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이, 머엉
터덕터덕 나의 장소로 걸어가는 길.
특별할 것도 없는 어제와 같은 오늘의 발걸음이지만 나만의 장소로 걷는 발걸음은 무겁지 않다.
문을 열고 불을 켜고 닫힌 블라인드를 여는 일은 수백 번 했을 테지만, 매번 반복되는 그 일들이
나를 포근하게 감싼다. 고요함. 가끔 들려오는 주변의 소리.
잠시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쉬어 보면 쌉싸름한 종이 냄새, 캔버스 냄새, 타다 만 향초의 옅은 내음이 쾌쾌한 먼지와 섞여 아로마처럼 폐를 간지럽힌다. 창밖의 하늘은 어디쯤에 있는지, 내 공간은 여전히 잘 있는지 잠시 한 바뀌 둘러본 뒤 오늘과 어울리는 음악 한 곡을 선곡한다. 너저분한 종이와 지우개 가루를 쓸어 내다가
눈에 들어오는 책 한 권을 집어 든다. 분명히 어제도 놓여 있던 책인데 오늘은 색다르게 느껴진다.
마음에 드는 구절에 밑줄을 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너무 뜨겁지 않게 차 한잔을 내리며 분주히 움직이던 손길을 멈추고 오롯이 앉아 차 한잔에 음악을 듣는다. 문득 어떤 구절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오면 작업 노트를 재빨리 펼쳐 손에 잡히는 아무 연필이나 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저리 써 내려간다.
컴퓨터를 켜서 이메일을 확인하고 싶지만 그 대신 책꽂이에 꽂힌 시집 한 권을 꺼내 아무 곳이나 펼치고 딱 한 편의 시를 읽고, 또 읽고, 다시 읽고...... 생각하고 덮는다.
대략 서너 곡을 지나 다섯 번째 곡으로 접어들 무렵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다시 선곡한다. 한참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노래를 따라 부른다. 그리고 그제야 빈 캔버스를 쳐다본다.
나의 방, 나의 장소가 주는 기운은 무엇일까.
어떤 냄새가 있고, 어떤 풍경이 있을까. 매일 열고 닫는 문고리도 내 장소의 문고리다.
사랑스럽고 아껴 주고 싶은 매력적인 나만의 장소. 있는가? 나의 장소, 내 작업실은 그림을 그리는 장소가 아닌 영감을 모으는 장소다. 영감이 찰랑거릴 때쯤 내 그림, 내 글, 내 생각을 남겨 볼 수 있으니.
-쓸데없이, 머엉- 그곳의 풍경
대략 여섯 살이었던가? 엄마의 장롱 속에서 꽃무늬 머플러는 나만의 아지트였다. 무슨 말이냐면, 바닥에 그 머플러를 깔고 앉으면 내 영역이 보장되는 상상을 한 것이다. 그 위에만 앉으면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꽃과 열매도 따 먹을 수 있으니 집과 먹거리를 다 갖춘 아지트인 것이다. 고양이가 상자 속에 들어가고 아이들이 텐트 안에 들어가려는 심리가 이런 맥락이려나? 그 오래전 엉뚱한 내 행동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건 그때의 황홀한 기분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실제보다 더 황홀한 건 상상이 만들어낸 세상이 아닐까. 아지트가 주는 행복. 나만의 장소.
방 세 개짜리 아파트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우리 집은 당연하게도 가장 좋은 방은 언니가 차지했다. 그 방은 창문을 열면 공간감이 나오고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무들도 바라볼 수 있었다. 반면 내 방의 창을 열면 세탁실이 보이는 작은 방. 경제적 능력이 없는 미성년자일 때 내가 무슨 요구를 할 수 있었겠나. 부모님이 정해주 신대로 선택할 수밖에. 언니가 일찍 결혼한 후 언니의 방은 내 차지가 되었지만 그 마저도 참 좁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미술대학엔 자그마한 나만의 작업구역이 있었고 이래저래 기회가 닿아서 작은 평수의 외부 작업공간 또한 얻을 수 있었다. 20대의 난 작업실이란 명목으로 아지트를 사수하기 시작했다.
작업실에선 그림도 그리지만 비율로 따지자면 100중에 그림이 40 정도고 나머지 60은 딴짓이다.
딴 짓은 영감을 쌓는 일을 했다고 우기면 그만이다. 예술가란 직업이 어떨 땐 핑계대기 꽤 좋다.
여하튼, 어른의 감시를 벗어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 가끔은 친구들을 불러서 맥주 한 잔씩을 했고 속상한 날엔 야간작업을 한다는 핑계로 집에 안 들어가기도 했다. 쓸데없어 보이는 덕질도 했다.
비싼 인형을 조금씩 수집하거나 클래식 기타를 구입하여 띵가 거리기도 했다. 누가 봐도 한량 아이템들이니 부모님과 사는 집에선 어림도 없다. 20대엔 사회 구성원으로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노닥거리는 짓 따윈 편히 보여줄 수 없는 것이다. 한량 짓, 노닥거리기, 쓸데없는 짓, 멍 때리기... 나의 아지트는 숨구멍 그 자체였다.
나중에 출근하는 작업실이 아니라 아예 주거단지를 독립을 하면서 엄마가 해주던 밥, 빨래, 청소 그 외 집안일들이 추가되었다. 물론 생활비도 함께 늘어났다. 불편한 것들이 늘어나면서 나는 자유와 불편함을 맞바꿨다 생각했다. 자유. 자유가 그 무엇보다 내겐 중요하다.
스스로 책임져 나가는 자유는 얼마나 값지고 멋진가. 자유란 공짜로 주어지는 게 아니니.
나는 여전히 '공간'에 대한 꿈을 꾸는 중이다. 여섯 살 때 나를 평온하게 했던 꽃무늬 머플러처럼 그 안에서 그 누구의 간섭도 침범도 없이 안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아지트의 진화는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