아테네 사람들에게는 전혀 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테네 낡은 건물들 사이로 비치는 그들의 발걸음이 무겁고 나른하고, 얼굴에 미소도 없었다. 피곤에 찌든 표정과는 달랐다. 건물 사이를 비추는 햇빛마저 활력 없었고 그저 메마른 밝음 만이 페인트칠이 벗겨진 초라한 건물들을 비추고 있었다. 길을 걷는 내내 어쩐지 너무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스의 경제에 관련해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그리스는 1949년 그리스 내전이 끝난 뒤부터 상당한 경제 성장을 기록했지만 2013년 이후로 국가 파산상태에 이를 정도로 힘들어졌다고 한다. 한국이 2017년에 1인당 GDP 31000달러를 달성했는데 그리스는 2008년에 이미 이 숫자를 달성했었지만 지금은 체코, 슬로바키아등 구 공산권 동유럽 후발주자에게도 역전당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은 적자를 기록했고, 2007, 2009년 대규모 산불로 국토의 상당 부분을 손실하는 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저임금, 청년실업률, 정치적 문제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받긴 하지만 2012년에는 15~24세 청년들의 실업률이 50% 이상에 다다랐다고 한다. 그리스 산업 구조가  제조업과 고부가가치 산업이 아닌 운송, 관광, 서비스업, 농업위주인데 이런 부분이 큰 문제가 된 것 같다. 

 

서양의 정신적 뿌리가 이곳에서 온 것이나 다름없는데 이렇게 초라해진 도시를 보고 있자니 씁쓸하기도 하고 아련한 마음이 들었다. 


아테네에서 구매한 'Rune Stone' 룬 문자가 새겨진 돌


메마른 건물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 구글 지도로 '룬문자가 새겨진 돌'을 판매하는 곳을 찾았다. 그곳은 한국의 이벤트 용품 파는 곳 아니면 핼러윈 용품점 같은 느낌이었는데 마법사들이 살 만한 이상한 용품들을 많이 판매하고 있었다. 타로카드, 초, 향, 룬, 주사위 등등. 우리는 룬 스톤의 다양한 컬러와 의미를 고려해 신중하게 골랐다. 그러고 나서 그 근처 어딘지도 모르는 로컬식당에 들어가 기로스(Gyros)를 주문해 먹었는데 저렴하고 맛이 기가 막혔다. 그릴에 잘 구운 통통하고 촉촉한 치킨살에 토마토, 야채, 감자튀김, 그리고 요구르트맛의 차지키 소스가 잘 어우러져 입 안에서 잔치를 벌였다. 튀르키예에서 수 없이 먹었던 치킨 케밥도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케밥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재료가 더 풍부하고 신선한 느낌이었다.


한 로컬 식당에서 먹은 기로스(Gyros)


한국에 돌아와 그리스가 서서히 경제회복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염없는 내리막길을 걸어 바닥을 찍으면 이제 올라갈 수 있다. 어려움을 잘 극복해서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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