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일까

[리뷰] 여행의 이유- 김영하

by 무명


작가 김영하는 매년 여행을 다니고, 거주지도 여러 차례 옮겨 다녔던 사람이다. 어린 시절엔 전학을 매년 하였고, 성인이 된 이후로도, 뉴욕에서도 3년을 살았고, 이후에 부산에서 3년, 그리고 서울에서 몇 년을 사는 중이다. 마치 유목민 같기도 한 삶이다.


그렇게 삶을 여행자로 사는 사람이 김영하 작가였다. 그런 그가 여행하며 느낀 경험들을, 그리고 왜 여행을 떠나는 가와 같은 고찰을 담은 책이 『여행의 이유』다.


그러나 저 여행을 왜 떠나는지 그런 이유를 설명하는 책이라고 하기엔 책은 삶을 고찰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것에 고통을 받는지, 왜 우리의 일상이 슬프고 어려운지.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고찰까지도 여행을 통해서 얻어낸다. 어쩌면 이런 일상의 슬픔과 고통, 그리고 태도의 고찰은 우리가 삶을 겪고, 다양한 책을 읽으며 수없이 고찰해 볼 만한 주제임에도 작가 김영하만의 글재주를 맛볼 수 있고, 그리고 익숙할 수 있는 주제가 여행이란 소재로부터 고찰이 얻어진다는 것의 신비함이 느껴진다.


김영하는 박학다식한 특징을 가진 작가다. 자연스럽게 그의 산문은 여러 지식이 드러난다. 김영하 작가는 이전에 말했듯 처음 만났을 때는 이상하고, 약간 거부감이 느껴지는 소설가였다. 소설도 낯설고 묘하며, 그러다 보니 이상하다는 느낌까지도 받고 그건 거부감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작가 김영하의 소설도 처음 읽었을 때는 이게 무슨 내용이지? 하는 생각에 그냥 잊어버리고 한동안은 찾지 않았었다. 그의 산문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내가 처음 접한 그의 산문은 『보다』였다. 이 산문은 읽다가 중간에 멈추고 아직 안 읽었지만, 그 이유는 이해하기가 어려워서이었다. 그가 소개하는 많은 고전과 이야기들은 내가 모르는 것들이었고, 익숙지 않았기에 편하지 않게 느꼈다. 그가 가진 다양한 지식과 박학다식함은 『보다』를 읽을 때의 내겐 불편함이었다.


적당한 시간이 흐르고, 작가 김영하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늘었다고 느껴질 때, 난 『여행의 이유』란 산문을 다시 만났다. 여전히 그는 지식이 많고, 자신이 한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가 선보이는 지식이 이젠 좀 더 익숙해졌고, 무엇보다 여행이란 주제는 익숙한 것이니까. 그리고 작가의 경험에 기반해 고찰을 시작하고 있어서, 잘 읽혔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작가 김영하란 어떤 사람인가를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되는데, 그는 당당하게 자신은 친구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전학도 많이 다니고, 거주지도 끊임없이 바뀌는 사람답게 이야기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면에서 그의 눈치 보지 않는 당당함이 느껴졌다. 자신의 결혼식에 동창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대화의 희열이란 프로그램에서 나와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작가 김영하는 주위가 말리는 많은 일을 했음을 말한다. 다들 말리는 곳에서 등단했고, 등단한 작가가 작품을 투고하기도 했다. 편집자가 말리던 이야기의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게 살인자의 기억법이라고 했다) 남이 안 쓸 거로 생각한 이야기를 부러 쓰기도 한단다. 김영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약간은 알 거 같다. 문학평론가 허희 평론가는 김영하 작가를 두고, 작가적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라 말한 적 있다. 작가가 보일 수 있는 카리스마에 대해, 유명 작가로서 보여준 김영하 작가를 이야기하다가 나온 표현이었는데. 그런 카리스마도 그가 가진 당당함을 기반한 것이었다.

그런 그의 카리스마에 멋있음이 느껴졌다.


작가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여행의 이유』 -180쪽


라고 말하며, 우리의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여행지에서의 우리는 노바디(nobody)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우리의 정체성이 감옥처럼 느껴진다고도 한다. 작가는 정체성을 종종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이에 대해 김영하 작가는 방송 인터뷰에서 한 말이 있다.

“사람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데는 시간이 걸려요. 보통은 자신을 부정해요. 그리고 자신의 이상향을 쫓죠. 정체성은 말보다는 행동이에요. 자신이 들인 시간이 어디에 있는가. 그것이 자신을 구성하는 정체성이죠. 저는 소설 쓰는 행위 다음으로 시간을 많이 들인 건 여행 가기였어요. 제 정체성은 소설가이고 다음으론 여행자인 거죠.”-대화의 희열 - 김영하


『여행의 이유』 속 작가의 말에도 나온다.

“그러니까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을 기준으로 보면, 나는 그 무엇보다 우선 작가였고, 그다음으로는 역시 여행자였다.”-『여행의 이유』 -212쪽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궁금해하기도 하면서, 알게 되면 감옥처럼 느껴진다. 그런데도 정체성을 고민하는 것은 우리의 본성과도 같아서, 난 여전히 내 정체성을 모르겠고, 고민한다. 이러는 와중에 김영하 작가가 힌트를 제공했다. 내가 들인 노력과 시간이 무엇이었는지,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 그것이 정체성일 수 있다는 것.

이 책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다방면으로, 깊고 많은 고찰을 보여주지만,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와닿고, 관심을 부른 주제는 이와 같은 정체성이었다. 내가 현재 가장 많은 고민을 하는 소재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의 본능과도 같은 고민이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 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여행의 이유』 - 51쪽


이렇듯 작가는 정체성을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난 아직도 내가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고, 어떤 것을 잘하며, 어떤 사람인가. 그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는 중이다. 그런 내게 이 책은 힌트를 제공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여행기는 작가가 겪는 이런저런 실패담으로 구성되어 있고, 여행기란, 집을 떠난 주인공이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 돌아오는 것이다. (18~19쪽) 작가는 그렇게 우리는 어떤 것을 얻고, 조금씩 자신을 알게 되어가는 것. 그것이 여행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겪는 여러 실패담이 내 정체성을 이루어 간다는 것이라고 내게 위로하는 듯 느껴졌다. 그러면서 다시금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내가 들인 시간이 곧 내 정체성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오랜 시간을 들인 일이 실패해 버린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내 정체성이 될 만큼 오랜 시간을 들였지만, 그것이 결국엔 실패해 버렸고, 마치 그건 내 정체성이 아니라고 말하듯 부정당했다면, 어떠한가. 현재 내가 이런 상황 끼어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다.


“우리의 정체성은 스스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타인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여행의 이유』 - 165쪽


작가는 책에서 다시금 정체성의 특징을 언급하는데, 정체성은 타인의 인정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는 그런 인정이 부족했다. 타인의 인정도 부족하지만, 무엇보다 나 스스로 인정이 부족했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시간을 들인 그것은 내 정체성이라고 하기에는 모자랐고, 그 모자람을 인정했기에 그대로 실패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그것은 시간을 들였음에도 내 정체성이 아니라고 느껴지게 되었다.

이제 내게 남은 과제는 다음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작가 김영하가 처음의 정체성이 작가이고, 다음이 여행자였듯이. 나의 다음 정체성 후보는 무엇일까. 그리고 다시 경험해 보면서 실패해 보고, 타인의 인정을 그리고, 나 자신의 인정을 그 정체성이 얻어낼 수 있을지 확인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여행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라고, 다시 현재를, 오직 현재를 살아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여행의 이유』 - 82쪽



우리는 과거의 실수와 미래의 걱정에 붙잡혀 현재를 미적거리며 살아가는데, 그 미적거림에 대해서 작가는 위처럼 말했다. 후회할 일을 하게 되거나, 불안한 미래가 두렵기에 우린 현재 미적거리게 된다. 이런 미적거림을 여행은 우리의 등을 밀어버림으로써 없애주고. 현재를 살게 해 준다. 그리고 현재를 사는 우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테스트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여행은 우리가 현재를 살게 함으로써, 우리가 어떤 것을 얻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하는 게 아닐까. (51쪽)

그렇게 우리는, 그리고 나는. 현재에 집중하면서 내가 가진 나의 정체성의 후보를 찾고, 그들을 검증해 보면서, 넘어지기도 하고, 시련을 겪으며, 정체성의 장막을 점차 걷어낼 것이다.

작가는 비행기가 힘차게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하는 순간마다 삶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는 기분이 든다고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어지러운 일상으로부터 완벽하게 멀어지는 순간이다. 여행에 대한 강렬한 기대와 흥분이 마음속에서 일렁이기 시작하는 것도 그때쯤이다. 내 삶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는 것도 바로 그 순간이다.”-『여행의 이유』 - 203쪽


이제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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