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상상이 만들어낸 기괴함
영화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화면은 어느 집을 천천히 훑어가며 보여주고, 여자는 내레이션을 읊는다. 관객으로서는 아직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다. 드디어 여자가 나타난다. 여자의 이름은 루시. 루시는 생각한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여자에게는 만난 지 몇 주 밖에 안된 연인이 있다. 오늘은 그 연인과 함께 시골에 계신 연인의 부모님을 뵈러 가는 날이다. 부모님을 뵈러 가는 길에, 이제 그만 끝낼까 해. 하고 계속 되뇌고 있다. 여자는 다소 부덕한 생각인가 여기지만, 그래도 이제 그만 끝낼까 해 라며 생각한다. 여자와 남자가 자동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 연인의 만남과 대화, 여자의 독백이 이어지는 과정 중에, 뜬금없이 영화는 번갈아가면서 어떤 할아버지의 모습을 비춰준다. 할아버지는 아침에 혼자 일어나고, 준비를 한 다음, 학교로 출근한다. 청소부인 듯하다. 여학생들이 비웃으며, 경멸적인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쳐다본다.
영화에 나오는 대사들은 흔히 말하는 철학적인 언사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오히려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여자는 오늘 밤에 다시 돌아와야 한다고 한다. 논문을 마저 써야 한다며, 바쁘게 할 일이 있다고 한다. 둘의 대화는 남자가 여자를 맞춰준다. 여자는 현학적인 표현들을 해가며 말한다. 다소 허세가 섞인 듯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연인이, 남자의 집에 도착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영화는 난해해진다. 부모님이 이상하다. 저녁 식사자리는 불편하고 어색하다. 남자는 말이 없다. 여자만이 대화를 시도하지만, 그나마도 부모님의 말과 부딪히며 불편해진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더욱 이상해진다. 키우는 강아지는 쉬지 않고 몸을 털고, 부모님은 나이가 들었다 젊었다가 한다. 젊고 총명했다가, 치매가 오고 노쇠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뒤에 있던 부모님이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고, 집에 걸려있는 남자의 어린 시절 사진이, 여자와 닮았다. 불편하다. 불쾌하기도 하다. 남자 어린 시절의 방에는, 여자가 그렸던 그림들이 있다. 이상하다.
남자는 루시, 즉 여자를 매번 다르게 소개한다. 화가로 소개하기도 하고, 양자 물리학자로 소개하기도 한다. 불가해한 경험을 끊임없이 겪으면서도, 여자는 남자에게 돌아가야만 한다고 닦달하고, 정리하고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남자는 갑자기 군것질을 하러 가고 그곳에 아르바이트생 중에 두 명은 또다시 경멸적인 표정을 짓고 있다. 영화 초반에 나온 할아버지를 경멸하던 여학생들이다. 다른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나와서는 음식을 준비해 주면서, 여자에게 말한다. 가지 말라고. 또다시 이상하다. 그 여 아르바이트생에게는 발진이 많다. 피부가 안 좋다. 이상하다. 사서 차로 돌아와서 다시 출발하지만, 다시 금방 남자는 찝찝하다며 이걸 버려야겠다면서, 근처에 자기가 졸업한 학교가 있으니, 거기 가서 버리면 된다며 그곳으로 간다. 여자가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밤의 학교에 남자가 쓰레기를 버리겠다며 들어가지만, 돌아오지 않는다. 여자는 불안하고, 불편하고, 불쾌한 감정에 욕하지만, 이곳에 그저 고립될 순 없으니, 남자를 찾으러 학교를 들어간다. 그곳엔 청소부 할아버지가 있다.
대략적이면서도 영화 전체의 내용의 위와 같다. 여자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관객은 여자의 심정과 같이 이상하고 불쾌한 경험을 한다. 난해하다. 무슨 이야기일지 관객은 계속 추론하면서 보게 된다. 호불호가 분명히 갈릴 법한 이야기이다. 이해가 되지도 않지만, 불쾌한 느낌도 준다.
나는 중간부터 어떤 한 방식으로 이해했다. 남자의 방에, 화가로 소개된 여자가 그렸던 그림이 있는 걸 본 순간부터, '아, 이거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남자, 제이크의 이야기이다. 이거 제이크가 환상을 보고 있는 거다'라고 이해되었다. 여자의 독백, 여자의 허세 넘쳤던 말투, 여자의 여러 가지 직업, 여자가 하는 일, 작업물. 이런 것들이 전부 제이크가 한 것이거나, 제이크가 아는 범위 내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제이크가 만들어낸 존재구나. 부모님이 젊은 시절, 나이 든 시절, 임종직전 등의 모습이 다 나타나는 것도, 제이크의 입장에서 보면 가능하다. 제이크는 부모님의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봤을 테니까.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부모님의 임종 직전 모습도 나타난다. 제이크의 나이를 생각하면 그건 너무 나이 들으셨는데? '아, 처음부터 등장하던 할아버지, 저 할아버지가 제이크구나.' 맞다. 할아버지가 제이크다. 노년의 제이크는 외롭게 혼자서, 경멸 섞인 눈빛을 받으면서, 투명인간처럼 사람과의 교류 없이 청소부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영화가 보여준 연인의 이야기, 그 속에 제이크를 포함한 모든 이야기가, 이 노년의 제이크가 상상한 것이었다.
노년의 제이크가 상상한 것임에도 그 이야기가 너무 우울하다. 여자는 그만 끝내려 한다. 루시는 제이크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제이크가 상상한 것인데도.. 제이크는 스스로의 문제로 사람과 단절된 삶을 살았고, 나이 들어 버렸다. 그 나이가 먹도록, 고립됐으며, 사람과의 만남은 그저 상상으로만 할 뿐이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라는 루시의 독백은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하다. 처음엔 루시가 연애를 끝내려는 걸로 들렸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런 의미는 아니다. 제이크의 생각이니까. 난 상상, 망상을 제이크가 그만두려는 거라 이해했다. 이 상상이 없이는 고독하여 살 수 없기에, 끊임없이 가상의 연인을 만들고, 부모님께 소개해줬지만, 이제는 그만두어야 할 때가 되었다며 제이크가 되뇌는 것이 아닐까.
이 영화의 모든 이야기와 사람들의 시선이, 제이크의 상태라고 생각하면, 이처럼 우울할 수가 없다. 이제 불쾌함이 아니라, 슬픔과 우울함으로 영화가 바뀌었다. 이런 안타까운 삶이 있을 수 있는가. 마지막에 다다라 제이크가 어떻게 되었는가. 정확히 나오진 않는다. 폭설 속에, 옷을 다 벗어던지고, 가상의 돼지를 따라간다. 그러더니, 노벨상을 받는 상상을 하고, 바로 이어서 뮤지컬 하듯 노래를 부르고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는 상상을 하며, 제이크의 트럭은 눈에 파묻혔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결국, 제이크는 상상을 멈추지 못했고 나이 들어버렸고, 트럭이 눈에 묻혔다. 죽은 거 같기도 하다. 다른 분의 리뷰에서 보기를, 영화의 원작 소설도 읽으신 분이었는데, 그분은 제이크는 자살을 한 것이라 하셨다. 그래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보고 나니, '이제 그만 끝낼까 해'라는 말이 또 다르게 들린다. 제이크가 그만 끝내려 하는 것은 상상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상상은 끝까지 하되, 제이크는 인생을 끝내려 했던 것이었구나. 마지막 순간, 자신의 손으로 인생을 끝내면서, 가장 행복한 상상을 했다. 나이 든 제이크는 행복하게 죽었을까? 쓸쓸하게 죽었을까.
난해하고, 불쾌한 전개로 영화의 처음은 어려웠지만, 점차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서, 영화가 처음부터 보여주던 그 조각들을 맞춰가며 이해하기 시작하자, 영화가 전혀 다르게 읽히고 관객의 마음이 고조되는 느낌을 주다가, 씁쓸한 감정과 여운을 가지게 되는 영화였다.
당연히 난해한 영화는 좋아하지는 않는다. 불편하고 예술병에 걸린 듯한 느낌을 주니까. 이해가 되지 않으니 재미도 없으니까. 하지만, 이 영화는 난해한 영화 중, 가장 이해가 잘 되는 편이고 그래서 좋았다. 보기 전의 예상과는 달리, 다 보고 나니, 꽤 좋은 경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