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영화 얼굴

연상호 감독의 작품

by 무명

살아있는 기적이라 불리는 시각 장애인 전각 장인 임영규의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는 도중에, 같이 공방을 운영하는 아들 임동환에게 경찰에게서 전화가 온다. 40년 전 집을 나갔다고 들었던 어머니 정영희의 백골 시체가 발견되었다. 사진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장례를 치르는 도중, 갑자기 찾아온 어머니의 친척으로부터 어머니의 얼굴이 못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다큐멘터리 PD 김수진은 이에 흥미를 가지고 동환과 함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파헤친다.

일단 꽤 좋은 영화이면서, 재미있는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롭게 이야기가 진행되고 비밀이 서서히 밝혀지는 구조는 관객에게 긴장감 있게 몰입할 수 있게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정영희가 과거 겪은 사건들과 밝혀지는 비밀. 이를 인터뷰로 전해 듣는 임동환과 김수진 PD를 통해서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구성은 꽤 흥미롭습니다. 이야기가 서서히 밝혀지는 방식도 첫 번째 인터뷰, 두 번째 인터뷰, 클로징 멘트로 구분 지으면서, 정영희의 주변 인물들을 찾아가 인터뷰하는 형식도 긴장감을 부여합니다.

전 소설, 영화 등 이야기를 접하면 인물들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해석하는 편입니다. 인물이 사건을 일으키고, 인물이 사건을 겪는 게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정영희의 얼굴이 못생겼다는 주변 인물들의 반복된 말로 인해서, 동환과 수진의 관심을 강하게 끌어들이고, 이는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영화의 주된 주제가 외모, 외형 이로 인한 아름다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하지만, 저는 외모, 아름다움은 소재였다고 생각합니다. 직접적인 주제는 인간이 느끼는 모멸감이라 생각합니다. 모멸감, 멸시 이런 주제의 중심에 존재하는 인물은 임영규와 정영희입니다. 정영희는 못생겼다는 이유로 많은 멸시를 당하며 생활하는 걸로 나옵니다. 그저 못생겼다는 이유로, 추하다는 이유로 단지 그 이유만으로 무시당합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문득 어떤 영상이 생각나기를 이쁜 여성이 인터뷰에서 말하길, 세상이 자신에게 친절하다는 느낌을 아느냐고 묻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로 박보검이 비행기 타자 승무원들이 먹을거리를 챙겨주며 선물을 주는 장면이 방송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외면적 아름다움은 세상의 호의 속에서 편하게 살아갑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일 입니다. 그저 못생겼다는 이유로 세상이 적대적인 경우, 무엇 하나 해보려 해도 도움을 주지 않고 무시하면서, 괴롭히는 삶은 얼마나 어려운 역경 속에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40년 전 과거에서 세상이 무시해서 모멸감을 느낀 인물은 정영희와 임영규입니다. 이 두 인물 다 모멸감을 느끼는 삶을 살았지만, 다른 결정을 내립니다. 정영희는 이미 말했듯 못생겼다는 이유로 가족들도 무시하고 찾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의 무시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임영규는 선천적 시각장애로 인해서 어릴 때부터 놀림을 받았습니다. 어른이 되고서도 장애로 인해 전각을 배우는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임영규가 행동에 옮긴 이유도, 주변 사람들의 놀림을 생각하면서 느끼는 그 모멸감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합니다. 거기에 추가로 이진숙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성폭행 피해 사실을 알린 정영희의 뺨을 때린 이유도, 피해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서 느끼는 모멸감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결국 영화 속 사건이 진행되는 큰 동기는 사람들이 느끼는 모멸감입니다.

하지만, 모멸감은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감정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업신여겨지고 깔보이는 느낌, 다른 이에게 굴욕스럽고 무시당하는 감정입니다. 이는 세상을 구성하는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감정이고, 못생겼다는 것과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걸로 인해 그들은 업신여겨졌습니다.

임영규는 그렇게 놀림 받던 자신의 처지 극복하기 위해서, 전각을 배우고 나름 세상에 최선을 다해서 살고, 살아있는 기적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고 자부하죠. 조그맣게라도 동네에 자리를 잡은 순간부터는 사람들의 동정은 받을지 언정, 모멸감은 극복했다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던 그가, 정영희와 결혼하고 나서 오랜 친구로부터 정영희가 못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놀린 것이라 여기며 다시금 모멸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영희는 다릅니다. 영희는 어렸을 적부터 가족과 친척으로부터 못생겼다는 이유로 무시당했습니다. 부정한 일을 말을 해도, 부정한 일을 한 사람이 비난받는 게 아니라 그 일을 알린 자신이 욕먹었습니다. 집을 나가도 찾아주지 않았습니다. 성인이 되고 스스로 일하기 시작한 뒤로도 여전히 사람들은 무시했습니다. 그게 영규와의 차이입니다. 그러다 우연히 영규를 알게 되고, 자신에게 따스하게 대해주는 것에 감동을 하고는 힘을 얻습니다. 청풍 피복의 사장이 재봉사 한명을 성폭행한 사실을 영희가 알게 되면서, 사장과 싸우기 시작하면서 영규와 영희는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합니다. 이에 대해서 영희는 따스하게 말 건네준 영규 덕분에 힘을 얻어서 자신이 싸울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똥걸레라는 별명이 생겨난 사건을 보면, 영희는 화장실 가는 권리조차도 주장하지 못했습니다. 사장은커녕 그 아랫사람한테도 대들지 못해서 그저 바지에 지릴 정도로 세상에 맞설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즉, 그녀는 그저 단 한명의 지지만으로도 세상에 맞설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얻은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임영규는 대부분 사람의 인정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모멸감을 극복했다고 여겼던 시기가 있기 때문인지, 영희의 그런 행동으로 인해 자신마저도 위태로워지는 느낌을 받고, 사장으로부터 모욕적인 대우를 받는 것에 예민해지고 그러자 오히려 영희를 비난하고 탓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결국은 영희를 죽입니다. 이에 대해서 현재에 와서 영규는 당당하게 주장합니다. 아들 동환에게 너는 이해해야 한다고. 자신은 살아있는 기적이라고. 스스로 극복해낸 거라고. 그렇게 주장합니다. 영희를 죽임으로써 세상의 모멸감을 극복했고, 영희를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는 데 성공했다고 발악하듯이 주장합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한명이 아니라, 세상 자체에 대한 인정을 갈구하는 인물입니다.

영희는 끊임없는 무시를 당했고 한 명의 온기에 힘을 얻어 부정에 맞섰지만 영규는 스스로 극복하리라 여기고 부정에 순응하고 한 명의 온기를 죽였습니다. 여기서 다른 관점을 보일 수 있습니다. 재봉사 언니 진숙입니다. 청풍 피복 사장으로부터 강간당한 인물입니다. 어느 날 울고 있는 진숙을 영희는 발견하고, 진숙은 영희에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아마도, 모멸과 멸시 속에 사는 영희와 비슷한 처지가 됐다는 일종의 동질감 때문에, 벽이 허물어진 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영희가 사장에게 대들고 강간범이라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는 건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 일로 피해자를 수소문하게 되고 진숙이 그 강간 피해자라는 사실이 알려집니다. 진숙도 모멸감을 느끼게 되고 영희를 때리며 탓하게 됩니다. 거기에 현실적인 문제도 포함 엮여있을 겁니다. 사장에게 대드는 건 생계에 문제가 생길테니까요. 어쩌면 정영희만이 이상하리만치 겁이 없던 겁니다.

현재로 돌아오면 임동환과 김수진 PD가 있습니다. 40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은 보통 한 세대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이 사건을 조금씩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됩니다. 어떻게 반응하고 받아들일까요?

먼저 임동환입니다. 아들인 동환은 아버지 임영규의 전각 장인이란 명예에 기대어 살고 있습니다. 똥걸레라는 둥, 얼굴이 너무 추하다는 둥 하는 어머니에 대한 비하가 듣기엔 불편합니다. 다만, 그렇다고 화가 폭발하지는 않습니다. 본 적이 없고 날 버리고 도망간 어머니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사장에게 대드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강간 피해자 이진숙 씨는 죄책감을 느끼고 죄송해합니다. 같이 듣는 PD는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동환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음으로 사장을 만납니다. 그리고 사장에게서 살인자가 아버지란 사실을 듣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화가 납니다. 분노합니다. 노쇠한 사장에게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가 PD의 카메라를 빼앗아 가져갑니다. 그리곤 아버지께 진실을 듣습니다. 아버지의 발악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 하고 아버지께 일종의 혐오를 느낍니다. 그렇지만, 카메라 녹화본을 편집하고 PD에게 돌려줍니다.

무엇을 편집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아버지가 살인마라는 사장의 증언을 편집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PD인 김수진도 그렇게 생각하고 비난과 혐오의 시선과 말을 동환에게 하고는 자리를 뜨는 듯합니다. 동환은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요. 동환은 아버지가 명성이 필요합니다. 생계를 위해서죠. 스스로 돈을 벌고 살아갈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영규는 그래서 너만은 이해해야 한다고 날 닮은 너만은 이해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한 듯 보입니다. 아버지가 혐오스럽고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생계를 위해서 아버지의 명성을 지키려고 선택합니다. 이 선택은 이진숙이 했던 선택과 유사하게도 보입니다. 생계를 위해서, 그리고 모멸감 때문에 영희를 때리는 선택. 한 세대가 흘렀는데도 세상은 크게 변한 게 없습니다.

김수진 PD는 어떨까요. 프로듀서는 처음엔 살아있는 기적, 시각장애인 전각 장인을 취재하러 왔습니다. 그저 평범하게 일을 할 뿐이죠. 그러다가 동환 어머니의 부고와 그 비밀을 파헤치는 게 더 재미있는 일이라 생각하죠. 남일이니까. 화제가 될 거 같으니까. 취재합니다. 이진숙을 만나고 나서는 눈물을 흘리고 사장을 당장 찾아가자고 말합니다. 동환의 분노에 대해서 이렇게 일을 해결해선 안 된다고 합니다. 동환이 카메라를 돌려줄 때는 당신도 아버지와 똑같다며 비난하고 자리를 뜹니다. 이 인물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거 같기도 합니다.

저는 김수진 PD도 정의로운 인물 같지는 않습니다. 남의 치부를 들춰내는 일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저 흥미 본위로 접근할 뿐입니다. 사장을 만나고 동환이 자리를 뜨고, 그녀는 영희의 사진을 얻어옵니다. 아마도 수진은 임영규를 고발하는 다큐로 방향을 잡을 듯이 보였습니다. 여기서 저는 의문이 생깁니다. 살인을 안 임영규가 나쁜 인간이라 고발해야겠다는 생각은 들 법도 하지만, 다만 그 증언을 한 사람이 백주상 사장입니다. PD는 임영규의 자백 인터뷰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임영규는 절대로 김수진한테는 그 사실을 자백하지 않을 겁니다. 백주상 사장의 현재 집안에는 나체의 여성 사진들이 수십장이 걸려있었고, 평생에 걸쳐 성폭행, 성추행 범죄를 끊임없이 해온 증거들입니다. 그런 집안에서, 그런 백주상이 사실 정영희를 죽인 건 내가 아니고, 임영규라는 그 증언을 왜 그렇게 쉽게 믿을까. 김수진 PD 입장에서는 그 증언이 미덥지 않아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거기에 정의를 따지더라도, 임영규보다도 백주상이 훨씬 질 나쁜 범죄자 같아 보입니다. 그러니 임영규가 아니라, 백주상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더 정의로운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김수진은 그렇게 하지 않을 듯 보입니다. 이유는 나오지 않지만, 임영규가 더 유명한 인물이라서 더 화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수진은 동환에게 비난할 만한 자격이 있는 인물인가. 조금 의문이 듭니다.

영화는 시각장애인과 추녀의 이야기를 통해서, 모멸감이 가지는 힘에 관해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게 당시의 시대적 배경, 생계와 직결되는 현실적 상황에 맞물리면서 부도덕한 일들이 벌어질 수밖에 없던 그 고통에 대해 표현합니다.

영화의 중간에 영희는 선한 행동을 하는 악한 사람은 어떤 인간인가요? 하는 질문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분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한 의도로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과, 선하지 않은 의도로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 악한 의도로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

영화 속 백주상은 악한 의도로 악한 행동을 일삼은 사람이라 분류가 의미 없을 순 있습니다만, 강간 사건 이전에 사람들은 도움을 받았으니 선한 행동을 한 사람이었던 순간이 있기는 할 겁니다. 아무튼, 사람의 마음, 본심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외부로 표현된 행동을 근거 삼아 사람을 판단해야만 하니, 그 의도가 선하지 않더라도 행위가 선하다면, 그 자체로도 어느 정도의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여깁니다. 물론 의도도 선한 것이 분명하게 느껴지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는 사람도 세상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으로 여기고, 자신은 복잡하게 선한 사람으로 여기지만, 사실 인간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다.” 그렇습니다. 사실 진정으로 선인이라고 여길만한 사람이 세상엔 얼마나 될까 생각하면, 그리 많진 않아 보입니다. 대개 자신의 사회적 평판을 위해서, 생계, 명예를 위해서 혹은 베풀면 나중에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기대하면서 선을 행합니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나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듣지 못하면 대체로 서운하고 섭섭하고 때론 다신 안 도와준다며 화가 나기도 하는 게 평범한 인간이니까요. 그래서 선한 행동을 하는 악인이 있더라도, 선한 행동은 선한 행동으로 평가되고 악한 행동은 또 악한 행동으로써 평가되어야 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이런 질문은 인간의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의 구분으로도 연결 지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영화의 큰 주제, 인간이 가지는 모멸감으로 연관됩니다. 모멸감이란 건 정신적 고통입니다. 육체적으로 몇 대 맞고, 성폭행 피해 자체보다도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멸시당하는 모멸감. 그게 더 인간에게 중요한 문제인 겁니다. 성범죄는 육체적으로 성적 행위를 당했다는 것도 심각하지만, 한 인간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 핍박받고 무시당했다는 그 정신적 고통이 더 중한 문제라는 겁니다. 이진숙이 영희로 인해 피해 사실이 알려진 게 수치스러워 영희를 배신했듯. 영규가 사람들에게 놀림 받는 게 싫어서 영희를 우발적으로 죽였듯이.

결국 영화는 여러 층위의 주제를 짧은 이야기 속에 전부 담고 있어서 상당히 짜임새 있는 시나리오이며 수작이라고 평합니다. 40년 전 경제 부흥기의 시대상, 생계의 위협, 자기 평판, 모멸감, 외모에 대한 편견, 정신적 고통, 본심과 그 행동에 따른 가치 판단. 그리고 한 세대가 변할 정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인간 사회는 더 나아졌는가? 그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영희와 영규한테 대하는 태도를 보면, 시각 장애보다도 못생긴 외모가 더 심각한 멸시를 당하는 듯 보입니다. 과연 외모라는 게, 아름다움(혹은 추함)이런 게 그 정도의 중요한 문제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는 듯합니다.


PS. 영화에 보면 영희의 손글씨가 종종 나오는데, 볼 때마다 감탄했습니다. 글씨가 너무 이쁩니다. 세상 심각한 추녀의 글씨가 이렇게나 이쁘게 나오다니 참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영희의 사진을 통해서 얼굴이 나옵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평생을 멸시당하며 살 정도의 심각한 추녀라는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불륜, 유보, 설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