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혁명군 총사령관의 이야기
‘... 왕자와 이웃 나라 공주의 결혼식을 보며, 인어공주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바다에 뛰어들어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는 결말은, 믿고 싶은 데로 보이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이 만들어 낸 밈(Meme)일 뿐, 이야기의 전문과 그 내막은 훨씬 기술적이고 정치적이었음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인어공주에 감춰진 정치 공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안데르센이라는 인간이 누구인지 정확히 읽어내야 한다.
1805년 덴마크에서 태어난 안데르센은 급격한 산업화의 후유증에 정면으로 내던져져 졌다. 당시 자본가들은 극도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인간을 기계 부품으로 다루다시피 했는데, 6, 7세 되는 아이들까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장이나 농장 노동에 동원되었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어른이나 아이나 혹독한 노동의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고작 빵 한 조각이었다. 그 와중에 아프거나, 다치거나, 죽어도 그것은 온전히 노동자들의 몫이었고 장례를 위한 관조차 지급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지주나 공장주는 오직 자기 재산을 불리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사람의 생명을 뽑아 배를 불리는 것이 그 당시 자본가들의 미덕이었다. 산업화가 빚어낸 극심한 빈부 차별과 노동 착취의 문제를 비판하는 사상들이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안데르센은 급진적 사상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빈민가에서 태어나 갖은 차별과 고초를 겪어야 했던 안데르센은 이미 십대 때부터 당시의 엄격한 계급 구조에 반감을 드러냈었다.
사회 현실에 대한 불만은 1828년 코펜하겐대학교에 입학한 후의 과격한 투쟁활동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식자로서 노동자들의 집회에 참여했던 경험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천성이 여리고 소심한 안데르센은 경찰이 휘두른 곤봉에 머리를 맞고 잠시 정신을 잃었는데, 이후 그는 물리적 충돌이 예상되는 현장에 나가지 않았다. 평생을 안데르센의 주치의 역할을 했던 한스 보른은 안데르센에 대한 심리분석을 토대로 ‘곤봉 트라우마’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하여간 이러한 안데르센의 위축은 민중에 대한 심각한 죄책감과 부채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내적 압박은 체중을 실어 짓누른 고무공이 한 방향의 틈을 찾아 튀어 나가듯 안데르센의 폭발적 글쓰기를 촉발했다.
그는 글로써 민중의 대변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누구나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징적 동화의 형식을 이용했다.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어체와 관용구문을 사용했다. 당시까지의 전통문학이 고루하고 장황한 문어체 양식이었음을 볼 때, 그는 대중들에게 문학을 즐길 권리를 되찾아준 진정한 혁명가였다. 그리고 그 어떤 혁명가들도 예외일 수 없듯이 안데르센은 선동가의 자질도 드러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프로파간다 작품이 엄지공주, 눈의 여왕, 미운 오리 새끼, 성냥팔이 소녀, 인어공주였다. 당연지사 그 각각의 이야기들에는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자유를 증진하고자 했던 안데르센의 사려 깊은 바람이 들어차 있다.
옥석을 가릴 줄 모르고 존재의 이면을 살필 줄 모르는 21세기 대중들만 이야기의 외적 형식이 전하는 감각적 재미를 전부로 여길 뿐이다. 아마, 안데르센이 지금 살아 있었다면 자신의 작품이 오해되는 사실에 통탄했을 것이다. 사회지도층과 엘리트들의 책상 위에 펼쳐져 있어야 할 혁명의 지침서가 아이들 잠들게 하려고 읽어주는 수면동화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엄지공주]는 그 ‘작은 크기’의 주인공이 상징하는 것과 같이 힘없는 사회적 약자도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음을 강변하는 동화다. 이론의 여지가 없으니 부연 설명은 접도록 하자.
[눈의 여왕]은 한겨울에 남매가 땔감도 없이 추위에 떨며 살던 중, 남동생이 부잣집에 팔려가게 되고, 누나가 천신만고 끝에 쌀쌀맞은 부잣집 마나님과 단판을 벌여 동생을 다시 찾아왔던 실제 사건을 동화적으로 꾸민 것이다. 당시 유행하던 아동매매 풍토에 대한 비판적 풍자이다.
[미운 오리 새끼]는 주지하다시피 인싸들에게 핍박받던 루저가 결국 대기만성한다는 이야기인데, 당시 착취당하던 민중들이 느낀 카타르시스는 상상 이상이었다. 실지로 러시아 반체제 사상가 솔제니친은 1970년대 노벨문학상 수상 후 회식 자리에서, ‘1905년 러시아 혁명 당시 혁명가들이 자본론이 아닌 미운 오리 새끼를 손에 쥐고 있었다면 지금의 소련 꼴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후문이 전해질 정도이다.
[성냥팔이 소녀] 역시 마찬가지이다. 쓰여 진 글의 정치경제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이 소설이 가난한 성냥팔이 소녀의 비극적 최후를 그린 작품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성냥의 판매 촉진을 위한 선전물에 가까웠다. 당시 덴마크는 물론 유럽 전역에는 가혹한 공장노동을 기피하고 프리랜서로 가판대를 운영하는 소녀 판매원들이 증가 추세였는데, 그중에 가장 열악한 부류가 성냥팔이였다. 왜냐하면, 다른 가판과 달리, 눈이 오거나 비가 와서 습기가 차면 판매물의 가치가 상실되어, 투입한 자본금을 회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안데르센은 젖은 성냥 더미를 바닥에 내 던지면서 하늘에 대고 욕지거리를 하는 소녀를 보게 되었는데,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이러한 신성 모독이 국가의 존망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여 성냥팔이 소녀라는 제목의 소설로 가판 소녀들의 성냥 판매량 증진을 도모했다. 실로 당시 기록을 보면 소설이 소개된 후로 성냥 판매량이 얼마나 급격히 늘었는지, 50대 사내가 여장을 하고 성냥을 팔다가 그 구역 성냥팔이 소녀 길드에 걸려 봉변을 당했다는 기록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런 터인데, 인어공주만이 정치-사회 현실과 관계없는 사랑 이야기일 수 있었겠는가.
그러면 왜? 인어공주는 아무리 뜯어봐도 그러한 정치경제학이 느껴지지 않는 사랑의 환타지로만 느껴지는 것일까? 인어공주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당시 출판업자는 안데르센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었다. 안데르센이 허고 헌 날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동화를 통해 표출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 갈등의 정점에 인어공주가 있었다. 출판업자는 인어공주 원고의 곳곳을 도려냈다. 하지만, 안데르센 탄생 200주년 기념한 2005년에 잘려나갔던 문장이 발굴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이를 통해 재구성된 이야기의 혁명성은 과히 충격을 안겨 주었다. 가령 우리가 알고 있는 인어공주의 결말 다음에는 다음과 같은 추가된 문단이 있었다.
‘... 소식을 듣고 갑판으로 뛰어나온 왕자는 거품을 남기고 사라진 인어공주야말로 자신이 사랑했던 이었음을 알게 되었어요. 왕자는 인어공주를 따라 바다에 뛰어들었어요. 왕과 왕비는 그 충격으로 즉사했어요. 왕국의 대가 끊겼고, 이후 역사 속에서 사라졌답니다. 바다 왕국에서는 한바탕의 축제가 벌어졌어요.’
도대체 소설의 마무리가 어찌 된 상황인지 독자들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왜? 이 내용이 혁명적이고, 충격적이라고 하는지, 바다 왕국에서는 왜 축제를 벌였다는 것인지, 맥락을 모르는 독자들은 도통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 속에 자취를 감췄다가 부분부분 복구된 아래의 몇 문단을 추가로 확인한다면 그 의문은 말끔히 해소될 것이다.
’바다 위에는 세 개의 돛대를 가진 큰 배가 떠 있었어요. 그들은 왕자의 생일을 맞이하여 거창한 파티를 하고 있었어요. 얼마 전 인간이 갈고리를 이용해 뜯어갔던 산호 궁전의 일부는 전리품이나 된 듯 배 위에 장식되어 있었어요. 포획된 바다 친구들의 살점이 찢겨져 잔칫상으로 올라가고 있었어요. 조금 전에 잡힌 문어는 인어공주를 보며 살려 달라고 여덟 개의 팔을 차례로 세차게 흔들었어요. 인어공주는 두려워서 물속에 숨었고 여덟 배로 죄책감이 들었어요. 인간이 버리는 그물과 갈고리, 쓰레기로 인해 바다 생물들 목이 감겨 숨통이 조여지고, 입이 찢어지고, 코가 막히는 고통은 엄청났어요. 그런데 여기에 더해 배의 선상 위에서 벌이는 것 같은 직접적인 학살로 인한 바다 생물들은 공포에 떨었어요.’
‘그들은 파티하면서 수많은 쓰레기를 바다에 집어 던지고 기름을 바다에 부은 후에 총을 쏘아 파도를 불태웠는데, 폭죽놀이와 함께 밤으로까지 이어졌어요. 육지 사람들이 재미로 뿌린 기름은 온 바다를 뒤덮었고, 밤새 이어진 소란함으로 바다는 잠을 이를 수 없었어요.’
‘할머니가 당부했던 데로 폭풍우가 거세지자 인어공주는 배 밑바닥으로 가서 널빤지를 하나 뜯었어요. 잔잔한 바다에서 그랬다가는 인간들이 지금껏 의 배의 침몰 원인을 알게 될 것이었고, 피의 보복이 있을 것은 자명했어요. 하여 폭우가 칠 때만 이런 작업이 이어졌어요. 나머지 자매들도 다른 바다에서 배 밑판을 뜯고 있을 것이었어요. 잘 뜯기지 않아 힘을 주다 보니 인상이 흉측해 졌어요. 마침 이 모습을 본 선원이 ’크라켄이다!‘라며 비명을 질렀지만 이미 늦었어요. 뜯긴 널빤지 안으로는 바닷물이 쏠려 들어갔고 배는 침몰했어요.’
‘그리고 기획했던 바대로 육지국 왕자만을 구출해서 뭍으로 이끌었어요. 중간에 선원 하나가 인어공주의 팔을 잡으며 살려달라며 간청했지만 공주는 지느러미로 쳐냈어요.’
‘왕자를 구해 해변가에 눕힌 후에 그의 귀에 대고 노래를 불렀어요. 지나가던 게고동을 잡아 게를 빼서 집어 던지고 고동을 나팔 삼아 왕자의 귀에 노래를 불렀어요. 왕자의 무의식에 갈망을 심는 과정이었어요.’
‘... 인간으로 변할 수 있게 해 주는 대신 목소리를 앗아간 것은 사실은 마녀가 아닌 주술사였어요. 짜고 치른 일이었어요. 인어공주와 주술사는 절친이었어요. 벽돌 감옥을 만들어 자기 집이라고 주장하며 사는 인간과 달리, 같은 집을 공유하는 바다 생물끼리 반목할 이유가 뭐가 있었겠나요. 인어공주가 주술사와 비밀스러운 거래를 하는 듯 연기 한 것은, 육지에서 파견된 거북이 같은 스파이에 대비하기 위한 역공작이었어요. 거북이가 혹여나 바다왕국의 계략을 눈치채고 육지 왕국에 전하면 만사를 그르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하여 표독한 마녀가 가엾은 공주의 목소리를 빼앗는 것처럼 일을 꾸몄던 거예요. 주술사는 허고 헌 날 바다로 떨어지는 쓰레기 때문에 일상을 영위하기가 어려워 육지 인간에게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기에 이런 기회를 얻은 것을 영광으로 알고 멧소드 연기에 최선을 다했어요. 이 사실을 잘 모르는 다른 물고기들은 분한 마음에 주술사를 들이받기도 했답니다.’
‘인어공주는 애초에 배와 함께 왕자를 수장시킬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왕과 왕비는 여전히 번식력 왕성한 40대 중반의 육지 동물이었기에 왕국을 이을 다음 타자를 생산해 낼 수 있었어요. 하여 이 셋을 한꺼번에 처치해야 할 방법을 모색해야 했던 거예요. 그간 입수한 여러 정보를 바탕으로 육지 인간들은 자식의 죽음에 가장 큰 충격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특히나 가장 큰 희열의 순간에 충격을 안기는 방법이 절명에 효과적인 사실도 알았어요. 공중에 들어 올렸다가 내리꽂는 것이 그냥 주저앉히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듯 말이에요. 하여, 복잡한 계략을 통해 그렇게 왕자가 왕국의 가장 큰 축제일인 결혼식 날 절명케 함으로써 왕과 왕비도 함께 무너지게 할 방법을 획책했던 것이에요. 바다 왕국 생물들이 손을 맞춰 이뤄낸 그 기획은 뜻대로 잘 진행되어, 최면에 빠진 왕자의 결혼식이 치러지는 데까지 이르렀어요.’
‘인어공주는 자매들이 왕자를 죽이라며 전해준 칼을 바다에 던졌어요. 인어공주는 가녀린 표정과 흐느끼는 대사를 쏟아내며 왕자가 잠들어 있는 모습을 한번 쳐다보고는 배의 난간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어요. 옆에 경비병이 놀라서 보고 있었기에 일부러 연출한 것이었어요. 뛰어든 바닷속에서는 거품이 일었어요. 그런데 선원 중 누군가 ‘거품이 되어 사라졌다’라고 외쳤어요. 바다에 질량을 가진 물건이 빠지면 거품이 이는 것은 당연하였어요. 돌멩이를 하나 던져 보세요. 하물며 80kg이 넘는 육중한 물고기가 바다에 빠지는데 말할 나위 없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거품이 되어 사라졌다’라는 소리를 지르니 어떤 신비함과 엄숙함이 덧붙여지고 스토리의 서사구조가 만들어지는 듯했어요. 하여 멀찌감치에서 바라보던 인어공주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어요.’
자,
이것이 지금껏 복원된 인어공주의 이야기들이다. 이 직후 (처음에 인용한 바대로) 충격받은 왕자는 바다에 뛰어들었고, 왕과 왕비가 쓰러졌다. 육지 왕국의 통치체제가 무너졌고 각종 반란이 발생하면서 결국 왕국은 주저앉았다. 이로 인해 전제적인 통치 체제하에서나 가능했던 잉여생산이 불가능해지자 돛이 세 개 달린 대형 선박 건조가 불가능해 졌다. 당연한 결과로 먼바다의 오염이 줄어들었음은 말할 나위 없다. 바다 왕국에서 축제를 벌이게 된 이유이다. 이렇다 보니 혹자는 인어공주가 배에서 뛰어내릴 때 올라왔던 거품이 샴페인이 아니었나 하고 추정한다.
어쨌든 이렇게 원래의 인어공주는 해양 오염의 문제를 다루면서 인간의 야만성을 비판했던 폭로 소설이었던 것이다. 150년이 지난 지금 안데르센의 가치가 재조명되는 이유는 21세기 환경오염의 문제까지 내다봤던 깊은 혜안 때문이다.
최근 지구가 요동을 치고 있다.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영구동토 지역이 불벼락을 맞아 녹아내리고 있는가 하면, 쏟아지는 폭우로 마을이 쓸려 내려간다. 거주지는 바다에 잠기고 인간의 생존 공간은 점점 좁아지며, 식량은 줄어들고 있다. 바다에서 증발되는 막대한 양의 수증기는 대기권을 덮는 거대한 막을 형성해 찜통을 만들고 지구적 재앙의 악순환을 부추긴다. 바다의 복수가 시작된 것이다. 이 작전의 지휘를 바다왕국군의 총사령관 인어공주가 맡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