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by 베토디

SKT를 약 10년째 쓰고 있다. 딱히 충성고객이라서라기보다는 가족 결합을 풀고 또 위약금 물고 어쩌고 하는 과정이 귀찮아 그냥 계속 같은 통신사를 이용 중이다.


옛날에 있던 요금제 체계가 데이터 10G 다음이 바로 100G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현재도 같은지는 잘 모르겠다) 10G짜리 요금제를 잠깐 쓰다가 아무래도 모자란 것 같아 100G로 업그레이드해서 몇 년간 쓰고 있었는데, 요금제를 하나만 더 업그레이드하면 가족에게 최대 40G까지 '자동'으로 나눠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매달초마다 부모님께 데이터 선물하기를 일일이 수동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동' 공유라는 말에 혹했다. 대기업 SKT가 쪼잔하게 한 번에 최대 1G씩밖에 선물을 못하게 설정을 해놔서, 1G씩 대여섯 번 선물하는 식으로 부모님께 데이터를 공유해 왔다. 1G를 보낼 때마다 휴대폰 인증을 진행해야 하는데, 한번 인증을 하고 나면 1분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다시 1G를 선물할 수 있다. 부모님께 10G를 선물한다 치면, 이론적으로 나는 10분의 시간을 들여 이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1분을 정확히 맞힐 수는 없으니 한 15-20분 정도 되겠다.)


한두 달 하는 거면 징징거림 없이 했겠는데, 매달초마다 이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는 게 살짝 귀찮았다. 요금제를 하나 업그레이드해 한 달에 7000원만 더 내면 나의 귀찮음을 덜 수 있다니! 커피 한잔만 안 마시면 되잖아! 다른 할인 혜택도 많이 준대! (나의 합리화는 대개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성공적인 데이터 자동 공유를 위해서는 한 가지 관문이 더 남아있었는데, 대리점에 방문해 가족관계증명서를 내는 것이었다. 귀찮은 게 싫어서 돈을 더 내려는 건데 또 귀찮은 일을 해야 하다니. 그래도 이번의 귀찮음은 일회성이라는 위안을 삼으며 터벅터벅 집 근처 대리점으로 향했다.


항상 대리점을 갈 때마다 휴대폰을 사러 가는 게 아니라 서비스 업무로 가는 거라 어느 정도의 미안함(?)을 안은 스탠스를 가지는데 직원은 자초지종 내 얘기를 듣더니 "아이고 고객님, 지금 데이터 한 달에 50G 정도밖에 안 쓰시는데 이거 굳이 돈 더 내고 업그레이드해야 할까 싶어요"라고 이야기해 왔다. 예상치 못한 반응이라 나도 잠깐 멍했다. 돈을 더 내겠다는 손님과 말리는 직원. 흔치 않은 그림이다. 그녀의 설득은 감성적인 동시에 이성적이었다. 팔랑귀인 탓에 동공 지진이 일어났지만 집에서 나오기 전 나의 요금제 업그레이드 이유를 장시간에 걸쳐 가족들에게 구구절절 설명을 마친 나로서는 업그레이드하지 않고 돌아가는 것도 민망한 일이라 변경을 강행하기로 했다. 주신 말씀이 다 합리적이나, 그냥 한 달 7000원 더 내고 덜 귀찮은 걸 택하겠다 말씀드렸더니 직원은 웃으며 그렇게 하시라 했다.


요즘 기업들이 국내고 해외고 customer first를 외치고 있는데 오랜만에 진심으로 고객중심을 실천하고 있는 직원을 만나서 기분이 좋았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 사람은 당연히 본인이 해야 할 일을 한 것인데 최근에 자기 이익 채우기에 급급한 직원들을 많이 봐서 이분이 더 돋보여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업무를 보는 중간중간 아빠 휴대폰에는 약정이 따로 걸려있지 않아 할인을 못 받고 있다는 사실이며, 우주패스 쿠폰을 월말에 미리 지급받아 두배로 아끼는 방법을 상세하게 알려주었다.(사실 이 부분은 무슨 말인지 잘 이해를 못 했는데 알아들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6월부터 만 34세 미만이 가입할 수 있는 0 어쩌고 요금제가 나와서 나중에 요금제가 과해서 원래대로 돌아오고 싶을 땐 이걸로 돌아오는 게 더 이득이라는 얘기도 해줬다.


글을 다 쓰고 보니 고도로 정교하게 설계된 SKT 홍보글 같아 웃기다^^; 나는 SKT에 대한 로열티가 하나도 없었는데, 이 직원 한 분 때문에 조금 이미지가 좋아졌다. 무사히 요금제도 업그레이드를 완료했고, 이제 월초마다 휴대폰 인증 10번을 하지 않아도 된다. 커피 한잔 줄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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