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유보, 설득

[감상] 단순한 열정 - 아니 에르노

by 무명

언젠가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예민한 문제들이 상당히 많다. 특히, 사회문제에서는 첨예한 의견 대립이 생기거나, 상대방의 생각과 감각을 이해하지 못하고 배척하게 되는 논쟁적 주제들이 있다.

예를 들면, 여성주의에 관한 문제들을 들 수 있겠다. 가부장적 시대에 대한 논지라든지, 낙태죄라던지 하는 등의 문제나 소수자들이나 전장연 시위 같은 문제들이 있겠다.

이런 소재들은 지인들과 대화에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기가 꺼려질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의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그리고 타인이 다른 의견을 개진할 때, 들을 자신은 있다. 다만, 반대로 내 의견을 개진하면서 목소리가 높아지지 않고 설득할 자신은 없다. 난 겁이 많다. 그래서 예민한 주제를 건드리거나 논쟁에 참여할 용기가 없다. 혼자서 자리에 앉은 채 곰곰이 생각해서 나만의 의견을 형성해두기는 했지만, 단지 그뿐이다.


이런 때에, 아니 에르노의 소설, 단순한 열정을 읽었다. 67쪽에 불과한 짧은 소설. 그마저도 여백이 많아, 더 짧은 소설이다. 오토픽션으로 알려진 이 소설의 논쟁이 되는 부분은, 여성인 화자가 기혼자 남성과 불륜 행위를 하면서 느끼는 생각과 감정을 아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는 부분이다. 문학 교수였던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겪지 않은 건 글로 쓰지 않는다는 말로도 유명하여, 이 소설 속 인물이 한 불륜이 아니 에르노 자신의 이야기라는 점과 그 과정에서 나오는 생각들이 적나라함을 넘어서, 때로는 천박한가 싶은 정도의 행동을 한다는 건. 논쟁적인 소설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 소설은 사랑의 감정을 너무 진솔하게 묘사해 두면서, 화자가 남자를 떠올리며 자위한다던가, 포르노를 찾아본다거나, 남자가 자신과의 성관계를 떠올리고 있을지를 상상한다던가. 하는 그런 성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둔 건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는 금기와도 같은 욕망을 표현해 두었다. 사실 성적 욕구는 인간이라면 대부분은 가진 아주 평범한 요소임에도, 우리는 그것의 언급을 피한다. 거기에 심지어는 대상이 불륜 상대라니.

이 소설은 어렵지 않다. 직설적으로 감정과 생각을 시간 흐름에 따라 그저 여성의 입장에서 적혀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다만, 읽다 보니 묘한 느낌이 든다. 너무나 직설적이라서 오히려 덜 천박해 보인다. 거기에 자신의 감정에만 집중하면서 쓰여있는 그 글은 너무나 무던한 문체로, 합리화하지 않으면서 그저 기록하듯 적혀있었다. (사랑하는 감정이 분출되는 묘사들은 많지만)

다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화자가 저지르고 있는 불륜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게 된다. 그녀는 분명 큰 질타를 받을 만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남자를 집안에 들이고, 섹스하고 온종일 그 남자만을 생각한다. 아이들에게도 자신의 불륜 사실을 알려둔다. 그런데도 난 왜 그녀의 잘못을 질타하는 게 아니라, 그저 성적 욕망과 감정적 욕구에만 집중해서 이 책을 읽은 걸까.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예민한 문제들을 다루는 그녀의 기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1991년에 발표된 소설임에도 이런 적나라한 소설이라니, 당시에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이 소설은 결국은 타인은 전혀 건드리지 않은 채, 자신의 이야기만을 아주 객관적인 시선으로 묘사하고, 너무나 무던한 문체를 통해서 자신의 개인적인 열정임에도, 이를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으로 확장시켜 읽히게끔 돼 있다.

전혀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자기 방어도 전혀 하지 않는다. 거기에 진솔하고 객관적인 태도는 일견 우아하게도 느껴진다. 거기에 아니 에르노라는 작가가 가진 문학계에서의 입지까지 고려되면서, 불륜이라는 행위의 도덕적 판단이 유보되는 듯하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책 속의 불륜은 꽤 오래전에 있던 일이라고 한다. 그저 기록해 두었다가, 아무도 남자를 눈치채지 못할 만큼의 시간이 흐르고, 이 일을 오랜 시간 묵혀두었다가 글로써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 에르노도 이 이야기가 논쟁적이고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고르고 고른 표현들과 방식으로 문제를 감싸 안고, 발표의 시기까지도 고려하지 않았을까.


많은 예민한 문제들을 다루는 책들이 있고, 예민한 주장을 하는 시위, 운동들이 사회엔 많다. 뉴스 기사에도 그런 이야기들이 많다. 페미니즘 운동도 래디컬 페미니즘이란 이름이 붙은 운동도 많았다. 전장연 지하철 시위도 공격적인 시위였다. 그런 시위나 주장들은 상당히 공격적이라서, 그런 시위들에 불만을 드러내는 사람도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들 주장의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과도한 공격성은 역효과가 나지 않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맞는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니 에르노의 방식은 우아하게 통했다.

질타받을 만한 부분의 판단은 유보시키고, 하고 싶은 말은 뚜렷하면서 진솔하고 정확하게 한다. 그렇게 설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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