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쩌다주닝요 Sep 19. 2023

5. 브라질에선 돈 키호테가 되고파

무박2일 상파울루-리우 왕복 여행기(1)

금요일 퇴근을 앞두고 또 새롭게 맞이하는 주말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게 됐다. 방구석에서 잘 나오지 않았던 전과 비교하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이런 것을 어떻게 장족의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겠냐마는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내 자신이 이 시대의 '돈 키호테'가 된 것 마냥 신이 났다. 뜬금없이 '돈 키호테'라니 무슨 뜻일까 의아할 것이다. 


호의호식하며 허랑한 세월을 보낸 한 시골 귀족이 기사소설에 심취해 그간의 생활을 접고 불의에 맞서는 모험을 하는 소설의 주인공 그 '돈 키호테'를 말하는 것이 맞다. 이성적이자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돈 키호테'가 미쳤다고 생각하겠으나, 그는 자신의 의미와 존재적 삶을 위해 집 밖으로 뛰쳐나가 자신이 생각하는 절대선을 향해 의지를 꺾지 않았던 인물로 묘사된다. 평생을 '돈 키호테'의 종자인 '산초'처럼 사고하고 살아왔으나, 마음 한 켠에는 항상 '진짜 살아있는 삶'을 추구했던 '돈 키호테'처럼 살아보고 싶다라는 소망을 품었다. 하지만 나의 현실은 그런 삶을 추구하고 사는 것이 곧 주류 사회에서 도태되는 것임을 거듭 가르쳐 주었기에 철없던 시절 꾸었던 꿈 정도로 남아있었다. 그렇게 각인된 삶의 태도 속 매일 똑같은 일상만을 반복해오던 내게 '주말을 어떻게 (재밌고 의미 있게) 보낼까' 고민하는 이 가볍디가벼운 행위는 마치 어린 시절 꿈이었던 '돈 키호테'에게 다가가는 아주 작은 발걸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한껏 들뜬 마음이 들었다. 물론 이 별것 아닌 행위에 '돈 키호테'까지 떠올리는 나의 의식의 흐름에 잠시 웃음이 새어 나오긴 했으나 그새 어느 정도 친밀감이 쌓인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무심코 한 마디 던져봤다. 


리우는 여기서 멀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리우'라는 도시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부루마블이나 모두의마블 등의 게임을 즐긴 세대라면 각국의 주요 도시들을 기억하고 있을 테고 브라질을 상징하는 '리우'와 항상 함께 등장하는 세계 7대 불가사의로 불리는 '예수상'을 많이 봤을 것이다. 거의 내가 유일하게 아는 도시인 리우는 상파울루에서 차로 얼마나 걸리는지 궁금해서 질문을 했을 뿐인데 동료 P의 돌아오는 대답이 황당했다. 


리우 가고 싶어요? 내일 갈까?


아무렇지 않게 내일 가자고 제안하는 그의 말에 서울에서 춘천 정도 떨어진 거리를 떠올리며 그리 멀지 않은가 보구나 싶어 나는 흔쾌히 좋다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내가 있는 지역에서 리우 코파카바나 해변까지는 약 450km 떨어져 있는 곳으로 운전해서 약 6시간 이상이 걸리는 곳이었다. 서울에서 부산이 약 400km 떨어져 있음을 감안하면 쉬이 가까운 거리라고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주말에 이 정도 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중한 주말에 소위 말해 '찍먹'을 하기 위해 이 여정을 소화하는 사람들이 그리 흔하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나 또한 업무 외에 내 개인 여흥을 위해 '서울-부산' 정도의 거리를 소화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누군가를 만난다든지 혹은 살 물건이 있다든지 하는 어떤 특수한 목적이 있다면 모를까 동료 P와 그새 대열에 합류한 L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런 걸 보면 나는 영락없이 '돈 키호테'보다 '산초'에 가까운 사람임을 다시 한번 자각했다.


여하튼 빡센 일정이면 어떠하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탐험하러 간다는 설렘이 더 컸기에 나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브라질에 오래 거주한 동료들이 나를 위해 안내뿐 아니라 운전까지 해준다고 하니 더더욱이나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리우를 가기로 했다. 그것도 숙박비 아깝다고 달랑 차만 빌려서 무박 2일의 빡센 일정으로...

무박 2일 리우 일정 동선 by 구글맵

토요일 느즈막이 점심을 먹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아직 브라질 바다를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나를 배려해 특별히 동료 P가 상파울루-리우 직행 고속도로가 아닌 바닷가 도시를 하나 들리는 것으로 동선을 짯다. 약 2시간 이상 더 걸리는 동선이지만 그의 배려에 감사했다. 짧지 않은 거리를 운전해서 이동해야 하지만 그 이동하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고속도로의 날씨와 풍경에 감탄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고속도로의 풍경이란 무얼까 의아할 수 있겠으나 브라질 고속도로 풍경은 나에게 감동이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듯 보이는 그 풍경은 푸른 하늘과 함께 끝을 알 수 없게 펼쳐진 목초지가 완벽한 투톤을 이루어 한 폭의 그림이나 진배없었다. 그리고 그곳을 자유롭게 나다니는 소들은 그 그림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주는 느낌이었다.


한 폭의 그림 같았던 브라질 도로의 흔한 풍경
일반 도로에서 잠시 차를 세워두고 촬영한 사진
목초지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소들

이에 반해 동료 P와 L은 그저 노래를 들으며 운전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전 세계에서 면적이 5번째로 큰 국가이다 보니 이런 풍경이 대수롭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이런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손이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구름이 꽃망울처럼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하늘과 또 이 풍경 속에 자유롭게 드나드는 소들에게 질투가 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넋 놓고 그림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날 깨운 것은 동료 P의 말이었다.


"이렇게 방목해서 소를 키우니 브라질 소고기가 유명하고 맛있지"


넋이 나가 시간과 공간의 압축에 놓여있던 내 귀가 그의 한 마디에 뻥 뚫렸다. 나의 감동을 파괴한 동료 P의 뒤통수를 잠깐 흘깃 바라보기는 했지만 진짜 그래서 유명한 건가 하는 의식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이내 우리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참을 그렇게 이런 대화, 저런 대화를 나누며 가다 보니 어느새 이른 저녁쯤 돼서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인 Paraty에 도착했다. 


어두운 기운이 점점 깔려가고 있었기에 기대했던 바다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머금고 파라치의 유명한 역사지구로 향했다. 역사지구로 향하는 와중 전문 가이드처럼 동료 P가 파라치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파라치는 문화적으로 가치가 높을뿐더러 다양한 생태계의 보고라고 불리고 있어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한 도시예요."

"대박! 진짜요? 여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에요?"


이동해오며 지금까지 그렇게 큰 리액션이 없었던 동료 L 또한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네! 여기 진짜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예요. 파라치가 정확히 상파울루랑 리우의 중간 지점은 아닌데 두 도시 다 어느 정도 접근이 용이한 위치에 있어서 16~17세기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금이나 커피, 사탕수수 같은 걸 옮길 때 쓰던 중간 항구 도시로 이용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우리가 가는 지금 이 역사지구가 유명한 게 식민시대에 지어졌던 포르투갈의 건축양식이 현대화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유명해졌지. 그리고 여기가 대서양 인근 열대 우림지역이라 엄청 다양한 자연 생태계도 볼 수 있으니까. 뭔가 휴양지이면서도 관광지인 느낌을 둘 다 갖고있는 곳? 그런 느낌인거지. 여기 그 영화 트와일라잇에서 에드워드랑 벨라가 신혼여행으로 온 곳이기도 해서 유명해요."

"엥? 진짜요? 내가 아는 그 트와일라잇?"


내가 인류의 문화유산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하면 뭔가 대단하다는 것쯤은 알기에 그 이야기만으로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사실 더 나에게 흥미로웠던 것은 전 세계적으로 정말 유명한 판타지 로맨스물인 그 트와일라잇에서 주인공들이 신혼여행지로 온 곳이라는 사실이었다. 동시에 이렇게 유명한 지역인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출발해서 낮에 바다도 보고 차분히 구경 좀 할 걸 하는 아쉬움과 함께 파라치 역사지구에 도착했다. 


(다음 편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4. 브라질은 무섭지만 참 따뜻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