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이, 머엉
넘실대는 영감 속에서 헤엄치고 싶다면 다른 누군가가 나의 시간을 전부 차지하게 놓아두면 안 된다. 물론 다른 이의 말속에서, 서로의 대화 속에서 생각이 확장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홀로 있을 때 비로소 나만의 '영감 수장고'는 차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인간이란 어쩌면 변덕도 심하고 간사한 존재일지 모른다. 그렇게 홀로 채워지기를 바라면서도 말로 표현 못할 허전함과 허무함이 불현듯 찾아오기 때문이다. 예고 없이 오는 이런 텅 빈 공격 때문에 누군가는 시도 때도 없이 어디론가 떠나는 방랑병이 도진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마치 바다는 좋지만 물을 두려워해서 바다에 들어갈 땐 물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안고 가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홀로 생각에 잠겨 영감의 수장고를 채우는 것이 좋지만, 갑자기 찾아오는 허무함의 공백도 함께 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 공백은 사람이 해결해 주기도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사람에게 나의 시간과 존재를 내어 주어야 한다는 함정에 빠진다.
사람과의 관계가 난감해질 때 반려동물은 나에게 해결책을 주었다.
그들은 인간의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 오로지 눈빛과 단순한 몸짓, 소리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래서 알아듣지 못할 걸 예상하고 말을 허공에 던지기도 한다.
이것은 정말 효과가 좋다. 허공에 말을 내던지는 것.
평소에는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말하지만 어떨 땐 전혀 상관없는 말을 할 때도 있다. 신기한 건, 사람보다 동물이 내 마음을 더 잘 알아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
화내고 있지만 진심은 그게 아닌 걸 아는지 금세 다가와 언제 그랬냐는 듯 비비적거리니 말이다.
표현한 적도 없는데 어떤 기운을 서로 알아차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심도 없이 순수함만으로 서로를 대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동물과의 교감은 순수한 멍 때리기를 연습하기에 좋다.
가끔은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한 뇌를 그들과의 새로운 대화법으로 청소해 주는 것을 추천한다.
-쓸데없이, 머엉- p40
내 인생에서 반려동물을 빼면 남는 게 없을 정도로 사람보다 어쩌면 더 많이 나와 소통한 생명체들이다.
내가 스무 살 무렵, 요크셔테리어 '쫑'을 만나서 10년을 함께 살았고, 쫑이 온 지 2,3년 후에 '루비'라는 요크셔테리어도 합세하여 17년을 살다 갔다. 반려견들은 부모님과 함께 살 던 집의 추억들이다.
쫑의 장례식, 루비의 장례식 둘 다 부모님과 함께 갔었다. 지금도 그 둘은 내 친동생으로 남아있다.
독립하여 만난 반려동물은 고양이다. 반려동물은 사람만큼이나 사랑도 듬뿍 주어야 하고 신경 쓸 것이 많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절대로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겠다 다짐했었다. 더군다나 작업도 해야 하고 미술재료들도 널브러져 있는데 반려동물들이 그걸 가만 둘 리 없다. 그런 다짐을 하면서도 독립하자마자 유기동물 보호소를 기웃거리며 임시보호 봉사를 시작했다. 처음엔 유기견이었고, 그다음은 고양이였다. 반려견을 키운 사람들은 고양이에 대해 거부감을 느낀다. 불러도 오지 않고 뭔가 깍쟁이 같은 녀석들의 표정에 정이 가지 않아서다.
그럼에도 유기동물 보호소에 가냘픈 새끼 고양이가 안락사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임시보호를 자청했었다.
무지했던 나는 놀이터에서 모래를 퍼 와야 하나 고민했을 정도다. 어쨌든 초보 임시 집사는 두 마리의 고양이를 3개월 케어했고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 친한 친구에게 입양을 보냈다.
그러면서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갔다. 작업실을 겸한 넓은 집을 구하다 보니 사람들은 혼자 사는 여자가 왜 이리 큰 집에 사나 했을 거다. 작업실로 절반을 나누면 사실 주거공간은 평범한 크기다. 여하튼 그렇게 작업 환경에 신경 쓰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공허함을 마주한 것이다. 그 당시 체감적으로 넓고 휑한 거실에서 혼자 밥을 먹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직도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다.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말도 못 할 공백을 느끼던 중, 그렇게 만난 녀석들이 루피와 마로라는 두 마리의 고양이였다. 거짓말처럼, 그 후론 밥을 먹다가 우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깐 공허한 감정에서 오는 눈물 말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분명하게 해결했다. 그때의 좋은 기억 때문일까?
그 후로 지금까지 세 마리의 고양이들이 더 내게로 왔다. 녀석들 모두 구입하거나 분양받거나 한 것이 아니라 죽을 뻔하거나 어쩔 수 없이 구조하다가 만난 고양이들이다. 아무리 거부해도 우리 집으로 오는 녀석들이 있거나 아무리 함께 하고 싶어도 들어오지 못하는 고양이들도 있었다. 고양이는 인연이 분명 있었다.
고양이와 동거한 지, 이제 10년 정도 되었다. 임시 보호했던 그 두 마리도 내겐 특별한 녀석들이다. 친구와 살고 있어도 그립고 궁금하다. 3개월이란 짧은 기간이었어도 그 하루하루가 다 생생하게 기억난다.
동물보호, 반려동물.... 지난 10년간 이 단어들은 내게 익숙했다. 여기에 쓴 시간도 에너지도 어마어마하다.
등 떠밀려서 접한 것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병아리가 너무 키우고 싶어서 엄마에게 조르다가 노란색 전구를 꽂아놓으면 병아리가 나온다는 엄마의 거짓말을 믿고 한 달간 그것만 인내력 있게 바라봤던 나다. 그때가 대략 대여섯 살이었는데 태어나서 인내력을 배웠던 유일한 기억이다. 그만큼 간절했다.
단지 귀여워서였을까? 내게 되묻기도 했다. 장난감처럼 갖고 놀고 싶었다면 그냥 장난감이 편할 수도 있었다. 나는 그보다 더한 교감을 원했던 거다. 그것이 단지 유전 일지, 후천적인 다른 영향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사람은 안 변하고 원래 기질을 유지하려 애쓰는 인생 원리가 언제나 작동 중이란 거다.
다섯 마리의 고양이와 또다시 대 여섯 마리의 (매일 밥을 챙겨주는) 길고양이들에게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이 어떨 땐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할 때도 있다. 그건 내가 바쁘다고 해서 미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심리학적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존재감이 되었으면 하는 강박이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했나?) 어쨌든, 녀석들을 돌본다는 건 단순 흥미로 하기엔 책임져야 할 것이 많다. 동시에 얻는 것도 많다. (물론, 내게 용돈을 주거나 여행을 보내주는 건 아니지만)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영감'을 준다. 그리고 순수하게 멍 때리게 해 준다. 녀석들을 보며 멍 때리는 삶을 더 예찬하는 사람이 되었다. 멍 때리는 법을 체계적으로 아주 잘 배웠다. 이건, 시간 될 때 더 자세히 적어봐야겠다.
쓸데없이, 머엉 p40과 지금 시작하는 동물 드로잉에 썼던 내용을 발췌하여 영상을 하나 만들어 봤다.
무엇이든 마찬가지겠지만, 글보단 사진이, 사진보단 영상이, 영상보단 실물이 황홀하다.
이 영상으로 '순수하게 멍 때리기' 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