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방향 애정

아이돌 팬심

by 무명

노래를 듣는다. 다만, 일정한 플레이리스트도 없고 엄청 뚜렷한 취향을 가진 것도 아니라서, 타인의 취사선택에 따른 노래 모음을 자주 듣곤 한다. 다른 이들이 모아놓은 플레이리스트를 주변 배경음처럼 집안에 틀어놓거나, 특정 가수의 앨범을 틀어놓거나, 커버곡 모음을 틀어놓는 식이다.

언젠가부터 엔믹스 오해원의 커버를 가끔 틀고는 한다. 최근에는 '피차일반'(원곡자 음율)이란 노래를 커버했던 영상을 봐서, 그 영상을 시작으로 노래를 틀어두곤 했다. 엔믹스는 잘 모르는 그룹이었다. 그랬지만, 리더 오해원이 이곳저곳에 나오면서 얼굴이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나올 때마다 밝고 활기차면서도, 노래도 잘 불러서 상당히 좋은 사람으로서 인식되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하는 라이브 방송에서 짧게 메들리처럼 즉석에서 노래를 불러주는 걸 보았다.(한 소절 챌린지라 부르는 듯하다.) 다양한 노래를, 즉석에서 부르지만 너무나도 편안하게 들렸다. 거기에 개인 라이브 방송이라는 특성상, 1대 1 전화통화에서 노래를 불러주는 듯한 느낌도 들게 해주는 영상이었다.

오늘은 저게 떠올라서 엔믹스 오해원의 한 소절 챌린지 모음을 틀어두고 있었다. 해당 영상은 '또 오해원'이란 유튜브 채널에서 올린 거였다. 해당 채널은 팬 채널이다. 한 아이돌 그룹의 팬 채널이 이렇게 크고 많은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게 신기한 채널이다. 그러다 문득, 아이돌의 팬이 되고, 아이돌에 빠져드는 건 뭘까 생각이 들었다.


아이돌(Idol)은 원래는 우상 이란 의미다. 다만, 지금은 10대, 20대 되는 젊은 남자나 여자로 이루어진 가수를 말하는 듯하다. 국립국어원은 주로 일정한 팬층을 지닌 젊은 가수라고 한다. 난 어떤 연예인이나, 아이돌의 팬이 되어 본 적 없다. 애초에 노래 앨범을 사본 적도 없다. 내게 아이돌은 보이지도 닿지도 않는 다른 곳에 사는 사람일 뿐이다. 단지, 가끔 방송 미디어에 등장해서 이쁘고 멋진 모습이나, 좋은 춤과 노래, 재미있는 장면을 보여 줄 뿐. 그러나 그들의 팬은 그들을 그렇게 다루지 않을 거다. 내가 느끼기에는 팬들은 그들을 우상화한다. 아이돌이란 말의 정의처럼. 팬들은 그들을 실제로 마주하면 울기도 하고, 기쁨을 넘어서 환희에 차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돌의 앨범을 다수 사들이고, 그들의 포토카드를 여러 개 사서 모은다.


언젠가 르세라핌의 팬인 친구의 집에 간 적 있다. 그때 그 친구가 앨범이나, 포토카드랑 다른 굿즈들을 보여주었는데, 그들의 사진을 크게 찍어서 모아둔 앨범 같은 것도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친구는 미디어에서 보이는 팬들보다는 얕은 팬이었다. 적어도 팬사인회는 안 찾아가는 친구였으니까. 그때 그 앨범이랑 포토 카드를 보여주는데, 내가 그걸 집어서 보려고 하자,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느껴졌었다. 내가 그 사진, 굿즈를 너무 일상 물건처럼 다루어서 그랬다. 물론 남의 물건이니까, 조심히 다뤘다. 그러나 그 정도는 남의 책을 읽을 때 정도의 조심이었을 거다. 그 친구는 만지는 것도 조심스럽게 만졌다. 테두리를 아주 조금만 조심스럽게 만지고 페이지를 넘겼다. 구겨지거나 때가 타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는 행동들이었다. 난 그런 물건을 가져 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행동해 본 적이 없어서 아마도 그 친구한테는 부족했나 보다.

다른 친구는 아이유 팬이었다. 아이유 팬 친구는 굿즈를 사서 모으는 친구는 아니었는데, 앨범은 샀었고 아이유의 콘서트를 가는 걸 좋아해서 항상 시도하고 성공하면, 그 일종의 환희를 채워오곤 했었다.

이런 경험들이 갑자기 문득 떠오르면서 다른 세상에 사는, 다소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을 우상화해서 애정하는 건 무엇일까. 내가 이해하지 못한 그 감정들이 궁금해졌다. 물론 지금도 난 그런 감정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난 누군가의 팬이 아니니까.

극단적이어서 문제 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아이돌 팬들은 일방향적 애정이라 생각이 든다. 물론, 아이돌, 연예인 분들도 자신들의 팬을 사랑하고 그에 대한 역조공을 하기는 하지만, 1대 절대다수의 관계이기 때문에 그런 행위가 팬들 개인개인에게 올곧이 도달하지는 못할 거다. 그래서 난 팬들의 애정은 아이돌들이 애정을 돌려줄 거라는 기대 없이 하는 사랑. 일종의 순수한, 순진한 감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팬들은 아이돌을 사랑하면서 그들과 자신이 엮이길 바라는 게 아니니까. 내가 일상에서 하는 사랑과는 다르다. 내 일상의 사랑은 양방향 소통을 요구하곤 하니까. 오히려 솔직히 말하면, 난 날 사랑해 주는 사람을 좋아하곤 했다.(내가 사랑하는 사람 vs 나를 사랑하는 사람 중에 선택하면 난 후자를 선택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내 사랑은 상대방과 엮이고 싶어서 하는 불순한 사랑이었나 싶기도 하다. 그에 비하면 아이돌 팬이 하는 사랑은 엮이지 않아도 되고, 그들이 자신 개인의 존재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해도 보내는 매우 순수한 감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는 일상의 사랑보다도 진하고 깊다. 팬들은 아이돌을 마주하기만 해도 울고, 환희하는 강렬한 감정이니까.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그들이 가진 폭풍우 같은 순수한 감정이, 부러워진다. 그들은 터져 나오는 감정에 몸을 맡기고, 몰두하고 빠져들면서 그 안에서 기쁨을 찾고 만족하면서, 다시금 일상을 살아가기 위한 힘을 얻어갈 것이다. 그런 감정이 원동력이 돼서, '또 오해원'이란 채널을 만들 수 있던 게 아닐까.


의욕이 적고, 행동력이 없으며, 눈물을 흘리고 싶어 하고, 몰아치는 감정을 겪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나로선 그런 그들이 질투 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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