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딸아이가 학교에서 소풍을 가던 날, 차이나 타운으로 소풍을 가는 덕분에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되는 날이 있었다. 점심으로 그곳에서 짜장면을 먹는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김밥을 싸는 수고도 덜었고, 아이도 짜장면이라는 메뉴에 꽤나 만족스러워했다.
아이를 보내고 하루의 일과로 시작하는 아침 운동을 갔다. 운동 전 다른 아이 엄마와 소풍 이야기를 하다가 도시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이번 소풍은 도시락을 안 싸도 돼서 너무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나이 지긋하신 어머니께서 "일 년에 한 번 싸면서 뭐가 힘들어서 그래~"라며 웃으면서 한마디 거드셨다. 순간 우리 둘 다 민망함에 멋쩍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그 시절 12년 동안 새벽에 일어나 나와 오빠의 도시락을 쌌을 엄마를 생각하니 사뭇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반면 나는 일 년에 한 번 싸는 소풍 도시락에 부담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괜히 딸아이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도시락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 주변 엄마들은 모두 급식 세대라고 했다. 갑자기 세대 차이가 느껴져 그나마 두 살 아래인 엄마에게 공감을 얻고 싶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언니, 저도 고등학교부터는 급식세대예요.."였다. 뭔지 모를 배신감이 느껴졌다. 나만 옛날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아마도 내가 도시락의 마지막 세대였나 보다. 하지만 비록 옛날 사람이 됐을지라도 학창 시절 내내 나는 온전히 엄마의 정성 가득한 도시락을 먹으며 학교를 다녔다. 화려한 반찬의 도시락은 아니었지만 소박한 엄마의 도시락이 단 한 번도 맛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그때는 달그락 거리는 도시락통을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것이 사춘기 소녀에게는 귀찮고, 창피한 일이기도 했지만 점심시간만큼은 학교 생활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친구들끼리 비빔밥을 해 먹기 위해 각자 반찬을 정해 오는 날도 있었다. 또 가끔씩 별식으로 매점에서 라면을 사 먹는 날은 책가방이 가벼워 마냥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야말로 추억의 도시락이다.
그래서 아마도 가끔씩 식당이나 술집 메뉴에 있는 추억의 도시락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걸까.
급식 세대들이 추억의 도시락을 먹으며 떠올릴 추억이 있을까?
언젠간 그들을 위한 추억의 급식 메뉴가 나오려나?
음... 상상만으로도 추억의 급식은 뭔가 낭만적이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