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세상을 바꾼 방식 -외로움

[리뷰] 커먼즈란 무엇인가 -한디디

by 무명

1인 가구, 고립된 젊은이들, 외로운 청년들, 이런 쓸쓸한 이야기가 많이 들려옵니다. 각박하고 쓸쓸한 세상이구나..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바로 그 고립된 외로운 청년이 나 자신임을 깨닫기도 합니다. 도시에 혼자 살고, 나이가 들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휴대전화가 발명되고, 인터넷이 생겨나면서 사람과의 연결이 쉬워졌음에도, 오히려 사람들은 연결이 끊기고 혼자가 되었습니다. 흔히 하는 생각입니다. 왜일까. 무엇이 세상을 외롭게 만들어가는 걸까. 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을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인문 지식서를 읽었습니다. 한디디 작가의 'COMMONS 커먼즈란 무엇인가' -자본주의를 넘어서 삶의 주권 탈환하기-라는 책입니다. 제목에서 보듯이, 커먼즈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그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다가, 커먼즈 운동을 소개해주는 책입니다.

커먼즈란 흔히 공동체의 일원들이 공동으로 이용하고 관리하는 자원 정도로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작가는 그보다 더 넓은 함의를 가진 단어라 설명합니다. 커먼즈는 공동체의 규칙과 규범에 따라 운영되는 자원이기도 하고, 도처에 존재하는 공기, 물, 햇빛, 바람, 산, 들, 갯벌, 바다를 의미하기도 한다며 설명합니다.

이에 작가는 커먼즈는 활동이자 관계라는 말을 소개하고, "커먼즈는 활동이며, 자연과의 관계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사회적 관계"이고 커머닝 이란 동사형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제안을 소개해주기도 합니다.

책을 다 읽었지만, 여전히 커먼즈, 커머닝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와닿아 이해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인간이 그 커먼즈를 잃어 가는 과정을 보면서, 지금 제 주변을 살펴보니 내가 느끼는 쓸쓸함이 실체화되어 보이는 듯했습니다.

"커먼즈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무언가를 함께하는 활동 속에서 만들어지고/나뉘는 것, 혹은 그러한 관계입니다." -20p

커먼즈란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커머닝이 만들어내는 것을 참여한 사람들이 소유할 수 있는 것도, 공평하게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사랑과 우정, 친밀감을 소유하거나 나누어 가지는 게 아니듯이 말입니다.


작가는 인류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마녀사냥이 팽배하던 시기, 산업화 발생하는 시기, 자본주의의 태동, 화폐의 등장 등을 바라보며, 사회구조 변화를 확인합니다. 여러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중에 가장 제게 와닿았던 부분은 화폐 등장과 자본주의의 발생입니다. 화폐와 자본주의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회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사유재산화입니다. 자본주의를 퍼뜨리기 위한 여러 정부, 국가의 노력 때문에, 인류는 자본주의 세계로 빠져들었습니다. 자본주의는 모든 걸 개인의 것으로 만들어 주었으며, 그것들에 화폐를 통해서 가치를 매기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는 공유지의 비극과 그 전제인 인간은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공유지의 비극이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적어도, 과거에는 가능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예로 두레를 설명합니다.

"이해관계를 자잘하게 따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레는 단순히 품앗이 조직인 작업 공동체를 넘어 마을 공동체로서 사회성을 지니게 된다. (중략) 조선시대 마을은 민중이 생산 활동을 조직하고 살림살이를 꾸리는 커먼즈의 기본 단위였을 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와 일정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자율적 단위였습니다." -57p

이외에도 그리스, 유럽, 일본에도 이런 존재들이 존재했다는 예시를 보여줍니다. 바로 이런 공동체적 단위를 무너뜨리기 시작한 게 자본주의라고 설명합니다.

그에게 숲은 공통의 지식이자 삶의 원천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숲은 자원이며 상품입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목초지 상태와 관계없이 많은 소를 풀어놓는 목동이 되고, 돈을 벌기 위해 우거진 열대우림에 불을 지르는 개발업자가 되죠. -72p
생산양식으로서 자본주의가 생산하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상품이 아니라, '상품 관계'를 통해서 삶을 생산하게 된 사람들과 그들의 관계입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속에서 사람들은 세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바라보기 시작하고, 그 속에서 만들어진 특정한 욕망을 본능으로 여기기 시작합니다. 데 안젤리스의 말을 빌리자면, "포식자 자본주의 시스템은 우리의 감각마저 식민지로" 만듭니다. -72p

적어도, 자본주의 세계가 자리 잡으면서 공유지의 비극이 시작된 걸로 보입니다. 여기서부터 제 쓸쓸함이 실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자본주의라는 경제 시스템이 거기에 속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꾼다는 겁니다. 화폐가 생겨나고, 자본주의가 자리 잡아 갈수록 사람들의 인식, 즉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변했습니다.

"사람들이 시간을 분과 초로 쪼갤 수 있는 동질 한 것, 계산 가능하고 돈으로 환산되며 그렇기에 아끼거나 낭비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상당히 새로운 현상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91p
"산업 사회에서 시간은 1초와 1초로 나눌 수 있는 동질 한 것이 됩니다.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만이 울리는 가운데 화덕 불을 쬐는 고즈넉한 밤의 시간, 마을 축제에서 사람들과 노래하고 춤추는 시간, 밭에서 돌아오는 가족을 기다리며 분주히 저녁을 짓는 시간이 갖는 고유한 질적 특징은 사라지죠." -92p

우리도 과거엔 정시, 자시 하며 시간을 2시간 단위로 넉넉하게 셌었지만, 이젠 1초를 단위로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그 시간마저도 이젠 돈으로 환산합니다. 추가로 '누구'의 시간인가에 따라, 다시 그 값어치는 천차만별이 됩니다. 사람의 노동력도 세분화하고 가치를 매기는 겁니다. 단순히 돈이라는 하나의 기준만을 가지고 말입니다.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변화하는 겁니다.

이는 나아가, 사유재산이 발생하고, 부를 쌓기 시작하면서 더욱이 강화되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전 시대에도 사유재산이 없던 건 아닙니다. 다만, 시간 1초, 노동력 등까지도 세세히 사유재산을 주장하진 않았습니다. 지금의 세상에서는 사람을 이용하려면, 돈을 줘야 합니다. 이웃한테도 쉬이 무언갈 부탁할 수 없습니다. 또한, 산에 있는 과일, 가로수 매달린 은행 하나도 따먹으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물도 사 먹어야 합니다. 생수뿐 아닙니다. 수돗물도 수도세가 들어갑니다. 우물이 존재하던 시절에는 상상 못 할 일입니다.

작가는 자본주의 세상이 인식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걸 지적하면서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도 합니다. 공동체로 가장 흔한 건 가족입니다. 가족의 의미도 변화해 왔습니다. 지금의 가족은 부모와 자식이라는 4인 가족이 가장 흔한 인식입니다. 그러나 과거엔 가족은 3대 4대에 걸쳐있었고, 더 나아가 그 집에 속한 하인, 지나가다 들린 객들까지도 가족 공동체로서 인식하며 살았다는 겁니다. 더 나아가면 하나의 마을이 가족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학창 시절일 때, 현대 사회는 핵가족으로 변했다고 교과서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로부터도 십 년이 더 흐르니, 그 핵가족이 4인보다는 3인가족이 되더니, 이제는 가구 자체가 1인 가구의 시대라고 합니다. 가족 공동체라는 인식도 점차 좁아지고 작아지고 있는 게 느껴집니다.


이때쯤 1인가구, 고립된 젊은이, 외로운 청년들 등 서문에서 언급했던 쓸쓸한 이야기들이 다시금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공동체가 약화되고, 해체되어가고 있음은 사실 우리 모두 어렴풋이라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그 공동체에 속해 사는 사람들이니까요. 공동체의 가장 마지막에 있는 최후의 보루가 가족이라 생각합니다. 가족 공동체만큼은 해체되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체재는 피할 수 없습니다. 현대에 와서 자본주의를 버릴 수 없죠. 사유재산화, 화폐 체재도 버릴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본주의는 강화될 뿐, 약화되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불가피한 현실이라는 겁니다. 이러다 보면, 언젠가 가족이란 공동체마저도 약화되고 해체되는 건 아닐까. 혹은 이미 그렇게 해체된 사람들이, 고립되고 외로운 청년이 된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이 흘러갔습니다.

그들의 쓸쓸함이, 저의 쓸쓸함이 되어버렸습니다.


전 혼자 살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이사 왔습니다. 밤이 되면, 집안의 빛은 서재에만 켜둡니다. 전기세도 돈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면, 침실에는 잘 때에만 들어가고 그곳의 전등은 하루 종일 켜지 않습니다. 밤 열 시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침실에서 이어진 베란다에 걸터앉아 밖을 내다봤습니다. 여전히 불은 하나도 켜지 않은 채로. 어둡고 오래된 건물들이 창문 밖에는 많이 있었습니다. 불 꺼진 창문 안에는 모두 사람이 살고 있을 겁니다. 과거보다 늘어난 인구, 높은 밀도 그럼에도 공유하는 감각은 없는 관계들.

자본주의 세계를 해체할 순 없고, 인간 사에 대안은 없는 바, 공동체는 지금 이보다도 해체되어 갈 겁니다. 자본주의가 원인인 한, 세상은 더욱 삭막해지고, 각박해져 가겠죠. 물론 작가는 여러 커먼즈 운동을 소개하며, 노력들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유의 형식으로밖에 세상을 보지 못하게 된 사회에서 커먼즈를 재구성한다는 것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사유하고 감각하고 의지하고 행동하고 사랑하는 일", 즉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모든 법"의 새로운 구성을 의미합니다. 게다가 그 새로운 구성은 커머닝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동료들과 함께 무수한 시행착오를 해나가는 가운데 커머닝의 경험은 우리의 집단적 존재를 확장시키고, 우리가 걷는 방식을, 시공간을 느끼는 방법을, 우리가 사고하고 감각하는 언어와 몸을 조금씩 흔들고 균열 낼 것입니다. 처음에는 더듬더듬 천천히, 그러나 더 많은 사람이 연루될수록 점점 더 활발하게, 지금 여기서 무수한 방향으로 활짝 열린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면서요." -249p 에필로그

그의 긍정적인 전망에 개인적으로는 동의가 되진 않습니다. 커먼즈 운동이,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영속 가능한 가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제가 부정적이고 쓸쓸한 사람이라 그럴까요.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저 느낌이 그럴 뿐입니다.

다만, 작가가 소개한 커먼즈의 예시에서 나옵니다. 빈고라는 운동에서 교환양식을 설명할 때, 갑(甲)이 주기를 제안했을 때, 상대방인 을(乙)이 이에 저항한다면 서로 주고자 하는 경쟁이 시작된다란 설명입니다. 그리고 이는 사양으로 인한 공동기탁이며 커먼즈의 발생이라 말합니다.-230p

주고받음에 있어서, 여유를 가지는 것. 갑처럼 아무런 이유와 대가 없이 줄 수 있고, 을처럼 사양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 적어도 나 혼자서라도 저런 마음을 먹는 건 할 수 있지 않을까. 사회를 바꿀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최근에 이사를 왔다고 이미 썼습니다만, 이전에 살던 곳은 분당이었습니다. 그곳에 비하면 사실 집 값도 열 배 이상 싸고 건물들도, 도시의 역사도 훨 오래된 곳으로 왔습니다. 밤도 더 어둡고, 주민들의 에너지도 가라앉아 있는 듯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 도시가 산책하기가 더 좋습니다. 열심히 꾸미고, 조경을 해둔 반짝반짝한 도시보다, 어둡고 낡은 이 동네가 더 마음에 가닿습니다. 조그만 나라이지만, 그 도시마다도 분위기가 다릅니다. 지금의 동네는 그래도 공동체로서의 인식이 아주 조금이지만 더 남아 있는 듯 느껴집니다.

책을 다 읽고, 베란다에 앉아 그 어두운 창문과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건물들을 보고 있었을 때, 어느 커플이 아파트 입구로 들어오는 걸 봤습니다. 조그만 피자 박스 같은 것과 음료수를 들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들은 피자 박스를 입구에 주차된 트럭에 올려두더니, 경비실로 들어갔습니다. 그게 그렇게 따스해 보였습니다. 무엇을 했는지는 모릅니다. 오랜 시간을 보낸 건 아니어도, 잠시 인사만 하고 나올 정도의 시간도 아니었습니다. 다시 나온 그들은 피자박스를 한 손에 들고는 본인들의 집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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