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신앙과 고통의 상관관계
예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하는 전도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다. 난 흥미가 없다기보다도 뭔가 길거리에서 전도하는 방식은 체질에 맞지 않아서 수강한 적 없지만, 언젠가 건물 1층 카페에 꽂혀있는 전도 매뉴얼을 보고 개정의 시급함을 느꼈다. 펼치자마자 나를 맞이하는 건 어처구니없는 말 뿐이었다.
‘당신은 행복하신가요? 0부터 10까지 숫자를 사용해 표현해 주세요!”
기가 막혔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지 보자 하고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그럼 하나님을 믿어서 나머지 행복을 찾아봐요!’
그때 아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행복? 글쎄. 애인이야, 애인.”
신을 믿으면 어쨌거나 어떠한 존재와 말을 나누고 생활한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행복하기만 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분에 대한 오해로 울면서 방안을 기어 다닌 적도, 복수심에 스스로를 망치려 한 적도 있다. 어떨 땐 그날 당신이 모든 걸 다 해결해 줄 거라 신뢰해서 자살하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이게 무슨 인생이냐며 있는 성질 없는 성질 다 내기도 한다. 물론 나중엔 말이 심했다며 사과하지만. 왜 내게 교회를 다니냐고 물으면 이미 없다고 생각할 사고방식이 만들어지기엔 너무 늦어서라고 답하는 게 적당하겠다. 믿음이 축복이라니, 어떤 면에서야 그렇겠지만 솔직히 다르게 비유하자면 마음대로 그만둘 수 없는 중독이자 얽히고섥힌 저주다. 원래 사랑이란 게 무슨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지지만, 때론 만병의 근원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기야 하지만 그와 헤어지는 것이야말로 그냥 죽음과 같다. 세상에 원하는 것은 그 무엇도 남지 않을 것이고, 제 아무리 번지르르 해보이는 일상을 산다고 해도 내 마음은 별 없는 하늘처럼 텅 비어있을 것이다. 반대로, 신만 있다면 무엇도 나를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만들 수 없다. 누군가가 다 빼앗아가도 그만은 잃지 않을 테니 별로 겁먹을 일이 없다. 위에서 신이 없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말한 것이 별 이야기 아닌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늘 무덤덤한 내가 하는 나름대로의 고백이다. 만병의 통치약이든, 설령 그것이 병의 근원이라도 무덤까지 가져갈 것이다. 실제로 영생이 있든 없든 ,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 땅에서 만큼은, 내 안에서만큼은 그가 살아서 내게 잔소리를 퍼붓고 계시니.
사건의 결과나 삶의 방향이 희망사항과 달라 지독히도 대드는 나와, 가끔은 원하는 대로 들어주지 않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기대보다 더 근사한 결말을 보여주는 그의 모습을 담아보려고 한다. 제멋대로 구는 망아지와 전능자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더 쌉싸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