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스며든 시간
한국에게,
처음엔 잠시 머무를 생각이었습니다.
세 달이면 충분하다고 믿었죠.
그런데 어느새 계절이 바뀌고,
당신의 리듬이 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당신은 참 오래된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언제나 새로워 보입니다.
오랜 이야기를 품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늘 분주하고 반짝이죠.
당신을 이해하려면
조용히, 오래 바라봐야 한다는 걸
나는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래서 산을 걸었고,
절에 앉았고,
비 오는 거리를 그냥 걸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어지는 떡볶이 냄새,
말없이 잔을 건네는 아저씨의 손끝,
그런 순간들 속에서
당신의 마음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살기 어려운 나라는 아닙니다.
질서 있고, 성실하고, 부지런한 당신을
나는 늘 존경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멈춰주길 바랍니다.
쉬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 스스로를 잊지 않기 위해서요.
너무 빠르게 바뀌는 세상 속에서
당신의 오래된 언어와 생각들이
조용히 사라지는 게 아쉽습니다.
절이 카페가 되고,
사투리가 잊히고,
이두는 이제 거의 속삭임처럼 남았죠.
당신은 이미 아름다운데
그걸 잊은 듯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여전히 다정합니다.
목욕탕에서 노인이 내 등을 닦아줄 때,
그 거친 손길 속에 담긴 마음을 느낍니다.
당신의 사랑은 늘 말이 없지만,
그 침묵이 오래 남습니다.
나를 맞이해준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이유를 묻지 않았고,
그저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그 조용한 마음 속에서
나는 머물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당신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내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내가 삶의 연약함을 배웠을 때,
당신은 곁에 있었습니다.
당신은 나를 위로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곁에 있었습니다.
그건 어쩌면 가장 깊은 위로였습니다.
이제 나는 당신의 속도를
따라가지도, 거스르지도 않습니다.
그저 함께 걷습니다.
힘주지 않아도 이어지는,
그런 관계가 되었습니다.
빠르고 욕심 많은 당신,
느리고 조용한 나.
우리는 다르지만
이상하게 잘 맞습니다.
한때 나는 당신을 나라라고 불렀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부를 수 없습니다.
당신은 나의 가족입니다.
선택하지 않았지만,
떨어질 수 없는 인연.
- 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