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신의 이야기가 당신의 것이기를

by 라파엘다

창작이라는 건 참 묘한 일이다. 가슴속 어딘가에서 오래도록 머물던 감정이나 생각이 어느 날 문장으로, 멜로디로, 이미지로 모습을 드러낸다. 세상은 이를 예술이라 부르고, 우리는 그 창작물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한다. 그런데, 그토록 힘겹게 끄집어낸 나만의 이야기가 누군가에 의해 무단으로 사용된다면, 우리는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까.


나는 예전에 시를 썼다. 대학 시절이었다. 모교의 교지에 몇 편의 시를 투고했고, 평소 말이 없던 친구가 다가와 내 시를 읽었다며 말없이 내 어깨를 툭 쳤다. 그 짧은 순간이 너무나 벅차서,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누군가 내 글을 진심으로 읽었다는 사실은, 단순한 기쁨을 넘어선 감정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내 시 중 한 편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블로그에, 내 이름도 없이, 마치 그 사람이 쓴 것처럼 실려 있었다. 화가 나기보다 허탈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감정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복사해서 붙여넣을 수 있는 문장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아팠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저작권이라는 단어가 단순한 법률 용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작권은, 창작자의 이름을 되찾아주는 정의의 수단이자, 앞으로도 계속 쓰고 그릴 수 있도록 보듬어주는 보호막이다. 흔히들 저작권을 돈과 연결지어 생각한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창작자도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본질은, 누가 그 이야기를 했는가, 누가 그 감정을 처음으로 꺼냈는가에 대한 존중이다. 이 세상 모든 이야기는 누군가의 삶을 통과해 나온 것이기에, 그 이야기에는 반드시 이름표가 있어야 한다.


가끔 우리는 너무 쉽게 ‘공유’를 말한다. 좋은 글, 멋진 그림, 감동적인 음악을 아무런 표시 없이 복사하고 붙여넣는다. 그게 문제인 줄도 모르고. 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그들이 쏟아부은 시간과 진심을 지워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냥 좋은 글이라 나눴을 뿐이에요”라는 말은 때때로 너무 무책임하게 들린다.

창작자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늘 불안하고, 흔들리며, 누군가의 한마디에 상처받는다. 그럼에도 계속 창작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자신만의 언어로 이 세계와 연결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묻고 또 묻는다.


“이 이야기는, 정말 내 이야기인가?”


당신이 지금 누군가의 글을 읽고 있다면, 그 끝에 이름이 있는지 살펴봐 달라. 그리고 그 글이 당신의 마음을 건드렸다면, 창작자를 기억해 달라. 그것이 창작을 이어가게 만드는 가장 따뜻한 방식이다.


모든 이야기는 주인을 가진다. 당신의 이야기도, 나의 이야기처럼.

keyword
작가의 이전글파이코인 도서 가입및 채굴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