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쩌다주닝요 Sep 22. 2023

7. 브라질 리우 그 황홀했던 여명

무박2일 상파울루-리우 왕복 여행기(3)

파라치에서 자정이 넘어 리우를 향해 출발했다. 어둠을 아름답게 비추던 파라치의 가로등은 금새 다 사라지고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만이 힘겹게 우리 길을 비추고 있었다. 이곳이 도로라는 것만 겨우 확인할 수 있는 불빛만이 다였기에 스산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핸드폰 내비게이션을 수시로 확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도로를 달리다가 깜짝 놀라 내가 외쳤다.


"아니 저게 뭐야? 사람 아니야?"


그저 어둠뿐인 그 도로 가 쪽으로 어린아이들과 함께 이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 이렇게 캄캄한 도로를 걷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나?"

"그러게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여기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있네."


손전등이나 그 어떤 보호장치도 없이 어둡디 어두운 1차선 도로를 걷고 있는 그들이 걱정스럽게 느껴지기도, 위협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실루엣에서는 아직 축제에서의 흥이 가시지 않는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기분 좋게 이동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시와 멀찍이 떨어진 곳에 꺼질 듯 희미한 불빛을 내뿜고 있는 집들이 아주 듬성듬성 위치해 있는 것을 보면 그 집들 중에 하나로 향하고 있는 듯 해 보였다.


이따금씩 '리우'가 적힌 도로 이정표가 보일 때면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긴 했으나, 그마저도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리면 캄캄한 망망대해에 목적지를 알 수 없이 떠다니는 뗏목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멀리서 희미하게 파란색과 빨간색 불빛이 반짝였다. 전 세계 어디서나 저 불빛을 보면 경찰임을 알 수 있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갑자기 그 경찰들은 무슨 검문을 하는 중인지 우리 차를 불러 세웠다. 운전하고 있던 동료 P가 차에서 내려 경찰들과 잠시 대화를 하는 듯 하더니 우리에게 신분증을 요구했다. 나는 당시 브라질에서 이용할 수 있는 외국인 신분증을 발급받기 전이었기 때문에 여권 사본을 들고 갔던 터였다. 동료 P는 차 밖에서 내 여권 사본을 가지고 경찰과 한참을 이야기하는 모양이었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감지한 나와 동료 L은 쥐 죽은 듯이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세월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동료 P가 한숨을 쉬더니 이야기했다.


"아니 이거 여권 사본 말고 다른게 없냐고 이걸론 신분 확인이 안된다고 시비를 거네. 이걸로는 안된다고."

"아니 여권 털리면 안 되니까 보통 사본 들고 다니지 않나? 왜 안 된다는 거지?"

"아 모르겠네. 얘네들 우리 가지고 수작 부리는 거 같은데 차에서 다 내리래."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모두 차에서 내리자 경찰들은 우리 몸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내 몸을 수색하던 경찰은 얼마나 열심히 하든지 중요 부위까지도 샅샅이 수색을 하는 모습에 적잖이 당황스러웠으나 당시에는 두려움에 몸이 굳어버려 그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었다. 트렁크뿐만 아니라 우리 짐까지도 모두 샅샅히 뒤진 후에도 동료 P와 경찰들의 설전이 끝나지 않았다. 아무 말도 이해할 수 없던 나는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기에 그저 차 뒷자리에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동료 P가 씩씩거리면서 차 문을 다시 벌컥 열고는 이야기했다.


"여권 사본 말고 다른 거 아무것도 없죠? 뭐 증빙할 수 있는 거?"

"아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한국 신분증도 다 다른 지갑에 있는데..."

"아 진짜 미치겠네 하..."


한국 신분증도 모두 집에 두고 왔기에 나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들었을리 없는 지갑을 만지작거리며 훑어보기만 반복했다. 그러다 비상시에 연락을 취하기 위해 받아놓았던 외교부 직원의 명함을 발견했다. 동료 P는 잠깐 그 명함 좀 달라면서 경찰들과 또 한참을 이야기했다. 얼마나 이야기했는지 시간을 따로 재보지는 않았지만 그걸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나는 진짜 무슨 일이 있으면 어쩌나 걱정스러운 마음에 한 세월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동료 P가 뭔가 해결이 된 듯한 모션을 경찰들과 주고받으며 차로 돌아왔다. 그렇게 다시 우리는 무사히 출발을 할 수 있었으나 동료 P는 한참을 씩씩거리며 욕을 했다.


"딱 보니까 얘네들 우리 가지고 돈 뜯으려고 장난질 친거 같아요. 무슨 아시아인들이 가끔 마약 운반책 역할을 한다면서 우리 차 뒤진건데 뭐 마약이 없는데도 자꾸 횡설수설하면서 제대로 된 신분증 달라고 하고... 내가 브라질 18년 넘게 살면서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진짜. 그냥 우리가 여행객처럼 보이니까 돈 몇 푼 뜯으려고 시비건 거 같아. 다른 사람들이었으면 그냥 돈 주고 끝냈을걸? 근데 그 외교부 명함 보여주면서 내가 지금 여기 전화하겠다고 신분 증빙해줄 수 있는 사람이니까 너네 서에도 조회해보라고 하면서 이야기하니까 자기들끼리 뭐 이야기하더니만 확인된거 같다고 그냥 가라네 또 허 참나.."


지금도 그 경찰들이 정당한 공무를 집행한 것인지 혹은 우리를 두고 장난질을 친 것인지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정황상 우리는 그 경찰들이 돈 몇 푼 뜯어내려고 일부러 동양인인 우리를 타겟 삼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외국에서 비리 경찰들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나 내가 이렇게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중요 부위까지 털털 털리면서 말이다.


"아 저거 찍어뒀어야 했는데 쫄아서 아무것도 못 찍었어요."

"아니 중요 부위까지 털렸는데 그 상황에서 핸드폰 꺼냈으면 진짜 맞았을지도 몰라 킥킥"

"아니 근데 왜 나만 중요 부위까지 수색한거야? 생각해 보니까 진짜 빡치네."

"마약 밀매할 것처럼 생겼었나 본데? 킥킥"


모든 상황이 다 지나가고 나서야 그 상황을 사진으로 남겨놓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함께 나만 중요 부위까지 포함해 몸수색을 당한 것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언어만 할 수 있었다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씩씩대보지만 새하얗게 질려버린 내 얼굴 표정을 봤던 동료 P와 L은 키득거리며 날 놀려댔다.


"나도 이런 경험 처음 해보는데 진짜 역대급 에피소드 하나 생겼다. 나중에 꼭 글로 남겨요 키득키득"


브라질에 오래 살았던 사람도 처음 해본 진귀한 경험 덕에 우리는 어두운 거리를 달린다는 두려움도 잊은 채 이 황당한 경험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하며 달릴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도시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적한 거리를 달릴 때와는 달리 차선도 넓어지고 가로등도 설치되어 있었다. 드디어 리우에 도착한 것이다. 아직 어둠이 내려앉은 한밤중이지만 리우에 들어와서 느낀 점은 왠지 모르게 부산과 비슷하다는 느낌이었다. 높고 낮은 산등성이들 주변에는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있어 부산의 모습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물론 길거리의 부랑자들이 부산이 아니라 여긴 브라질임을 계속해서 강조해주는 이정표가 돼주긴 했지만 서울과 같은 상파울루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새벽 3시 어간이 되어 드디어 우리의 목적지인 코파카바나 해변에 도착했다. 해변 근처에 차를 정차해두고 바닷소리와 내음만 잠시 느끼고 얼른 다시 차에 탑승했다. 가로등 불빛이 거리를 밝히고는 있었으나 인적이 드문 시간에 브라질 길거리를 배회하고 돌아다니는 것은 결코 추천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이 틀 때까지 그나마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장소를 찾아 정차 후 차에서 휴식을 취했다. 새벽 5시가 좀 넘어서자 어둠이 아직 가시지 않았으나 이른 새벽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움직임들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피곤할 대로 피곤한 몸이었지만 겨우 몸을 일으켜 리우의 여명을 맞이하기 위해 차 밖으로 나섰다. 어디서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해야 가장 좋을까 고민하다 코파카바나 해변과 이파네마 해변이 맞닿는 곳 바위 전망대 쪽에 자리를 잡기로 하고 이동했다. 우리가 자리를 잡자 멀리서 희미하게 주황빛이 감도는 여명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상파울루에서 리우에 오기까지 오르락 내리락을 몇 번이고 반복했던 그 시간들이 어느새 까마득하게 느껴지며 생각에 잠기는 찰나 리우의 태양은 점점 떠오르고 있었다. 점점 더 빨갛게 달아오르는 태양빛이 우리에게 다가오며 짙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하늘도 푸른빛을 감돌기 시작했다.


이파네마 해변에서 바라본 일출


리우의 황홀한 일출이 그렇게 시작됐다.


살면서 내가 본 일출 중에 가장 황홀했던 일출.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히는 리우의 일출을 바라보며 느꼈던 그 감정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았다. 여명의 빛에 가려져 실루엣처럼 보이는 리우의 배경은 어찌 그리 조화로운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여명의 빛 속으로 날아드는 것만 같았던 새들은 그 장면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이파네마 해변에서 바라본 일출



매일 반복되는 이 아름다운 일출을 그저 지나 보내기만 해왔던 지난날의 게으름이 한편으로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 시간에 잠을 좀 더 자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에 새해에도 일출을 보러 갔던 기억이 까마득했다. 일출을 보기 위해 고생스럽고 피곤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의 심정이 그제서야 조금 이해가 갔다.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일은 마음만 먹으면 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슬럼프 극복책 중 하나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우 이파네마 해변에서


함께 일출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과의 가벼운 눈인사는 태양이 떠올라 내 몸이 따뜻한 건지 그 인사 덕에 따뜻해진 건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이파네마 해변에서 바라보니 어느새 도시는 주황 여명의 빛으로 스며들어 그 색을 아름답게 만들어줬다.


리우에 오기까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경험까지 하며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했던 우리의 여정은 이 일출로 인해 그저 아름답기만 한 기억으로 포장하기 충분했다. 그저 쉬고 싶다는 게으름을 무릎쓰고 빡센 여정을 택한 내게 칭찬을 보내주고 싶었다.

괜스레 유명한 말이 떠올랐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앞으로는 이 여명을 바라보기 위해 내 게으른 발걸음을 또 움직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6. 찐 ENFP들의 나라, 브라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