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한줄이 된 해병대 생활기

거짓없는 실제 경험한 팩트

by 태평성대


입사지원을 할때면 신입이건 경력직이건 군복무 내용을 입력해야 한다.

나는 해병대 기갑을 입력한다.


내세울 건 없지만 그래도 작은 스펙이 되는것 같기도 한 해병대 생활을 가감없이 100% 리얼 팩트로만 정리하고자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더 이상 기억이 희미해지기전에...


1. 자원입대

당시 육군은 입대하면 반년 정도의 대기시간이 있었고 해병대는 합격만 하면 바로 입대를 할 수 있었다.

해군과 공군은 군생활이 길었고 빡세게 있어보이고 싶은 마음에 해병대를 자원했다.

체력 테스트와 면접도 보았는데 체력은 팔굽혀펴기 72개가 만점, 윗몸일으키기 60개가 만점이었다.

팔굽혀펴기는 72개를 했고 윗몸일으키기는 5x 개를 했었다. (시간제한이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고등학교 출결상태였으며 나는 all 개근으로 무난하게 합격을 했다.


합격 팔표 후 약 3주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첫 1주는 대학선후배 및 동기들과 술을 마셨다. 특히 이미 해병대를 전역한 2명의 형과 함께 마셨는데 소주를 글라스로 3배주를 했다. 술을 못하는 나인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땅바닥에 고꾸라 졌었다.


집에도 다음주에 군대를 간다고 1주일 전에 알렸다.


"그걸 왜 지금 얘기하냐"


"2년 뒤에 올꺼고 휴가때마다 올건데 뭐... 오히려 학교 땜에 기숙사 생활하느라 집에 거의 못오기 때문에 군대 가면 더 자주 올것이다"


잘 챙겨줬던 후배가 입소하는 날 따라 오겠다고 했으나 거리가 너무 멀다고 말렸고 부모님께도 혼자 가겠다고 했다.




2. 하늘이 반겨준 입소식

입소하는 날에 태풍이 왔다. 트레이닝 바지에 반팔티와 반팔카라티를 입고 우산과 신분증 그리고 입영통지서를 들고 훈련소가 있는 포항으로 갔다.

기차를 타러 가는데 이미 우산이 큰 소용이 없었다. 훈련소 앞에서 버스를 내리고 나니 물이 발목까지 흐르고 있었다. 우산은 쓸모가 없어져서 버렸다.

TV에서 보던 입소식날 연병장에서 입소식을 하고 부모님께 큰절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태풍이 왔기에 교관들이 빨리 강당으로 모이라고 했다. 거기서 간략하게 입소식을 했고 또 다시 버스로 올라타라고 했다. 버스에서 동기들이 가족들과 손 인사를 하는게 마지막이었다.

이후 우리는 식당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교관의 태도도 달라졌다.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했지만 바지에 싸서 말리라고 했다.

맨 뒷쪽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눈치를 봐서 동기 2명과 같이 몰래 밖으로 나가서 노상방뇨를 했다.

때마침 식당 정리를 하던 주계병(취사병) 들에게 걸려서 된통 혼이 났다.

식당에서는 친척중에 기자, 연예인, 장성급등이 있는지를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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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훈련소 생활

가입소 기간 1주를 포함해서 총 7주간의 훈련을 받았다.

가입소 기간 1주 동안은 군복이 나오질 않는다. 1주 동안 체력시험을 보고 여러 신체검사등을 한 다음에 입대 불가능한자를 선별한다. 그래서 1주일 동안 같은 옷을 입고 다녔다. 여름인지라 젖은채로 나가도 햇빛에 금방 마르긴 했지만 냄새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1주일이 지나고 입대 불가능한자들이 나왔고 추가로 교관들이 물었다.


"귀가하고 싶은 사람은 지금 나오면 집에 갈 수 있다"


실제로 몇몇이 손을 들어 나갔고 그렇게 총 3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실제로 군버스를 타고 퇴소를 했다.

그리고 나서 교관들이 재차 귀가자를 물었는데 그때 손을 든 사람들은 호되게 혼났다.

이미 버스는 떠났다고...


입대불가능자 관련 전설처럼 내려오는 얘기가 있다.

한 훈병(훈련병)이 여러번의 지원끝에 합격을 했지만 입대불가능한자로 되어서 귀가 조치가 내려졌다고 했다.

너무나 억울한 나머지 귀가하는 군버스를 타러 가면서 소리 쳤다고 한다.


"내가 특전사 가서 해병대 보이는 애들 다 뭉게 버린다"


그리고서는 전설의 하얀 하이바 해병대 교관(DI)가 뛰어와서는 그 훈병의 뒷덜미를 잡고 말했다.


"너 합격. 따라와"


훈련기간 내내 온갖 고생을 했다고 한다.


드디어 군복을 받았지만 CS 복이라고 하는 썩어 없어질 것 같은 오래된 훈련복으로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사복들은 집에 택배로 보냈다. 다들 엄청난 냄새를 동반했다.


해병대 훈련은 주차별로 정해진 훈련들이 있다.

하지만 나의 기수는 날씨로 인해서 뒤죽박죽으로 훈련을 받았다. 그래서 격봉으로 1:1 전투하는 훈련은 해보지도 못했다.


주말에는 예비사격술(PRI)와 총검술의 연속이었다.

총을 들고 계속해서 연습하니 몸이 성할 날이 없었다.


각개전투 훈련장도 거듭된 비로 진흙이과 흙탕물 천지였고 실탄을 쏜다고 했지만 안전하게 허공으로 쏘는 것이었다. 그 것을 뚫고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 바로 각개전투 훈련.

수류탄도 터트린다고 했는데 안전 때문에 미리 터트리고 난 후 훈련을 했다.


각개전투에서는 여러 포복을 하는데 그 포복훈련을 자갈밭에서 시켰다. 몸 전체가 다 까져 나갔다.


화생방은 실제로 너무 고통이었다. 숨을 못셔서 죽는다는게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다. 어쩔 줄 몰라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막대기로 맞기도 했고 동기 한명은 탈출할려고 교관을 밀치고 나가기도 했다.


유격훈련에서는 기억에 남는게 2개 있다. 하나는 타워에서 레펠로 내려오는 훈련인데 동기 한명이 내려오다가 그대로 떨어져 버렸다. 아래가 모래인지라 큰 탈은 없었지만 그래도 소리에 놀랐다.

또 하나는 교관이 유격중에는 온갖 기합을 준다.

팔 벌려 높이뛰기를 시켰는데 100회를 하라고 했다. 그러더니 소리가 작다고 700회를 하라고 했다.

하다가 중지 시켜주겠지 했는데 실제로 700회를 다 했었다.

20대의 체력은 미쳤구나


5주차에는 극기주 훈련을 했다. 상륙작전으로 적진에 들어갔을때 최소한의 자원으로 살아 남는 훈련이었다.

한정된 양의 밥을 먹어야 했고 훈련은 더 힘들어졌다.

자는 중에 2번 정도 불러서 목봉체조를 시키고 바닥에 누운 뒤 어버이 은혜 노래를 부르게 했다.

우는 동기가 많았다.


훈련의 꽃은 천자봉 행군과 빨간 명찰 수여식이다. 천자봉 행군은 해병대의 상징과 같은 것으로 그 행군을 해야지 진정한 해병이 된다는 의미가 있었다. 발을 다친 동기가 있었는데 끝까지 행군을 했던게 기억에 남는다.


훈련소 순검(점호) 에 실제로 로봇 처럼 움직이는 교관의 순검을 보았고 총을 현란하게 돌려가며 검사를 하는 교관도 보았다. 숨막히는 순검이었다. 내 체스터(관물대)의 서랍이 주에 2~3번은 교관에 의해서 내팽겨 쳐 졌다. (정리가 잘 안되어 있다는 이유)


4. 후반기 교육(특기 교육)

나와 같이 총 4명이 장갑차병이 되었다. 2명은 포항, 1명은 김포, 1명은 연평도였고 나는 김포로 배치 받았다.

전남 장성에 있는 육군기계화학교로 입교를 해야 했다.

훈련소 소대장이 버스정류장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악수를 하는데 그동안 훈련받은 내용은 다 잊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할 뻔했다. (군인은 고개를 숙이지 않고 경례 해야 한다)

동기 4명이서 고속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휴게소에 버스가 정차를 했다.

나는 훈련소에서 그렇게 맛있었던 건빵을 사서 먹었다. 그 맛이 안났었다.

입교를 했고 육군들과 함께 교육을 받았다. 처음에 육군 친구들이 해병대를 무서워 했는데 같이 지내보니 웃긴놈이라고 살갑게 대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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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실무(자대)로 가다

4주간의 교육이 끝나고 김포로 이동을 했다. 다른 후반기 교육을 받은 친구들과 같이 이동했는데 그때 한 동기가 어머님께 전화를해서 영등포역에 마중을 나오셔서 짜장면을 사주셨다.

대부분 바로 실무로 갔지만 나를 포함 3명이 3일동안 대기를 해야했다.

아마 사격대대로 갔던 것 같은데 그곳이 마지막 파라다이스라고 동기들이 얘기해주었다.

3명이서 사격대대로 가는데 위병소에서 암구어를 했다.

당연히 암구어를 몰랐기에 "신병입니다" 라고만 계속 외쳤다.

그 선임들이 약간의 편한 자세로 근무 중이었어서 놀랬었나 보다. 급히 우리를 안보이는 곳으로 끌고 가더니

때릴듯이 겁을 주었다. 하지만 맞지는 않았다.

짬을 버리러 갈때에도 그 위병소를 지나야 했는데 저녁때는 항상 암구어를 했고 우리는 "신병입니다. 짬 버리러 갑니다"라고 계속 했지만 그래도 계속 혼이 났다.

대기만 하면 되는 곳인데 사격대대라 그런지 실탄이 많이 남는다고 사격훈련을 시켜주었다.

2박 3일의 마지막날 내가 갈 실무(자대)의 운전병 선임이 나를 데리러 왔다.

그렇게 본격적인 해병대 생활이 시작되었다


6. 실무(자대) 생활

신병전입은 나 혼자였다. 대대장과의 단독면담을 가졌다. 인자한 표정의 대대장님께서 부대에 대해 얘기해주셨고 질문이 없는지 물어보셨다.

없다고 하면 안될 것 같기도 했고 20대의 나는 눈치 안보고 당찼기 때문에 질문을 했다.


"훈련을 많이 받고 싶은데 어떤 훈련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대대장님은 당황한 기색으로 답해주셨다.


"군에서는 훈련을 많이 받는 군인도 있고 경계근무나 행정업무를 하면서 지키는 군인들도 많이 있다. 우리는 훈련보다는 경계근무위주를 하게 될 것이다"


속으론 아쉬워했지만 그래도 기본 훈련은 받는다고 해서 기대도 되었다.


그리고 주임원사와 면담을 가진 후 중대장과의 면담이 이어졌다.

그때는 몰랐는데 중대장실 게시판에 내 이름과 함께 '관찰' 이라고 적혀 있었다.

대대장과의 면담과 2박 3일 잠시 머물던 곳에서 행했던 설문조사 등의 내용으로 인해서 흔히 말하는 '관심사병' 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오해는 일주일도 안되서 풀리긴 했지만 그 기간동안 선임들의 이상한 눈빛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도 초고학력은 아니지만 수도권에 있는 우리나라 10위안의 종합대에 다니고는 있었다.

당시 내가 있떤 부대에는 고학력자들이 별로 없었다. 고려대, 경희대, 철도대, 인하대, 부산대가 이름을 들어본 곳이 였고 나머지는 전문대거나 이름을 잘 들어보지 못한 곳이었다.

그래서 학교 때문에 갈굼을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외부검열이나 무엇을 외워야 하는 일은 차출되야만 했다.


나의 군생활은 경계근무와 작업의 연속이었다.

주말은 축구와 청소가 계속 되었다.


경계근무는 매일 1~2회를 서야 했다. 주간에 1번, 야간에 1번 5~6일에 1번씩 야간에 근무 없는 날이 있기도 했고 그런 날은 '긴밤' 이라고 불렀다.

나를 유독 괴롭히는 선임이 있었는데 그 선임과 함께 경계근무를 들어가는 순간은 지옥이었다.

나의 뒤에서 정강이를 걷어차거나 머리를 때리거나 하는 등의 구타가 이어졌다.

오늘 무엇을 잘못했냐고 물었고 모르겠다고 하면 때리고 억지로 하나 이유를 대면 또 때리고 그런 식이었다.

내가 첫 경계근무를 들어가는 날 추위에 약한 나는 잘때 입었던 체육복 위에 군복들을 입었다. 군복안에 체육복일 입었다고 욕을 먹었었다.


PX 악끼바리라는 것도 1번 해봤다. 과자들과 냉동들을 엄청 사 놓고 시간안에 다 먹으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다행히 요구르트가 아닌 1.5리터 미란다가 마실 것으로 있었고 입 까치는 빠다 코코넛 같은 것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PX 회식을 할때면 냉동을 엄청 많이 산다. 냉동이라 해봤자 만두와 닭강정 2가지였다.

하지만 쫄병이던 나는 남김없이 그리고 지체없이 먹어야 했기에 우겨 넣었다.

그렇게 먹고 야간 근무 때문에 잠에서 깬 날이면 속에서 만두 냄새가 배겨서 고생이었다.

동기 한명은 밤에 토를 했었다고 했다.


전입 후 얼마 안 있다가 신병 위로휴가를 갔다. 육군의 100일 휴가와 비슷한 개념이다. 4박 5일의 짧은 시간이었고 나는 부산의 집으로 갔다. 물론 할 건 없었다. 애인이 있지도 않았고 술도 좋아하지 않았고 사람 만나는걸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휴가 복귀날 밤에는 폭설이 왔다. 자다가 일어나서 제설 작업을 했다.


내무실별로 빨래 건조대가 1개씩 주어진다. 짬 순으로 3~4 줄 씩 쓸수 있는데 쫄병이라서 할당 된 곳이 없었다. 그래서 야외 비닐하우스 같은 곳의 건조장을 이용해야 했다. 겨울이었는데 양말이나 속옷을 말리면 꽁꽁 얼었다. 언 것을 들고와서 녹이면서 입었다.

속옷 제외한 군복은 그래도 선임들이 군복 빨래를 돌릴때 함께 세탁기를 돌릴 수 있었다.


부대 특성상 목욕탕이 있었는데 탕 자체는 병장만 이용 가능했다. 나머지는 샤워만 하는데 가끔 내무실 병장 선임이 들어 오라고 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주말 청소는 선임들의 군화, 매트리스, 침낭을 털고 햇볕에 말리는 작업과 함께 내무실 대청소를 했다.


보급으로 나오는 라면은 일병 5호봉이 되야 혼자 먹을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선임이 먹자고 하거나 야간 근무를 서고 난 후에 먹을 수 있었다. (그것도 선임이 먹자 해야)


일병 휴가때는 선임들과 함께 나갔는데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그 전에 근처에서 감자탕과 술을 마셨다. 글라스로 매겼다. 취한채로 비행기를 탔다. 구토를 하는 봉지에 토를 했지만 계속 속이 울렁 거렸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활주로에서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야 했는데 다시 구토가 올라왔다.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당시 비행기 청소를 위해 대기하고 계시던 분들에게 지금 토할 것 같다고 하니 그냥 활주로에 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비오는날 해병대 정복을 입고 활주로에 토를 했었다.


휴가때 보통 선후임들이 심부름을 많이 시킨다. 커피, 담배등등을 사오라고 한다. 물론 외부 물품을 사들고 오면 안된다. 하지만 다들 한다. 휴가를 복귀하면 나는 PX에 심부름 한 물품들을 맡긴다. 그러면 내무실에서 한명이 내려가서 PX에서 물건 사온거 처럼 하면서 그 물픔을 가져 오는 식이었다.


일병때에는 다림질 담당이다. 휴가 나갈때 입는 정복을 찾고 다려야 한다. 내무실 사람들이 휴가 나갈때마다 각 내무실을 돌아다니며 맞는 사이즈를 구해 와야 한다. 그렇게 사이즈가 컨펌 되면 이제 다림질을 해야 한다.

쇠 다리미로 누르면서 줄도 만들고 하는데 일병이니 개인 시간이 없었다.

주말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하거나 야간 근무 없는 긴밤인 날 밤에 일어나서 하거나 야간 근무를 서고 복귀한 다림질을 했었다.


부대에 잣나무가 많았다. 한번은 돌로 잣을 떨어트리고 군화로 껍질을 깐 다음에 잣들을 건빵 주머니에 모았다. 그리고 경계 근무를 들어가서 후임과 함게 나눠 먹었다.

근데 그게 CCTV에 찍혔고 중대장이 보고 말았다. 직접 찾아와서 잣인지 확인을 한 후 어이없어 했다. 군기교육대를 보낼까 했지만 봐주었었다.


나는 꼬인 군번이었다. 나보다 6기수(3달) 이내로 차이나는 선임이 30명 이상이었고 반대로 후임은 3명이었다.


해병대에는 계급과 호봉별로 금지되는 것들이 있다.

일병이 되면 혼자서 화장실을 갈 수 있고 담배도 필 수 있다. 자판기와 공중전화도 이용이 가능했다. 그 전까지는 허락을 받아야 했다. 물론 대부분 허락을 해주지만...

일병 5호봉이 되면 앉아서 양말을 신고 벗을 수 있고 사제 양말을 신을 수 있다.

상병 5호봉이 되면 반짝이라고 부르는 편한 사제 바지를 입을 수 있었고 PX도 자유롭게 이용가능하며 청소에서 열외가 되었다.


행정관께서 행정병을 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의 담당 반장이 노발대발하며 반대를 했다. 반장은 당시 사단에서 2번째로 참이 많은 부사관이었다.


일화로 우리가 지낼 사무실 같은 것을 허락 받지도 않고 만들었었는데 당시에 컨테이너 하나를 구해와가지고는 언덕부분을 파내라고 했다. 한 여름에 속옷만 입고 삽질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는 전선들을 연결해와서 에어컨, 난로등을 설치했었고 비품들도 채워 넣었었다. 작전장교였던 소령이 문제 삼고 사무실로 와서 뭐라고 했는데 당시 반장이 군화를 집어 던지면서 아들같은 놈이 버릇 없다고 했었던 기억이 있다.


저 사무실을 만들때가 전투수영 훈련을 할때였는데 A조 B조로 나누어서 저수지로 훈련을 갔다.

나는 B조로 나중에 갔는데 A조가 훈련 받을때 열심히 언덕을 파냈고 내가 B조로 수영을 갔을때 A조였던 친구들이 복귀해서 전선을 끌어오고 비품을 채웠었다.


전투수영은 상중하 3그룹으로 나누어서 한다.

상 그룹은 입영까지 가능한 사람들이고 TV에서 보던것 같이 오와열을 맞추어서 입영을 한 채로 군가를 부르기도 했고 함께 수영을 해 나가기도 했다.

중 그룹은 수영을 약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고 낮은 곳에서 왔다갔다 훈련을 했다.

하 그룹은 수영을 못하는 사람들도 맨 바닥에서 평형 연습을 했다.

전투수영은 일반 평형과 다르게 최대한 소리 없이 조용하게 가는 것이 목적이라. 동작 자체가 크지가 않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행정병은 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작업병(?)을 했다.

페인트칠, 보급작업, 수송작업, 통신작업, 토목작업, 대민지원, 예초작업등 안해본 작업이 없는 것 같다.


당시 내 부대에서는 병장은 왕이었다. 그런데 내가 병장이 되던 해에 반장이 나를 PX병을 시켰다.

편해져야 하는 군생활에 태클이 들어온 샘이 었다.

PX병은 개인정비시간에 PX를 봐야한다.

남들이 축구하거나 운동하거나 쉴때 나는 PX를 가서 계산을 하고 재고를 파악해야 했다.

당시 부대의 PX는 다 수기였었다.

바코드 찍는 것이 아닌 가격을 외워서 그것을 계산기로 하는 방식이었다.

후임들이 오면 사주기도 하고 계산도 몇번 잘못 되면서 빵꾸도 났었다. 물론 얼마 안되는 당시 월급으로 메꿔야 했다. 그렇게 3개월을 하고 PX병을 물려 줄 수 있었다.


부대에서 훈련은 전투수영, 유격, 전투태세가 기억에 남는다.

전투수영은 위에서 이미 적었고 유격은 상당히 빡셌었다.

문수산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은 유격이었는데 특히 70m 이상 길의 상향 외줄이 압권이었다.

말 그래도 위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외줄을 타고 이동하는 건데 10에 10은 다 줄 위에서 떨어져 아래로 매달리게 되었고 그 매달린 상태로 팔힘을 통해서 이동했어야 했다.

중대장이 1등으로 들어온 사람에게 포상 휴가를 걸었고 내 선임이 1등을 했다. 당시 유격대 조교보다 빨라서 조교들이 놀라하던게 기억에 남는다.

전투태세 훈련은 나는 북쪽으로 더 가깝게 가는 것이 임무였다. 총알받이 역할이었던 것이다.


6. 전역교육대

그렇게 군생활이 끝나고 전역 3일전에 전역교육대로 사단에 있는 동기들이 모두 모인다.

교육같은 것을 주로 하는데 당시 에스원에서 나와서 특채로 바로 모집하는 광고를 했던 기억니 난다.


7. 전역날

꿈 같은 전역날 전역증을 손에 들고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한다. 내가 있던 사단은 버스로 김포공항 근처에 내려 주었다. 그런데 당시 문화가 해병대 전역자들은 전역일에 모두 신촌으로 모였었다. 지금은 단속도 하고 해서 잘 안하는 것으로 아는데 당시에는 모두 모여서 술 마시고 회포를 풀었다.

다들 휘황찬란한 군복들을 입고 모여서 낮술을 했고 여기저기 보이는 군복입은 동기들이 계속 합류했다.

그렇게 신촌대로를 오와열을 맞춰서 무단횡단 하기도 했다.

그리고 본인 기수와 시간을 맞추어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에 집결을 한다.

예를 들어 1100기 이면 11:00분에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가서 큰절을 하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해병대의 선배라는 뜻에서 그렇게 한다고 했다.

(이순신 장군이 해군이지 해병대냐라는 말이 있는데 신발이 세무라서 해병대라고 한다...)

나는 광화문까지는 가지 않고 집으로 갔었다.


8. 기억나는 사람

○ 돈 훔친 사람

후임들 돈을 훔쳤다. 전역 몇일전에 그것을 들켰다.


○ 동물 학대 한 사람

짬 타이거 목을 꺾었고 뜨거운 물을 쏘아대서 죽게 했다.


○ 전역날 감기 걸리게 한 사람

본인 전역전날 밤에 겨울이었는데 내무실 창문을 다 열어 두었다. 다들 감기 걸렸다.


9. 그 외 일화들

연초가 늘 부족했다. 그래서 나도 연초를 신청해서 선임들께 드려야 했다.

그래도 부족하면 밖에 있는 슈퍼에 전화를 걸어 담배를 주문했다. 그러면 담장 밖에서 담배가 던져 졌다.

일병때는 나도 힘들어서 종교활동을 가서 담배를 몰래 폈다.


안보관련 퀴즈 대회를 했다. 1등을 해서 포상을 받았다.


선임이 장갑을 던져 달라고 했다. 나는 던져 드렸다. 혼 났다.

선임에게 직접 가져다 줘야 하는데 던졌다고... 그리고 던져달라고 해서 던졌으면 감사하다는 뜻으로 경례를 해야 한다고


보급작업을 나가는데 너무 추웠다. 선임이 춥지라고 물어봐서 조금 춥다고 했다. 혼은 아니지만 웃으면서 말해주었다. 다른 선임이 물어보면 아니라고 하라고


밤에 소등만 하면 자기 등을 마사지 하라고 하는 선임이 있었다. 난 샤워까지 다 했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마사지를 했었다.


실제로 구타는 엄청 많지는 않았다. 안 맞으면 불안해서 못자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욕은 엄청 많이들 했다.


가혹행위로는 본인 야간 근무가 10~12시였는데 나에게 잠을 자지 말고 앉아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했다. 불꺼진 내무실에서 혼자 체스터(관물대)를 보며 대기하고 있었다. 10시에 근무 복귀하는 착한 선임이 사정을 들었지만 최고 선임이 내린 지시라 안타까워 할 수 밖에 없었다.


야간 건물 불침번 근무자도 있다. 1시간 마다 가서 불침번 근무자에게 사인을 받아 오라고 했다.

잠들지 말라는 얘기였다. 그렇게 몇시간을 하는데 한 선임이 본인이 그냥 사인 다 해줄테니 자라고 했다.


전역복을 휘황찬란하게들 많이 하는데 나도 한문으로 글자를 많이 수 놓았었다.

나중에는 창피해서 다 칼로 도려 내고 예비군을 갔었다.


선임 전역할때 전역반지를 맞춰준다거나 돈을 드린다거나 한다고 들었는데 우리 부대는 그런건 없었다.



10. 동원 1년차

학교를 바로 복학하지 않으면서 뜻하지 않게 동원 훈련을 가야 했다.

해병대끼리 모이는 거였다. 입교하는데 한 선임이 짜장면을 사주었다.

그리곤 청소를 시켰다. 실제로 4년차가 3년차에게 1~2년차들 청소좀 시키라고 구박을 했었다.

동기 1명도 있었는데 식사를 마치고 나서 식당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식사 다한 선임들 식기를 받아서 설거지를 한다고 했다. 나도 했다...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방송이 나왔다. 현역 부사관 원사의 방송이었다.

니들이 현역이냐고 왜 전역하고나서 그러냐면서 왜 애들 벌레 먹이냐고 방송을 했다.

나는 2층이었는데 1층을 쓰던 동기가 실제로 밤에 집합을 당했다고 한다.

본인 차례가 오기 전에 걸려서 안 먹었다고 했다.


11. 소회

부대내에서느 이쁨을 받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있다.

3가지 특징이었다.

말을 듣는 사람이 기분 좋게 잘하거나

인물이 좋거나

작업을 잘하거나


똑같네 사회도.

화술이 좋거나 외모가 뛰어나거나 능력이 특출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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