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오늘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리진 Feb 26. 2024

1일 1면



나는 참으로 면을 좋아한다.

어릴 적, 밥을 잘 먹지 않아 깡마른 체구에 또래보다 왜소해 늘 엄마의 걱정에 영양제를 달고 살았다.

허약체질 영양제부터 식욕촉진제, 입맛을 살려준다는 각종 한방약재까지 엄마의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의 식욕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밥을 먹기 싫어하는 나에게도 좋아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면이었다. 엄마가 칼국수나 국수를 끓여주는 날이면 홀쭉했던 배가 올챙이 배처럼 불룩 튀어나올 정도로 나의 평소 양보다 훨씬 많이 먹었다. 그런 면사랑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라면, 우동, 잔치국수, 칼국수, 쫄면, 비빔국수, 파스타, 메밀소바, 냉면 등등 각 면별로 그 맛의 종류까지 나열하면 어마어마한 종류의 면들을 여전히 좋아한다.

요즘은 1인 테이블도 많고, 혼밥 하기 좋은 식당들도 많지만 내가 회사 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식당에서 혼밥은 하는 일은 왠지 부끄러웠다. 그래서 끼니를 놓치거나 점심 짝꿍이 없는 날에는 대충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사 와 책상 앉아 일을 하며 먹곤 했다. 그러던 중 남을 의식하지 않고 혼자 앉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많지 않던 그때에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고 벽을 바라보고 앉아 자신이 주문한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는 국숫집이 회사 근처에 새로 생겼다. 일이 바빠 끼니를 놓칠 때면 잠시 짬을 내 후루룩 뚝딱 먹고 오기 좋은 곳이었다.

차라리 굶고 말지 혼밥은 절대 못하던 내가 혼밥을 할 수 있는 장소는 바로 그 국숫집이 유일했다.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게 되면 이래저래 먹는 음식들을 조심하기 마련이다.

주변에서 임신을 하면 해산물도 조심해야 하고, 탄산음료, 커피도 마시면 안 되고 밀가루 음식은 아이가 아토피가 생길 수 있으니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었지만 밀가루만큼은 끊기가 어려웠다.

임신을 했다고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었고, 당기는 거라고는 평상시에 좋아하지도 않던 포도와 면, 면, 면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스트레스를 받느니 기분 좋게 맛있게 먹는 것을 선택했다.

다행히 딸아이는 얼굴이 뽀얗고 보드라운 피부와 머릿결을 갖고 태어났다.

요즘도 나는 거의 1일 1면 중이다. 어떤 날은 1일 2면을 하기도 한다.

평일 낮은 대부분 혼자 밥을 먹다 보니 그냥 대충 혼자 라면을 먹거나 그 외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면을 먹곤 하고 주말엔 아이가 좋아하는 짜장면이나 파스타를 먹곤 한다. 그러다 보니 면을 먹지 않는 날은 거의 드물다.

딸아이도 나 만큼이나 면을 좋아한다. 그 덕분에 삼시세끼 뭘 먹어야 하나 고민하게 되는 방학중에도 딱히 먹을 만한 메뉴가 떠오르지 않으면 한 끼 정도는 면으로 해결한다.

나이가 드니 밀가루 음식은 줄여야지 마음을 먹었다가도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면 자연히 면이 생각나고 그냥 대충 때우고 싶은 끼니에도 면이 생각나니...

아무래도 나는 면 중독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들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출근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