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 씨가 남긴 글을 보며 한 생각-
오래전부터 봐온 영화 리뷰 유튜버가 있습니다. 씻으면서 영상을 틀어두곤 하는데, ‘대홍수’라는 넷플릭스 영화에 대한 리뷰였습니다. 해당 영상은 그 영화에 대해서 꽤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대홍수’란 영화는 보지 않았고 볼 생각도 딱히 없어서, 별 생각 없이 이야기를 들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그냥 지나간 아침이었는데, 점심을 먹으면서 다시 유튜브를 켜보니 이번엔 그 유튜버가 게시글을 올렸습니다. 그의 의견에 반대하는 의견을 지닌 사람에게 비난을 들었던지, 약간의 분노, 약간의 성토를 곁들인 글이었습니다. 정확히 어떤 의견을 보고 반박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때도 난 그냥 글이니까, 읽었을 뿐입니다. (잘 쓴 글이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댓글을 확인해보니, 허지웅 평론가에 대한 언급이 있었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찾아봤습니다. 7문단에 걸쳐서 써진 허지웅 평론가의 글이었습니다. 허지웅 평론가의 책 ‘살고 싶다는 농담’을 읽었던 적이 있고, 그가 함부로 의견을 개진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해왔기에 천천히 읽어봤습니다. (다 읽고 보니, 정작 그 유튜버의 글은 허지웅 평론가의 글과는 상관없어 보입니다. 댓글 다시는 분이 양쪽 글을 읽어보지 않으신 듯합니다.)
허지웅 평론가님의 글은 그가 가진 특유의 글 솜씨 덕에 조금은 가려져 있을 지 모르지만, 꽤 분노가 느껴졌습니다. 화가 많이 나신 듯 감정적인 표현과 격한 표현이 포함된 채 쓰여있어서 사람들의 반감도 많이 사고 있었습니다. 그는 영화 ‘대홍수’ 가 많은 사람에게 비난을 받는 이 현상에 대해 언급하면서 자신이 언젠가부터 영화 평론을 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글에서 관심을 확 가지게 된 문단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대홍수>가 그렇게까지 매도되어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자기 도파민을 시기적절한 시점에 치솟게 만들지 못하는 콘텐츠를 저주합니다. 더불어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워 이야기가 조목조목 싫다고 세상 구석구석 외치고 싶은 사람들이 논리를 갖추는 광경을 저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허지웅
대체로 공감합니다. 물론 저는 ‘대홍수’를 보지 않아 그 작품이 어느 정도 매도 받아야 마땅한지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어떤 콘텐츠도 저토록 일방적으로 매도되어야 마땅한 작품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정치적 선동물이나 도덕적 해이, 선량한 풍속과 사회질서에 명백히 반하는 반사회적 콘텐츠 같은 극단적 예외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최근 영화와 드라마에 대해 사람들, 특히 미디어와 인터넷에서 과도하게 비난하는 광경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런 비난 가운데는 잘못된 사실을 근거로 한 경우도 있어 저는 그러한 비난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이 현상을 보다 보면 그들의 의견이 진정 자기 것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남들이 욕하니까 자신도 그저 따라 비난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살면서 사소한 실수와 잘못을 저지릅니다. 저 또한 많은 실수를 했을 것이고 여러 거짓을 말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사소한 잘못을 용서받으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이나 가까운 이가 아닌 이들에게는 철저한 선과 엄격한 정의를 요구하는 듯 보입니다. 마치 자신들이 완전무결한 심판관이라도 된 양, 그래서는 안 된다고 규탄하며 높은 기준의 도덕적 행동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어긋났다고 판단하면 너는 욕을 먹어 마땅하다는 듯 비난을 퍼붓습니다.
우리 형법은 저지른 죄만큼만 처벌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만큼의 비판받아야 합니다. 또한 발생할 수 있는 실수에 대해서는 너그럽게 이해하고 넘어갈 여지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명인에게는 그 관용이 잘 적용되지 않는 듯 보아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때로는 그들 사이의 사안임에도 제삼자가 전혀 관계없음에도 불구하고 간섭하며 비난하는 경우도 목격합니다. (예를 들면 친한 사이에서 격 없이 쓰이는 과격한 표현을 두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간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대홍수’라는 영화가 아주 못 만들어졌다고 해서 그걸 본 사람들이 영화와 감독을 마치 매장하듯 저주를 퍼부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허지웅 씨는 바로 그런 식으로 과도하게 비난하고 저주하는 사람들을 꼬집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이 너무 많다는 인상 때문에 화가 잔뜩 나신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설령 그 영화가 아주 형편없어 2시간이 통째로 허비된 것처럼 느껴졌더라도, 그저 2시간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넘어가도 되는 것 아닐까요. 때로 누군가 의견을 묻는다면, “못 만든 영화라서 나는 싫다”라고 담백하게 말해주면 되는 일입니다.
사실은, “싫다고 세상 구석구석 외치고 싶은 사람들이 논리를 갖추는 광경을 저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한 문장이 계기가 되어 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평소 저는 소설이나 영화를 본 뒤에 제 감상과 판단을 조용히 정리해 둡니다. 산책하며 생각을 곱씹습니다. 좋은 것은 왜 좋은지, 싫은 것은 왜 싫은지를 하나하나 따져봅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이유를 다듬은 뒤에야 다른 이들의 의견을 찾아 듣습니다. 타인의 견해를 제 생각에 대입해 보다가 수긍할 때도 있고, 아닌데,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합니다. 동의하지 않는 것도 있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가끔 제가 진심으로 아낀 작품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사람 마음이 다 다르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작품을 향한 부정적 시선은 기분이 좋진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왜 그렇게 느끼는지, 어떤 지점 때문에 반감을 갖는지 궁금해집니다. 문제는 그 부정적 의견들이 대개 이유를 동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비난을 퍼붓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왜 비난하지 않느냐며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요즘 영화 리뷰하는 유튜버들이 자주 겪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좋은 말은 굳이 이유를 붙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영화나 소설을 좋게 느꼈을 때는 그저 좋다고 말하고 덮어둬도 됩니다. 그 말로 인해 상처받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유 없이 좋을 때도 있고,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체험 자체가 좋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긍정적 감상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것은 불쾌함을 만들지 않으니 허용되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쁜 말은 다릅니다.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적어도 그 불만을 공개적으로 털어놓을 때는 그 이유를 함께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한 줄 평이나 유튜브 댓글조차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 문장이라도 좋으니 본인이 왜 별로라고 느끼는지 이유를 덧붙여주면, 저 같은 이도 ‘그래서 그렇구나’ 하고 납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유를 달아 말할 때 그 발언은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건설적인 비판이 됩니다. 허지웅 평론가가 말했듯, ‘싫다’고 외칠 때도 논리를 갖추라는 요구는 바로 그 점을 가리킵니다. 비난이 아니라, 비판을 말합니다.
또한 저에게도 불쾌하거나 싫은 영화나 소설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이유를 붙잡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나는 왜 저것을 싫어할까, 무엇 때문에 기분이 상하는 걸까. 그렇게 곱씹어보면 의외로 이유가 뚜렷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유 없이 미운 감정도 존재한다지만, 그 대상이 단지 콘텐츠일 때는 그 감정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이유 없이 특정 영화를 미워해 봐야 결국 손해는 저에게 돌아오고, 실체가 없는 그 혐오감은 힘을 잃고 사라집니다. 결국 싫지 않게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부정적 의견을 내는 이들도 한 번쯤 자신이 왜 그것을 싫어하는지 스스로 물어보았으면 합니다. 의외로 이유가 흐릿한 경우가 있을 테니까요.
반면, 싫은 이유를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있을 때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좋고 싫음은 본래 감성의 영역입니다. 다만 그 이유를 찾아 논리를 세우는 행위는 철저히 이성의 영역입니다. 스스로 어떤 영화를 싫어하는 이유를 이성적으로 정리하면, 그 싫음은 감성이 아니라 이성의 영역으로 옮겨갑니다. 그러면 의견을 표출할 때도 어조가 차분해지고, 비난이 아닌 비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 느끼는 불쾌감도 한결 누그러집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부정적 의견을 표명할 때는 적어도 그 의견에 이유와 논리를 덧붙여주었으면 합니다. 그 의견을 듣는 다른 이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