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1
생각해 보면 그 편지를 발견하기 전부터 그와 나의 관계는 삐그덕 거렸다.
금요일이던 크리스마스이브에 늦게까지 야근을 한다고,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고 투정 부리는 나에게 기념일에 집착한다면서 이상하다듯이 말하던 그와 다툼이 있기도 했었다.
주말 당일에 갑자기 사전에 말하지 않았던 친구들과의 약속을 가겠다고 했고, 나는 왜 이런 식으로 통보하냐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본인의 생일에 아내가 아닌 친구들과 보낸다던 그와 언쟁이 있었지만, 나는 점심에 미역국과 밥을 차려주고 잘 다녀오라고 했었다.
첫눈 오는 날에 굳이 패딩이 아닌 코트를 입고, 갑자기 안 쓰던 향수를 뿌리고 향기 좋은 바디워시를 쓰고 나가는 그를 보면서 나는 왜 단 한 번도 여자가 있을 거라는 의심은 하지 못했던 걸까?
1월 1일에도 지방에서 후배가 올라왔다면서, 점심에 나와 시댁에 다녀와서 머리가 마음에 안 든다면서 다시 샤워하고 나가는 그를 기다리면서 집안 청소를 하던 나는 왜 한 번도 의심을 하지 않았을까?
시댁에 가서 점심을 먹는데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그에게 오랜만에 얼굴을 본다고 했다, ‘어 이상하다, 분명히 최근에 퇴근하고 시댁에서 저녁을 자주 먹고 왔는데 왜 오랜만에 보신 다는 거지?’
시아버지에 동조하던 시어머니는 내 표정을 보시더니 갑자기 자기가 요즘 깜빡한다면서 최근에 그가 집에 온 것이 맞다고 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당황한 자기 아들을 감싸주려고 했던 것들이다.
모든 정황이 다 이상했는데, 나는 또 변명을 하는 그의 말에 넘어갔었다. 어쩌면 나는 불안함은 있었지만, 그것에 대해 짐작조차 하는 것에 대해 방어기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결론적으로, 나의 불안함과 촉은 그날 그의 가방을 뒤지게 만들었고, 결국은 그 편지를 발견하게 했다.
그 편지를 쓴 이는 나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바로 전남편의 직장동료. 그래서 그는 나에게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전달해 주곤 했었다.
최근에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말을 했었고, 나는 그걸 흘려듣긴 했었지… 설마 내 남편과 바람을 피울 거라고 짐작이나 했을까
편지의 내용은 생일축하한다는 내용과 항상 힘이 되어줘서 고맙다는 내용, 그리고 곧 여행을 가자는 내용과 마지막에 눈에 띄었던 하트였다.
보통 직장 동료가 축하 카드로 주고받기에는 부적절한 내용이었다. 최근에 그의 이상 행동과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편지를 발견한 순간 나는 마치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손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평소에는 긴장조차 잘하지 않는 나인데 갑자기 손이 떨리면서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마치 부부의 세계에서 김희애가 남편의 불륜 증거인 핸드폰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이 이런 것이었을까, 짐작될 뿐이었다.
내가 마주한 이 현실이 진짜인가? 몰래카메라를 하는 건 아니겠지? 차라리 그러길, 모든 것이 꿈이길 바랐다.
물론 너무나 다행히 나는 아이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혼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고, 그보다 내가 아직 사랑하는 나의 남편이 이러한 부정행위를 저질렀으며, 나를 기만하고 있다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겨웠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고, 내가 본 것이 아무것도 아니기를 바랐다.
이 처참한 현실 앞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그전까지는 사랑했던 나의 남편이 들어오는 도어록 소리가 들렸다.
그는 또 냉정한 말투로 물었다. “ 왜 또 울고 있어?” 그 당시 우리가 계속 싸웠기 때문에 나는 우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다 그 새끼가 바람피우면서 만든 거짓말 덕분이었는데…
나는 호랑이굴에 들어간 비장한 심정으로 물었다. “내 친구가 너 여자랑 있는 거 봤대. 누구니?”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는 것을 보면서 나의 심장박동도 올라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