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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OFF Jung Aug 06. 2021

어린 나의 자화상

지금 시작하는 자화상

나를 발굴하기


발굴하기


내가 누구인지

과거 발굴 작업을 해 본다.

어릴 적 앨범, 다이어리, 일기장,

친구들과 나눈 쪽지, 수집하던 엽서나 CD,

그밖에 오랫동안 보관해 온 흔적들을 찾아본다.

발굴 작업을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생활양식, 성향, 장점과 단점,

어떤 사람인지 파악이 된다.

그 연장선상에 비로소 지금의 내가 있음을 기억한다.


-쓸데없이, 머엉- p241




나는 어렸을 때부터 뭔갈 자꾸 수집하는 걸 좋아했다.

수집한 목록을 나열하자면, 우선 학생이 가장 저렴하게 모을 수 있는 엽서, 스티커, 우표, 책갈피, 나뭇잎, 껌종이.... 심지어 친구들과의 편지나 쪽지까지.(이것들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이사하는 와중에도 얼마나 사수했던가) 일단 버리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그렇다고 쓰레기 수집가는 아니다) 뭔가를 쟁겨놓으면 부모님께 이런 걸 왜 안 버리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오랫동안 마스터했던 피아노 악보들을 이사하면서 엄마가 처리해 버렸던 건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절대로 버리면 안 된다고 사수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내가 잘못한 거다. (그렇게 생각해야 내 마음이 편하니.) 


그리고 이렇게 수집한 것들을 아주 가끔 꺼내본다. 나는 이것을 나를 발굴하는 행위로 본다. 꾸준히 썼던 일기장 속에서 나의 성향이 보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한 발짝 물러나서 생각할 수 있다. 내가 나를 다그칠 때 정말로 욕먹을만한지, 아니면 쓸데없는 기대를 하는 건지 파악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물론 사람은 변한다. 하지만 본질이 변하지는 않는다. 해야 한다 는 의무감 없이 지내던 유년시절의 나를 발굴하면 내 본질을 더 들여다볼 수 있다. 가면도 필요 없던 그 시절. 발굴할 만하다. 단서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녹음테이프 



90년 대생들은 녹음테이프를 알고 있으려나? 내가 중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녹음테이프는 흔했다. 대학생 때부터 공 CD를 굽기 시작했다. 어쨌든, 초등학생과 중학생 때 자주 애용하던 녹음테이프. 나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녹음테이프로 대신했다. 손편지도 자주 썼지만 이 녹음테이프는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DJ가 되어 노래를 선곡하고 오그라드는 멘트를 할 수 있었다. 지금은 테이프를 플레이하기 위해 어학기를 써야 한다. 이때부터 PD근성이 다분했다. 통지표에는 권장 직업에 화가보다는 PD가 더 많았다. 뭔가를 기획하고 창작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발표를 할 땐 연극 대본을 만들어서 같은 조원들과 연기를 한 후 그것을 녹음하여 틀었다. 중학생 때 도덕 선생님이 전교생 중에서 나만 결혼식에 초대하신 적이 있는데 그분은 편지에 나의 발표를 본 후 거꾸로 많은 걸 배우셨다면서 극 칭찬을 해주셨다. 그럼에도, 세상의 분위기는 수능을 봐서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어른들의 시선이 강했다. 나의 이런 별난 행동은 말 그대로 취미생활에 국한되는 별난 짓(?) 정도였다.



수집했던 껌종이


이 껌종이를 기억한다면, 당신은 80년생!

내가 중고등학생이던 90년대엔 이런 껌종이들이 많았다. 껌의 종류도 많았고 껌 CF도 많았다. (갑자기 응답하라 1998 느낌적 느낌) 예쁜 프린트의 껌종이는 수집대상이었다. 내가 좋아라 하는 드로잉과 시 라니. 모으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영화 '샤인' 극장표



영화 '샤인'을  혹시 본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영화관에서 본 사람이 있다면 최소 80년대생.

교복을 입고 피아노를 좋아하는 친구와 이 영화를 보러 갔던 기억. 그땐 나도 피아노를 좋아했다.

우리 둘은 쉬는 시간에 음악당에 가서 피아노를 치곤 했는데, 그 친구는 음대를, 나는 미대를 갔다.

이 영화를 보고 우리 둘 다 눈물 콧물 범벅이 가 되어서 영화관을 나왔다. 이 영화가 그 친구에게 인생영화가 되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내 기억으론 이 표를 내가 선물했다. 이걸 보관해 왔다. (수집가가 이 정도는 돼야지)



비둘기호 표


마지막 비둘기 호를 탔던 기억. 비둘기 호랜다.... 하아... 이걸 아는 당신은 최소 80년생, 혹은 70년생임.

중학생 때 교지 편집부원들과 국어 선생님과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갔다. 창문을 활짝 열고 기차가 달렸다면 믿겠는가? 그 마지막 운행이라 했다. 기차표가 550원 이랜다. 나 무슨 6.25 때 살던 사람처럼....

이건 내 일기장에 붙어 있었다. 나는 일기장에 이런 쪼가리들을 수집해 붙였다. 그 당시에 2021년에 이걸 보며 이런 글을 쓰리라 상상이나 했겠나. 과거의 나에게 잘했다 말해주고 싶다. 이 기차표 하나로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글로 장원상을 여러 번 받을 수 있었던 에너지원. 국어 선생님의 애정과 교지 편집부원들의 추억들.

책을 만들고 글을 쓰는 것이 그토록 매력적이고 재밌다는 걸 중학생 때 경험한 거다. 참 고마운 기억들.


자물쇠 일기장


그 당시엔 이렇게 일기 장 속에 시 가 넣어져 있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3단 콤보가 다 있네.

말린 은행잎, 껌종이, 그리고 시.

좌우를 보면 열쇠를 거는 장치도 있다. 그런데 이걸 채워 넣으면 나중에 열쇠를 잃어버리면 난감하기 때문에 자물쇠를 걸어놓지는 않았다. 가끔 아빠가 들어와서 내 일기장을 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의 추측만 난무할 뿐. (분명 일기장에만 쓴 내용인데 밥상에서 뭔가를 물어보실 때 촉은 올라오곤 했다. 기록을 잘하는 자는 속 마음을 들킬 각오도 해야 한다. 남 욕 같은 건 함부로 쓰면 안 됨. 그런 건 문자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외치는 것이 낫다)



발굴하기


요즘도 사진관에서 인화를 하나? 필요에 의해서 할 수도 있겠다.

중학생 때부터 아빠의 니콘 카메라를 가지고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평범한 것 같진 않네)

내가 촬영한 걸 사진관에 들고 갔다. 사진관마다 그들이 갖고 있는 기계의 색이 달랐다.

어떤 곳은 좀 푸르스름하게 뽑아주고, 어떤 곳은 노르스름하게 뽑아주고.

우리 집 앞에 단골 사진관이 있었는데, 내가 하도 자주 가니깐 그 아저씨는 내 사진에 흥미를 갖고 계신 듯했다. "정말로 네가 직접 다 찍은 거니?" 이 질문은 늘 하는 것. 그림에 관심이 많던 내가 구도에 매우 신경 써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에 적잖이 놀라우셨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 달력에 나올 법한 구도들이 꽤 많다. 그림 자료로 촬영하는 것도 있었기에, 구도는 애초에 신경 써야 할 문제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진관 아저씨가 칭찬을 해주시니 얼마나 기쁘던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데, 아저씨 덕분에 제가 뭔가 되게 잘하는 애인 줄 알고 더 열심히 카메라를 들고 다녔던 거 아세요? 고맙습니다~)



작업실 열쇠



내가 가장 많은 작업을 했던 작업실의 열쇠다. 그 작업실에서 5년간 매일매일 작업했다.

전시도 많이 했고, 첫 책의 원고도 썼다. 자그마한 상가 2층이었는데, 출근하면 이 열쇠로 그 문을 열고 들어가곤 했다. 내가 어떻게 그날 들을 잊을 수 있을까. 수집가는 그때의 향기를 머금은 작업실 열쇠도 버릴 수 없는 거다. 이 낡은 열쇠엔 나의 손 때가 묻어 있을 테고 5년간의 최소 천일이 넘는 시간이 묻어 있을 테니.



다이어리 흔적


99년의 다짐이란다. 다이어리에 꽂혀 있던 다짐들.

너무 두리뭉실한 내용들이긴 하다. 구체적으로 적은 건 다른 페이지에 있었는데, 이런 대강(?)의 다짐들은 정말로 이러고 싶어서 그런 거였나 나 자신에게 다시 되물어본다. 어렸기 때문에 막연한 다짐이 아니었을까.

저 대강의 목록들을 구체적으로 파생시키며 사는 게 그간의 내 인생 아니었을까. 기회를 놓치지 말자에 별표가 되어 있다. 음.... 나는 이런 애로군.



오래된 책 





혹시 이 표지의 책을 갖고 있다면 당신은 최소 80년대생. 

초등학생 때 이 책을 읽어보겠다고 고군분투하던 내가 떠오른다. 권장도서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초등학생이 읽을 책이 아니다. 절대로 그 나이엔 이해할 수가 없다. (아, 요즘 아이들은 다를 수도 있겠다)

여하튼 나는 이걸 평생을 다시 읽으며 겨우 깨달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해. 인생을 살면서 알 수가 있던 거다. 수많은 책을 이사하며 정리해도 이 책만큼은 쥐고 있었던 건, 뭔가 버릴 수 없다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잘했다 싶다. 이 책은 절대로 버려선 안 되는 책. 




제목은 '어린 나의 자화상'인데 '발굴하기'가 더 많았다. 이제부터 제목과 관련한 이야기를 덧붙여야 할 듯하다. 지금 시작하는 자화상 p204에 적었던 어린 시절을 발굴하여, 그 모습을 그려보는 것에 대한 이야기.

발굴하기엔 위의 물건들도 있겠지만 내 모습을 찾아내어 그림으로 그려보는 건 심화단계라 할 수 있다.


낡은 앨범 하나를 꺼내어, 나의 어린 시절을 찾아보는 것부터.

이것을 영상으로 만들어 보았다. (이러면서, 나의 어린 시절 사진을 최초 공개.....)



https://youtu.be/rfzG7Vluqms

ON-OFF Jung 유튜브채널 



낡은 필름 발굴하기



낡은 필름 뒤지기



낡은 앨범 뒤지기



어린나의 자화상을 그리는 수업도 진행되었다




ps : 아직은 청년과 중년 사이에 끼어 있는 갓 40대인데 한국의 문화역사의 흐름을 보는 듯 했다...

(공테이프, 비둘기호, 사진관, 껌종이에 묻은 먼지를 붓으로 털어 발굴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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