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중고 막내입니다.
[ 3년 차가 된 막내 ]
안녕하세요. 중고 막내입니다.
2019년 여름.
한 NGO 단체 회원홍보팀 막내로 입사한 지 어느덧 만 3년.
입사를 하면 3년 안에는 통상 신입 티를 벗고 후임을 맞으며 선배가 된다. 그런데 나는 입사 이래 3년째 막내로 살아가고 있다. 주위 친구들은 6개월 만에 선임이 되기도 하던데. 어찌 됐든 3년 동안 막내로 사는 게 그다지 흔한 환경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신입이 들어왔으면 하면서도 아니기도 하다. 막내라는 타이틀 덕분에 선배들의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지만, 내가 성장하고 있는 게 맞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올 때도 있다. ‘나 지금까지 뭐 했지?’라는 질문도 시간이 갈수록 빈번히 찾아온다.
“3년 차면 꽤 됐네. 이제 일 좀 편해졌겠다.”
친구의 말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냥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척 넘어갔다. 일이야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글쎄. 편해졌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1년 차 까지는 모든 일을 매일 처음 배우는 느낌이었다. 그 시절, 0부터 100까지 레벨이 있다면 정말 0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아는 게 많지 않았다. 단체 회원들의 전화를 받는 것, 임원들에게 회의 연락을 돌리는 것이 수시로 하는 레벨 3 정도의 기초 업무였는데, 그것도 버벅댔다. 매주 진행하는 업무 회의에서는 회의 자료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복합기를 다룰 줄 알았던 것, 전화를 받아 선임에게 전달하는 것이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사소한 질문을 해야 할 때마다 작아졌다. 그렇게 눈치 보는 것을 제일 잘하는 막내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애를 왜 뽑았나 싶다.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취준생은 기본으로 취득한다는 토익이나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증도 없었다. 엑셀과 워드, 포토샵 툴을 다루는 것도 서툴렀다. 입사 전 따 놓은 운전면허와 알바 경험 몇 개가 전부였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내 선임은 이미 레벨 100에 도달한 듯 보였다. 7년 차였던 그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본인의 업무뿐 아니라 다른 팀의 일도 꿰뚫고 있는 최고참이었고 내가 맡은 일의 현안이 무엇인지, 언제 어떤 사업을 준비하고 진행해야 하는지, 회원의 요청을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지도 모두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하는 고민까지 금방 파악했고, 쭈뼛거리며 질문도 못 하는 막내를 들여다볼 줄 아는 따듯한 선배였다. ‘문제 해결의 신’, 딱 그거였다.
놀랄 일도 없지만, 그 선배는 다음 해 팀장이 되었다. 지금은 10년 차 선배, 우리의 팀장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친절하게 일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모르는 게 당연한 거야. 네가 잘하면 내가 있을 필요가 없지.”
지금 봐도 멋진 말을 해주는 사람이었다. 작아질 때마다 선배의 말에 힘을 얻었다.
“어쨌든 날 뽑은 곳이니 최선을 다해 배워야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첫 직장이니까. 뭐든 열심히 할 거야!”
나는 패기 넘치게 시작했다. 나를 뽑아준 리더도 카리스마 있고 합리적인 좋은 어른이었다. 일하는 공간과 처음 생긴 책상,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것마저 마음에 들었다.
3년 차인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상냥한 팀장님과 리더가 좋고, 점심 메뉴를 고르기 위해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달라진 게 있다면, 맡은 일은 때가 되면 돌아온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는 것! 그러나 일은 언제나 변수와 동반한다. 분명히 오고야 말 변수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여전히 신입 때처럼 긴장한다.
그 와중에 새로운 사건들도 시한폭탄처럼 나타나 터진다. 3년, 그러니까 벌써 3번째 반복하는 일에도 실수가 있다. 항상 한 부분씩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번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노라 다짐해도 막상 일을 시작하면 다른 곳에서 또 애를 먹는다. 그래도 뭐가 부족한지조차 몰랐던 지난날보다는 많이 좋아지긴 했다. 처음에는 무엇을 보완해야 할지도 아예 안 보이는 수준이었으니. ‘다음에는 더 완벽할 거야.’라고 다짐하는 지금이 백번 낫지 아무렴.
아, 근무하는 환경도 제법 익숙해졌다. 사무국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잘 보이고, 우리의 리더와 옆자리 선배의 하루 루틴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직장이라고 이상하게 긴장 태세만은 놓기가 어렵다. 내가 잘 전진하고 있는지 매번 헷갈리는 것이야말로 절대 달라지지 않는다. 사업을 위해 준비 태세에 들어가는 모양새가 신입 같진 않은데, 여전히 불확실한 요소들이 무서운 걸 보면 막내 티를 벗진 못했나 보다. 매해 레벨을 갱신하는 선배들은 아직도 커 보인다. 그들 사이에서 나이도 경력도 가장 어린 나는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어렵다. 정말이지 ‘중고 막내’라는 타이틀이 딱 어울린다.
0에서 시작했던 어리숙한 막내, 3년 차 막내인 지금 50은 됐을까? 혹시라도 후임이 들어온다면 나는 후임에게 100으로 보일까? 여전히 멋진 팀장님처럼 100을 넘는 지경에 도달할 수는 있으려나. 언젠간 이 질문에 답은 낼 수 있겠지.
아, 그런데 언제쯤 막내를 졸업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