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영화 리틀 포레스트
[감상] – 리틀 포레스트
0. 들어가면서
꽤 오래전에 영화관에서 본 영화이지만,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면서 나오던 노래를 기억한다. 융진이란 가수의 ‘걷는 마음’이란 노래. 좋은 영화는 여운이 마지막에 남으면서, 그 자리에 잠깐은 앉아 있게 해 준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이 노래가 날 자리에 붙잡아 주었다. 이 노래가 들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그날의 분위기, 그때의 내 기분이 지금도 명확히 기억에 있다.
‘걷는 마음’은 지금도 아침을 깨워주는 모닝콜로 쓰고 있다. 오늘은 새벽 5시에 혼자 일어났다. 무슨 일이 있던 건 아니고, 그저 그냥 눈이 떠져서 몸도 일으켰다. 그리고 깊은 허기가 갑자기 느껴져서 집에 있던 감자를 깎아서, 소금을 넣고 삶아서 먹고 있었다. 그때쯤, 저 멀리 방에서 들리는 노랫소리. 그게 ‘걷는 마음’이었다. 아직도 모닝콜로 쓰고 있지만, 지금도 듣기 싫지 않은 노래. 이걸 듣자니, 이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그때의 내 기분이 떠올라서 뒤늦었지만 이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좋은 영화, 좋은 이야기에는 여러 가지 주제가 공존하고, 자연스럽게 그게 어울려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도 여러 이야기가, 단순하지만 조화롭게 어울려져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 이야기들을 감상으로써 남겨보려 한다.
1. 혜원의 귀환
영화는 시작하면서, 서울에서 임용고시에 떨어진 혜원이 시골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작한다. 오랫동안 빈 집이었던 그곳에 와서는, 간단히 정리하고 자연에서 자라난 배추를 뽑아다가 요리를 해 먹으며 그 만족감을 느낀다.
혜원은 실패했다.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들 실패의 경험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혜원은 그런 인물을 대변한다. 그런 인물이 시골의 집으로 잠시간 돌아온 상태. 이야기는 특별한 갈등이나 극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 잔잔하게 요리하고 농사를 도우며 시간이 흐른다. 거기서 우리는 치유를 받는다.
그 잔잔한 상황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그 상황에서 영화를 보는 나도 어떤 포근함을, 따뜻함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게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첫 번째이자, 가장 큰 주제라 생각한다.
분명 혜원은 실패했다. 자존감, 자신감이 깎여있는 상태로,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상처를 받고, 아무것도 없는 빈집에, 아주 처진 상태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그녀를 공격하는 사람은 그곳에 없다. 오히려 그녀가 오자마자, 이웃에 사는 고모는 굴뚝 연기를 보고 찾아오고, 소꿉친구도 바로 찾아와서는 달려든다. 그 포근함이 혜원은 물론, 나도 느껴진다.
혜원에게는 돌아올 곳이 있었다. 영화 속에서도 재하는 서울에서의 일을 그만두고 영농후계자가 되기 위해서 온 소꿉친구인데, 재하도 이야기한다. 자신이 서울 여자친구와 헤어진 일에 대해서, 자신은 그저 돌아온 것뿐이라고.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가 되는 가를 보여준다.
사실은 자연스럽게 흘러갔지만, 혜원도 임용을 준비하면서 꽤 오랜 시간 집을 비워두었을 거다. 그럼에도 그녀는 돌아오자마자, 그곳에서 잠을 자고 밥을 해 먹는다. 빈집이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아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녀가 돌아올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두고 있던 사람들이 그곳에, 그 시골엔 존재했다. 따스한 환대가 느껴진다.
영화에서 혜원도 이야기한다. 자신만의 작은 숲을, 리틀 포레스트를 찾아야 한다고.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야겠다.”-혜원의 말
그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건네는 거다. 우리는 돌아올 보금자리가 있습니까라고. 그 보금자리는 반드시 이 영화처럼 어떤 장소일 필요는 없다. 흔하게는, 나한테는 부모의 존재가 그 보금자리가 된다. 지금은 고향집을 떠나와 타지에 머물며 살지만, 언제라도 난 그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다. 반드시 그 집이 아니어도, 그저 부모가 있는 곳이라면 난 돌아갈 수 있다.
2. 시골 공동체, 커먼즈에 관해
영화는 현대사회의 젊은 이들이 겪을 실패의 감정을 혜원을 통해 대변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서면서, 화폐가 주된 가치로 자리 잡게 되고 경쟁은 심화되었다. 화폐가 등장하고, 자본주의 사회가 되면서 인간 사회에는 사유화된 재산이 강조된다. 이전에는 개인의 재산으로 여기지 않던 것들도 전부 개인의 사유화된 재산으로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공동체 의식이 약화되고 공공재는 사라졌다. 그러면서 가족의 의미도 점차 협소해졌고 이제와서는 핵가족도 해체되어 가는 양상을 보인다. 이는 책 ‘커먼즈란 무엇인가’란 한디디 작가의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런 현대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존재하던 개인의 보금자리가 사라져 가고 있다.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이 돌아오는 시골에서는 그렇지 않다. 상대적으로 공동체 의식이 여전히 존재하고, 커먼즈가 상대적으로 남아있다. 혜원은 오자마자, 텃밭에서 배추를 뽑아서 먹는다. 자연이 주는 커먼즈로서 배추가 기능한다. 그 후엔 친구 재하가 강아지 한 마리를 준다. 따뜻한 온기가 필요하다면서. 그 강아지도 개인의 사유재산일 테지만, 그저 쉽게 건네준다. 혜원의 텃밭을 친구 셋이 같이 가꾸거나, 재하의 농장에 혜원이 일손을 보태러 가는 장면 등은 그곳이 노동력 등을 등가교환의 가치로서 칼 같이 교환하는 곳이 아님을 보여준다. 지금 현대사회라면 그런 노동력도 일당을 줘야 할 것이고, 강아지도 사야 하며, 아무 배추나 막 뽑아 먹을 수 없다.
영화는 그런 시골의 문화를 보여주며, 공동체의 그리움을 보여준다. 혜원은 실패의 쓰라림을 그 공동체로부터 치유받고, 다시금 일어날 힘을 얻는다. 이런 장소가 없는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안타까움이 반사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최근의 뉴스들은 꽤 많은 사람이 혜원의 시골 같은 환대의 장소가 없는 건 아닐까 생각을 하게 한다.
영화는 그 공동체의 소중함을 간접적으로 느껴지게 했다고 생각한다.
3. 주체적 인생
이 영화에서 꽤 의문스러우면서도, 중요한 존재가 있는데 바로 혜원의 엄마이다. 혜원의 엄마는 혜원이 성인이 되는 때, 편지 하나를 남기고 집을 떠난다. 엄마는 혜원에게 좋은 엄마였고, 참 잘 키워주었기에 충격이 더 크다.
혜원의 엄마는 자신의 삶을 살겠다며 떠난다. 그 과정에서 실패할 수도 있고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떠나려고 결정했다면서 홀연히 떠난다. 이 이야기는 간단하게는 엄마로서의 희생을 보여주고 엄마도 하나의 독립된 주체로서의 삶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준다.
다만, 그렇게 단순한 부분이 전부인 거는 아니다. 물론 엄마는 혼자서 혜원을 키우기 위해 고생했다. 그러면서도 각종 요리를 가르치고, 삶의 지혜를 가르치면서 그 소임을 다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혜원을 강제로 독립시켰다.
영화는 분명, 돌아올 환대의 장소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실패를 보듬어 줄 수 있는 공동체를 이야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그런 공동체가 현대에서는 깨어져가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어찌 됐든 우리는 그 사회에서 적응해서 살아가야 하니까. 혜원을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시키는 거다. 엄마가 모던하고 주체적인 삶을 찾아가는 인물이듯, 혜원에게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 같다.
엄마는 나름의 책임을 했다. 엄마는 혼자서 혜원을 키우면서 그 시골에 있었다. 사실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도시에 갈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혜원을 이곳에서 키운 건 엄마의 선택이었다. 혜원이 영화의 시작에서 실패하고 돌아온 그 집, 이 시골의 환대를 마련해 둔 것은 바로 엄마였다.
“혜원이가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엄마는 믿어.” -영화 리틀포레스트 속, 엄마의 편지.
엄마는 혜원이 실패할 수도 있음을 예상했을 거다. 그리고 그때에 돌아올 장소로서 이곳을 마련해 두었다. 이 엄마란 인물은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과, 자신의 부모로서의 소임, 돌아올 장소에 대한 소중함, 시골 공동체, 커먼즈에 대한 이해까지도 포괄한 사람이 아닐까.
4. 결론
영화는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면서 끝나지는 않는다. 혜원이 어떤 결정을 하는지, 엄마는 집을 나가서 무엇을 했는지. 엄마가 결국은 돌아오는지. 그 이후에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나오지 않는다. 이는 중요치는 않다. 이미 실패한 혜원이 시골에 돌아오면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금 서울로 올라가 일종의 주변 정리를 하면서, 다시금 일어설 힘을 얻었다는 걸 보여준다. 재하의 말처럼, 혜원은 ‘아주심기’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혜원이 시골길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영화는 그 노래 ‘걷는 마음’이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끝이 났던 걸로 기억한다.
영화를 보면서 우린, 보통은 혜원이 된다. 실패를 겪었던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그리고 그럴 때 우리가 받았던 환대, 그 보금자리를 생각하면서.
그리고 동시에, 우리는 다른 이들이 실패했을 때, 그 환대를 보여주었던 시골의 고모, 주변의 소꿉친구 같은 존재가 되어있는가. 우리는 그런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