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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주닝요 Sep 20. 2023

6. 찐 ENFP들의 나라, 브라질

무박2일 상파울루-리우 왕복 여행기(2)

나는 파라치라는 도시를 무박 2일의 이 여중에 잠시 들르는 도시 쯤으로 생각했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었다는 둥, 영화 트와일라잇에서 주인공들이 신혼여행지로 온 곳이라는 둥 하는 동료 P의 설명을 듣고나니 오히려 동료 P의 친절함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유명한 줄 알았으면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안왔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한가득 머금고 파라치의 유명한 역사지구에 도착했다. 한데 아무리 유명한 지역이라지만 역사지구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역사지구는 차량 통행이 통제돼있기에 길거리 주차장에 차를 대고 역사지구로 걸어가는데 마치 축제라도 있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발걸음을 함께하고 있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을 것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처해진 상황에 의아했지만 뭔가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에 내가 물었다. 


"아니 무슨 행사가 있나?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


잠깐 걷다가 동료 P가 무엇을 발견한 듯 이야기했다. 


"오늘 Bourbon Festival Paraty 하는 날인가 보네. 항상 와보고 싶었는데 이 축제를 이 시기에 하는구나."

"뭐야 진짜 축제야? 뭐 유명한 축제예요?"

"아 이게 Bourbon Festival이라고 파라치 지역에서 제일 큰 연례 재즈 음악 행사인데 브라질 가수들 뿐만 아니고 다양한 나라 가수들도 참여해서 하는 축제예요. 메인 무대도 크게 따로 있고 가수들이 식당에서든 길거리에서든 다 버스킹하고 그러는 축제."


축제의 나라 브라질에서 축제를 볼 수 있다니. 이런 행운이 따를 수가. 역사지구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맞춰 내 심장박동도 빨라지고 있었다. 어느새 아쉬움은 온데간데 없고 설레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해 역사지구로 들어갔다. 역사지구에 들어서자마자 분위기에 녹아버리고 말았다.


유럽의 작은 도시를 연상시키게 했던 파라치의 역사지구


"와~ 여기 완전 유럽 작은 도시 같은 느낌인데?"


포르투갈 식민 시대의 건축양식과 함께 깔린 돌들이 마치 유럽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했지만 뭔가 유럽과는 또 다른 느낌인 것이 브라질 특유의 바이브가 함께 녹아 좀 더 생동감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을은 어느새 어둠이 짙게 깔렸지만 이 어둠이 오히려 앤틱한 분위기의 가로등 불빛이 더 아름답게 빛나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너나 할거 없이 즐거운 분위기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는 내 마음을 더욱 설레게 했다. 역사지구의 먹자골목처럼 보이는 곳의 식당들에서는 넘치는 사람들로 생기가 돌았다.  


식당들이 많이 몰려 있었던 골목


마침 허기가 졌던 터라 식당에 들어가 얼른 간단하게만 요기를 하고 이 분위기를 다시 느끼고자 했다. 간단한 요리와 함께 브라질의 전통주 카샤사로 만든 칵테일인 카이피링야 한 잔을 걸쳤다. 역시 여행지에서 먹는 음식은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로 먹는 것 아니겠는가? 생기로 가득한 분위기 속에 곁든 칵테일은 어찌 그리 시원하고 달달한지 금새 한 잔을 다 비워버리고 말았다. 그냥 무엇을 하지 않아도 그 분위기 속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한 느낌이었지만 축제의 분위기를 더 즐기고자 발걸음을 재촉했다. 


중앙 광장으로 이동하면 이동할수록 길거리에는 버스킹 하는 가수들이 보였고 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실 유명 여행지를 가면 다양한 음악으로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나, 파라치에서 본 버스킹은 내가 지금까지 본 길거리 공연 중에 가장 인상 깊었다. 버스킹 하는 가수들뿐만 아니라 이를 즐기는 관객들이 그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온몸을 다해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라질은 신기하게도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어르신들부터 다정한 연인들까지 그저 가만히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없었다. 모두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추며 즐기고 있었다. 그저 잠시 분위기에 의해 혹은 술에 취해 당시만 어정쩡한 춤사위를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한두 번 춰본 솜씨들이 아니었다.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정말 음악에 몸을 맡기고 그 정취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이래서 브라질이 흥이 많은 민족이구나 하는 것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공연하는 가수들과 이를 즐기는 사람들


악기를 연주하는 밴드와 노래하는 가수들도 이 분위기에 흥이 나지 않을 수가 없는지 관객들이 나눠주는 맥주 한 잔에 흥겨워하며 무대를 즐기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맥주 한 잔 들고 다니지 않으면 누가 봐도 이 바이브를 즐기지 못하는 이방인처럼 느껴질까 싶어 얼른 동료 L과 맥주 한 잔을 사 왔다. 운전을 해야 하는 동료 P가 잠시 아련한 눈빛으로 맥주를 바라보긴 했지만


"에휴. 나 같아도 이 분위기에선...마실 수 있는 사람들은 마셔야지. 얼른 마셔요."


라고 하며 오히려 이런 곳에서 마시지 않는 것이 죄악인 사실을 인정한 듯 말했다. 거리를 지나다니며 약간은 쭈뼛쭈뼛 구경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처럼 관광을 온 외국인인 듯 보였고 미친 듯이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은 브라질 사람들이었다. 나 또한 브라질 사람들처럼 즐길 자신은 없었기에 그저 그 광경을 지켜보며 내적 댄스를 하는 것으로 내 흥을 주체했다. 사실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브라질 사람들은 낯선 외부인의 카메라가 불편한 기색도 없이 오히려 그 앞에서 더욱 끼를 부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다들 살아있는 듯 했다. 피곤에 지쳐 내일은 하루 종일 몸 져 누워버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이 저녁을 불태우겠다고 나온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그 덕에 나도 살아있음을, 내 심장이 크게 뛰고 있음을 느끼게 됐다.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었던 메인 광장 뒷편의 모습


메인 공연장이 위치한 중앙 광장으로 가니 더 많은 사람들이 붐볏다. 중앙 광장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고 앉아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부터 중앙에서 뛰노는 사람들까지 정말 많은 인파가 몰려있었다. 도저히 그 중앙을 비집고 들어갈 자신은 없어 사이드 쪽에서 밴드들의 공연을 잠시 감상하는데 힙한 차림의 한 중년의 여성분께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셨다. 어디 나라 사람이냐며 물으시고는 카메라를 보고 같이 사진 찍자고 하셨다. 사진 몇 장 찍은 후에 간단하게 인사 후 쿨하게 또 공연을 즐기셨다. 


사진을 찍자 청하셨던 브라질 중년의 여성 분


그냥 쿨하게 돌아서니는 모습에 저분은 사진을 받을 목적도 아니신데 왜 사진을 찍자고 하셨을까 의아했다. 그저 우리에게 추억용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싶으셨을까? 나중에 다시 사진을 보고 곱씹어 봤을 때 그 의미를 유추해 봤다. 내 생각에는 누가 봐도 관광객처럼 보이는 우리에게 그냥 말을 걸고 싶으셨고, 내 목에 걸린 카메라는 사진을 찍는 용도이니 사진을 찍자고 한 것 같았다. 아주 단순하게 짝이 없지만 그렇게밖에 해석이 되지 않았다. 카메라는 사진을 찍는 것이니까 그래서 그냥 찍는 거다. 그 이후 어떻게 연락해서 어떻게 사진을 받을 것이며 따위에는 관심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그냥 그저 그 분위기를 즐기는 여러가지 행위 중에 하나셨던 것 같다. 너무나도 티 없이 맑은 미소를 보자면 그런 것이 분명해보였다. 


나도 나름 뒤지지 않는 흥이 있는 ENFP의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브라질 사람이 가진 ENFP는 내가 가지고 있는 그것과는 매우 다른 듯 보였다. 나는 여전히 눈치도 보고 이것저것 계산도 하는 사람이지만 이들은 그 누구의 시선에도 얽매이지 않아 보였고 그저 처한 오늘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브라질 사람들처럼 사고하고 행동하기란 쉽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이나 그저 그들을 바라보며 대리만족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고 행복했다. 정말 찐 ENFP들이 모여있는 것 같았던 브라질.


자정이 가까워오도록 축제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이 분위기 우리도 쉬이 발걸음을 뗄 수가 없어 한참을 벤치에 앉아 축제를 바라봤다. 하지만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파라치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떼기로 했다.


브라질 점점 더 흥미로웠고 재밌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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