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이 불편해지는 이유

사랑의 양면성

by 진익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타인을 의식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나를 괜찮게 생각할까?’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겠지?’


끝없는 추측 속에서 남들이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기대감과,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이런 의식은 스스로를 예쁘게 포장해주기도 한다.

슬플 때 웃는 모습으로, 화날 때 상냥한 목소리로.

타인의 편의를 위해 불편함을 감수한다.


때로는 박수를 받는다.

“잘했다 “, ”대단하다 “, ”부럽다 “는 말을 들을 때 목말랐던 욕구가 채워지는 듯하다.

정작 마음속 진실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갈증은 다시 시작된다.

목이 타들어 가듯 채움을 요구한다.

더 이뤄야 하고, 더 잘해야 한다.

주변을 둘러보며 스스로의 위치를 재확인하며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좀만 더, 좀만.’


그 속삭임을 따라가다 보면,

깊은 침묵 속에서 마음의 목소리가 한 문장을 건넨다.


“너는 누구야. “


그 질문 앞에서 말문이 막힌다.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했는지조차 기억을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그 무엇 하나도 솔직하게 대답할 수가 없다.

그렇게 공허함이 동반된 극심한 고통이 가슴을 찌른다.


그 고통 앞에서 조용히 생각해 보면, 모두에게는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결핍이 있고, 상처가 있다.

아무도 모르게 서로의 마음에 상처의 씨앗을 심어주기도 한다. 그 씨앗은 자라나 마음을 송두리째 집어삼킨다.


마음이 상처로 가득하다면, 상처가 언제 생겼는지, 왜 생겼는지 스스로에게 천천히 물어보고 지켜보는 것만으로 천천히 옅어진다.


타인은 서로에게 관심을 주고받지만,

그 시간은 잠시일 뿐, 결국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늘 타인을 생각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타인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다.


모두가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아갈지 끊임없이 스스로와 대화를 나누며 살아간다. 결국 가장 관심 있고 사랑하는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때로는 그 사랑이 화살이 되어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결국 사랑이 있기에 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숨 쉬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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