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운동으로 필라테스를 시작한 지 일 년이 조금 넘었다.
아이가 등교할 때 나 역시 운동 갈 준비를 하고 일찍 집을 나선다.
운동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나가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운동을 가곤 하는데 그 시간이 아이들 등교시간과 같다 보니 매번 엘리베이터 안에서 등교하는 아이들과 등교를 시켜주는 엄마나 할머니들과 마주치곤 한다. 사실 운동을 하는 횟수는 일주일에 두세 번인데, 운동을 하지 않는 날에도 같은 시간에 나가 커피를 마시고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온다.
"어디 출근하세요?"
"아니요~ 운동가요."
운동이 없는 날에도 같은 시간 출근하듯 나가는 이런 생활이 시작된 건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아이가 저학년일 때는 매일 아이의 등교 메이트가 되어주었다.
3학년이 되자 친구들과 함께 등교하길 원했고, 자연스레 나의 아침 할 일 하나가 사라졌다.
아침에 아이와 집을 나서는 일은 귀찮으면서도 나를 아침형 인간으로 바꿔줬다.
애니메이션 일을 15년 넘게 하면서 나는 지극히 올빼미형 인간이었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선택적 아침형 인간으로 바뀌었다. 아이와 함께 등교할 때는 아침이 분주했다.
아무리 가까운 거리의 학교이지만 눈곱만 떼고 운동복 바람에 집 앞을 나서는 건 나 자신을 너무 놓아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미 아이를 낳고 어린이 집을 보내기 전까지 나 자신을 놓아 봤기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고 아침 공기를 마시며 아이 손을 잡고 등굣길을 함께 걷는 일은 나름 기분이 좋았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서고 멀어지는 뒷모습을 지켜보다 아이가 뒤돌아 손을 흔드는 모습이 작은 행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3학년이 되어 등교메이트가 생기고 엄마와의 등굣길을 거부했다.
매일 아침 함께 나서는 일이 나름 즐거움이었는데 집을 나서는 딸아이의 뒤통수에 인사하고 돌아서면 공허함 마저 느껴졌다. 나는 다시 별일이 없으면 집 밖을 나가지 않는 집순이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뭔지 모를 무기력감에 멍하니 오전 시간을 보내다 아이가 집에 돌아오는 오후가 돼서야 내 하루가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그런 날들이 몇 달 반복되다 운동을 시작했다.
워낙에 몸 상태가 여기저기 삐걱거리는 곳이 많아 재활느낌으로 필라테스를 시작하게 되었다.
여유 있게 늦은 오전이나 오후에 운동을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아이가 등교하는 시간에 맞춰 함께 일찍 나가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하루를 활기차게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비록 운동을 가는 길이지만 단정한 차림새로 집을 나서서 운동 전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이 나에겐 유일한 사회 활동 시간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나면 약속하지 않아도 동네 친한 엄마들 두어 명이 학교 앞 커피숍으로 하나, 둘 모여들었다. 약속하고 모인 자리가 아니기에 때에 따라 테이크 아웃만 해서 자리를 뜨기도 하고, 함께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본인의 스케줄에 맞춰 하나, 둘 일어섰다.
한 시간 남짓 시간이 되면 장을 보러 가는 사람, 나처럼 운동을 가는 사람, 볼 일이 있는 사람등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쿨하게 일어선다. 약속하지 않는 자리이기에 한 사람도 오지 않는 날은 나 홀로 책을 읽다가 운동을 가곤 한다.
그나마 지금은 아이의 방학으로 나의 사회활동은 아니 출근활동은 잠시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