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one battle after another

비꼼

by 무명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보고 왔습니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기본적으로 재밌었습니다. 이야기 전개가 어렵지 않고 상황 이해가 쉬워서 복잡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배우들의 연기와 긴장감을 부여하는 연출은 즐겁게 보기에 충분했습니다. 즐겁고 재미로서 즉, 상업영화로서 이 영화를 접해도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디카프리오(밥 퍼거슨)가 암구호를 까먹어서 발생하는 일련의 답답한 상황도 재미있고, 마지막에 카체이싱 장면에서 윌라 퍼거슨과 밥 퍼거슨이 만나기 직전까지 부여되는 텐션은 상당했다. 쫄깃하게 긴장되어 영화를 보면서 직접 몸을 움츠릴 정도로.


영화를 보고 나면, 밖에서 산책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곤 합니다. 동시에 다른 사람은 어떻게 영화를 봤는지 찾아보곤 합니다. 유튜브에서 크리에이터가 만든 리뷰를 보기도 하고, 블로그, 브런치 글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여러 군데에서 다른 이의 감상을 보면서 같이 제 생각을 정리합니다. 어떤 의견엔 동의하기도 하고, 하지 않기도 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관점이나 부분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거기에 저만의 생각을 덧대서 정리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상당한 호평을 받았고 여러 평론가나 크리에이터도 높은 평점을 부여하는 영화입니다. 누군가는 인생 영화라고 평할 정도로 좋아하고 길게 글과 댓글을 남겨가며 열변을 토하는 것도 많이 봤습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고 의미 부여도 많이 되는 걸 보았습니다만, 지금 전 이것보단 반대급부를 말해볼까 합니다.

좋은 호평들이 상당수 있는 것과 함께, 몇몇 부정적 의견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들은 길게 말하지는 않고 간단하게 과대평가 되었다고 의견을 개진하더군요. 이에 관해서 이야기하려 합니다.


솔직하게, 영화가 끝이 난 뒤에 가장 먼저 머릿속에 남은 생각은 ‘그래서 뭔 말이 하고 싶은 거지?’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든 생각은 ‘인물들이 어째서 저렇게 되지?’ 였고요. 독특한 이야기들 속에서 남은 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입니다.

소설, 시나리오 혹은 영화 같은 이야기를 접하거나 만들려고 할 때마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약간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창작자가 인물을 창작할 때, 창조된 캐릭터가 현실의 개연성을 너무 따르면 해당 이야기가 뻔하고 평범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평범한 우리 같은 인물의 사고방식, 행동과 비슷한 캐릭터가 존재하는 이야기는 때론 심심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비범한 인물, 특이한 인물을 만들고 평범하지 않게 행동하게끔 하죠. 그렇게 하면 이야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이하고 흥미진진한 흐름을 띄게 되죠. 다만, 그렇게 해서 너무 과하게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인물을 만들게 되면, 보는 사람은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쉽게 말해 개연성이 떨어지는 반응을 보이는 캐릭터로 인해서, 감상자는 ‘저게 말이 되냐?’ 하면서 다소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창작자는 중도를 잘 설정해야 할 겁니다.

중도를 지키는 방법은 여럿이 있겠지만, 독특한 인물은 한명이나 두 명, 소수 인원으로 설정하고 다른 인물은 평이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개인적 생각으론 전부 비상합니다. 독특하고 평범하지 못한 인물들로만 구성되었고, 보통 사람인 저는 영화 속 등장인물의 행동이 종종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극단적 진보주의자 단체인 프렌치 75의 일원들이나, 극 보수단체이자 우생학적 우월주의자 단체인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 같은 이들의 행동뿐만 말하는 게 아닙니다. 록쇼란 인물은 백인 우월주의 단체에 속하려 하지만, 흑인 여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낍니다. 총으로 위협받으면서도 발기하는 영화의 첫 부분부터 이미 평범한 우린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마지막에 다다라서 윌라 퍼거슨을 구해주는 아반티의 행동도 다소 뜬금없다 느껴집니다. 물론, 어린애는 죽이고 싶지 않은 듯한 행동을 보이긴 합니다만, 이미 전달해서 다 넘겨줘 놓고 뒤늦게 구해주는 선택도 뒤늦습니다. 거기에 살리고자 한다면, 아이를 먼저 풀어주고 은 엄폐해가면서 싸우는 방식으로 다소 평범하게 싸울 수도 있음에도 당당하게 문 열고 들어가서 소위 맞다이 뜨다가 같이 죽는 것도 왜 저러지 싶었습니다. 아반티란 인물이 가진 신념에 대해 나온 묘사가 거의 없어서, 행위의 이유를 맘대로 추측해야 할 뿐이었죠.

윌라 퍼거슨은 평범한 여자아이일 뿐입니다. 과거 부모님의 행동은 몰랐고 갓난아이일 때, 아버지가 같이 도망 와서 기억도 없습니다. 그런 아이가 당한 상황은 사실 상당히 겁날 텐데도 당당합니다. 쉽게 적응하죠. 역시 비범합니다.

또한, 동료를 갖다 팔았던 퍼피디아가 딸에게 사랑한다고 하고 혁명을 이어달라 말하는 편지도 말도 안돼 보입니다. 일단, 그녀는 모성애라곤 임신하고 있을 때부터 없던 인물이니까요. 그런 인물이 16년간 얼굴도 안 비쳤으면서 갑자기 사랑한다는 편지를 보냈답니다. 다른 의도가 있는 건가 생각도 듭니다. 그런 편지를 보더니 딸인 윌라 퍼거슨이 시위를 나가며, 이어받는 것도 뜬금없어 보입니다. 거기에 퍼피디아가 가졌던 혁명의 신념도 가볍고 나약하면서, 굳이 이어달라는 편지도 씁니다. 이 결말 때문에 더욱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도 같습니다.

다양한 상황 설정과 그 속의 인물이 행동이 전부 비범하고 특이해서, 다소 개연성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과 행동이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은 사람들은 이 영화가 왜 그렇게까지 고평가받는지 공감되지 않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여러 면이 이해할 수 없으니, 여러 사람이 내리는 고평가가 과대평가로 받아들여져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인물들이 이해되지 않으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라도 명확하게 직관적이면 참 좋을 텐데 솔직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영화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면 한 문장으로 요약하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많은 사람이 각기 다른 해석과 주제 의식을 느끼고 가질 거 같습니다.

결국 상업영화의 외피를 가지면서도, 예술영화로서 가지는 복잡한 은유와 주제를 함께 함유한 어려운 영화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누군가는 이해할 수 없는 영화로 저평가하고 다른 이는 상업영화로서 재미있고 또 어떤 이는 그 복잡한 은유를 분석해가면서 즐거워하는 듯합니다.

솔직히 저는 이 영화가 가진 은유나 주제를 깊고 길게 말하기엔 개인적 관심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가볍게 이야기해봅시다.

가장 큰 주제는 전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비꼼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미국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습니다만 사람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고 이에 미디어가 이용되면서 극단적 상황이 점점 더 악화일로에 치닫고 있습니다. 미국 영화니까. 미국의 상황으로 보자면 트럼프가 나타나서 백인우월주의자스러운 말을 하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서로 전쟁이라 말할 정도로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 속에서 이 영화가 개봉된 건 시의성이 있습니다. 양극단을 모두 비꼬고 비난하는 영화입니다.

퍼피디아 베버리힐스로 대표되는 극단적 진보 폭력주의자 집단인 프렌치 75는 강력한 신념하에 이민자를 풀어주며 자유와 혁명을 외치는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 폭탄 테러하는 등 폭력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죠. 대의를 위해 폭력이 합리화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도 남지만, 그에 앞서 퍼피디아가 흑인 경비병을 죽이게 되는 것과, 붙잡힌 이후 쉽게 동료를 팔아버리는 행동들은 그들의 신념이 사실은 나약하기 그지없음을 보여줍니다. 굳건한 신념을 가진 것처럼 스스로를 포장하여 합리화하고 있었을 뿐, 가볍기 그지없던 테러리스트에 불과하다는 거죠. 강한 신념을 지닌 척하는 극단주의자를 비난합니다.

보수주의자들에 대한 비난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직접적이고 직관적입니다.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은 살인은 우습고, 비리의 온상이며, 우월주의에 빠져있고, 거만하기 그지없는 단체로 나오니까요. 거기에 딱히 카리스마나 위엄이 있게 연출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이 들어 기력도 다 떨어져 가는 노인 구성원도 있습니다. 그냥 비난하고 있습니다.

프렌치 75의 주장들도 별 영양가는 없어 보입니다. 혁명이라 이름 붙이고 부르짖고 있지만 사실 그들이 하는 행위는 테러 행위일 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공공기관 좀 폭파할 뿐이죠. 거기에 퍼피디아가 살인을 저지르는 장소, 마지막 범죄 장소는 은행입니다. 돈을 정상적으로 벌지 않으니, 일단 돈을 털어야 했죠. 활동 자금을 위해 습격한 거로 합리화하겠지만, 결국 이건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은행강도일 뿐입니다. 그들의 얕은 신념을 인식하고 나면, 그들이 얼굴을 숨기지 않고 다니는 모습 또한, 그저 총을 들고 위협하면서 얻어지는 우월한 권력에 심취한 건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듭니다. 마치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이 스스로 우월하다고 여기듯이 말입니다.

여기에 센세라 불리는 세르히오란 인물(베니시오 델 토로)이 꽤 길게 분량을 가지고 있는 건 어떤 함의가 있어 보입니다. 가라데? 사범이나 원장에 불과해 보이던 인물이 사실은 상당수의 이민자를 숨겨주고 도와주며 탈출시켜주는 활동가로 나옵니다. 밥 퍼거슨도 여러 차례 도와주죠. 거기에 어떤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는 비영리 활동가입니다. 폭력도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집안에 이민자들에게 일일이 인사하고 챙겨주는 모습과 그들을 통솔하는 리더십은 가히 따뜻한 영웅으로 느껴집니다. 그에게선 어떤 우월적 인식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말없이 행동으로만 옮길 뿐입니다. 이 인물은 위에서 말했던 극단주의자들의 행태와는 대비됩니다. 그렇게 영화는 더욱 극단주의자들이 비난받게끔 만듭니다.

우리나라도 정치가 극단적으로 분열되어 가고 있는 듯합니다. 과거의 한 10년 전만 해도 뉴스에서 ‘협치’란 말이 자주 등장했던 거 같은데, 요새는 그런 말이 안 보입니다.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싸우기만 할 게 아니라, 각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걸 주장하고, 양보해가면서 타협해가면서 나아가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너희가 원하는 게 하나 인정할 테니, 우리가 원하는 거 하나 정도 해달라고 하면서. 타협하고 수정해가면서 외교와 정책이 구성돼야 하는데. 요즘 세상은 네가 죽던, 내가 죽던 끝까지 가보자. 그렇게 이긴 사람이 다 가져가는, 일종의 승자 독식의 갈등 상황 같아서 불안합니다.

이런 때에,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양쪽을 모두 돌려 까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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