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스토너 - 존 윌리엄스
알라딘 우주리뷰나 이동진 평론가의 추천 같은 곳에서 인생 책이라 불리는 걸 자주 봤고, 결국 읽게 된 소설 ‘스토너’다. 출간된 지 50년이 된 오래된 작품이지만 뒤늦게 입소문을 타더니 이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까지 퍼져버렸다.
이 책은 윌리엄 스토너라는 인물의 삶을 시간 순서대로 따라가는 소설이다. 스토너의 시점으로만 이야기가 전개되며, 그의 인생에만 초점이 맞춰진다. 기본적으로 스토너라는 인물을 관찰하는 태도로 서술되지만, 그의 내면과 생각 또한 드문드문 드러난다. 다만 모든 생각이 다 설명되지는 않아, 그의 태도와 행동을 통해 이해해야 할 부분이 많다. 설명되지 않은 틈을 독자가 각자의 해석으로 채워 넣으며 이야기를 읽게 되고, 그렇게 우리는 스토너의 삶에 빠져들어 몰입하게 된다.
책의 말미에 이르면, 스토너 스스로도 관조하듯 말하듯 이 소설은 실패의 이야기다. 우정도, 결혼도, 사랑도, 육아도, 교육자로서도, 학자로서도 실패했다는 그의 고백처럼, 인생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농사를 짓던 스토너는 부모의 권유로 농업기술을 배우러 대학에 갔다가, 우연히 들은 영문학 강의에 감명받아 진로를 완전히 바꿔 영문학자가 된다. 교육자가 되어야 한다는 교수의 말에 따라 교수가 된 그는 그곳에서 강의하며 평생을 보낸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 말하듯, 그는 정교수로 승진하지도 못했고 그를 기억하는 학생도 없다. 사람이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그는 그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 그래서 스토너는 자기 삶을 실패작이라 관조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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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이야기 - 결혼
스토너는 결혼에 실패한다. 이디스란 여인을 처음 보고 마음에 들어 말을 건 뒤, 접근해서 빠르게 결혼한다. 이디스는 다소 이상하다. 소설 내내 이상한 행동을 반복한다. 불편하고 스토너를 싫어하는 태도를 보인다. 개인적으론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기적인 군상을 보이고 스토너를 핍박하고 괴롭히는 행동을 보이는 게 읽는 나도 불편했다. 처음엔 의문이 너무 컸다. 결혼하자마자 대화도 안 통하고 이기적이며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낼 거라면 왜 결혼한 거지? 그냥 처음에 만남을 거절하거나, 결혼을 거절하면 되는 거 아니었나. 왜 그녀는 결혼에 동의해놓고도 그렇게 불친절하게 구는 걸까. 이 의문이 머릿속에 가득했었다. 그런데도 계속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철저히 스토너의 시선에서만 서술되고 있다. 스토너는 회피형 인간처럼 보인다. 처음에 세계대전이 발생했을 때, 다들 참전하기 위해 열정을 불태웠지만 스토너만 꿋꿋하게 거절하곤 학교에 남아 공부했다. 이디스와의 결혼 생활도, 그녀의 이상행동에 대해서 스토너는 직접적으로 묻고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 그저 관찰하고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할 뿐이다. 그래서 그녀의 이상행동이 독자인 내게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녀만의 또 다른 사정이 있지 않을까. 결혼한 이유도 1930~40년대쯤 되니까. 다른 문화, 관습적 이유로 거절할 수 없던 걸까.
소설은 스토너의 인생을 바라보는 거니까. 스토너에게 실패의 경험을 부여하는 요소로 기능한 거라고도 생각하기로 했다. 결국 이디스와의 결혼 생활은 상당히 실패했다. 그들은 서로 대화도 잘 나누지 않게 되고 이디스의 괴롭힘으로 스토너는 집에서 자신의 서재가 창고로 밀려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이디스는 딸 그레이스와의 관계도 방해하고, 그레이스의 삶도 괴롭히기 시작해서 결국 스토너로 하여금 딸도 빼앗는다. 스토너의 딸도 삶이 외로워지고 고통스러워지며 그 결과 성인이 되고 얼마 안 가 임신하고 집을 벗어나는 선택을 한다.
결혼의 실패는 스토너로 하여금 육아의 실패로도 이어진다.
실패의 이야기 - 교육자
로맥스와 스토너는 한 대학원생 문제로 갈라선다. 스토너 세미나에 온 그 학생은 공격적이고 비판적이며 언뜻 불성실해 보였다. 세미나에서 불쾌와 불성실을 느낀 스토너는 그에게 낙제를 줬고, 그의 지도교수인 로맥스와 사이가 틀어진다. 이후 로맥스가 학과장이 되자 노골적으로 스토너를 핍박해 승진을 막고 1학년 강의만 맡기며 업무를 불편하게 만든다. 이 악연은 끝내 해결되지 않는다.
실패의 이야기 - 사랑
스토너는 세미나에서 만난 여성 대학원생과 사랑에 빠진다. 불륜이지만, 결혼에서 누리지 못한 사랑과 연인의 애정을 얻는다. 서로 사랑하는 행복을 비로소 깨닫는다. 그녀와의 관계는 자연스럽고 만족스럽고, 일상에도 여유가 생긴다. 이디스와의 관계도 다소 완화된다. 그러나 불륜은 오래갈 수 없다. 로맥스와의 반목이 계속되는 가운데 소문이 퍼지면 문제가 커질 것이 분명했다. 결국 영원을 믿던 사랑은 끝을 맺지 못하고 끝나고, 스토너는 초췌하게 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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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생의 실패
이러한 스토너의 실패들은 그의 삶 전반에 걸쳐 반복되며, 그 순간에 끝나지 않고 평생 그를 따라다니며 발목을 잡는다. 결혼은 곧 육아의 실패로 이어졌고, 로맥스와의 반목은 사랑의 실패를 불러올 뿐 아니라 이후 그가 교육자로 살아가는 길까지 가로막는다. 꼬리표처럼 붙어 떨어지지 않은 채 그의 삶을 지연시키고 훼손한다.
사람들은 스토너의 삶을 실패한 인생이라 여기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의 삶을 인내로 점철된 생애라 평한다.
하지만 나는 스토너의 삶이 오히려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평범보다 더 나은 삶일지도 모른다. 흔히 말하는 중상류층의 삶에 가까운 면도 있다. 스토너는 자기 삶이 실패작처럼 보일지 모른다고 관조하고, 실제로 다수의 실패를 겪지만, 사실 우리의 삶 또한 실패로 촘촘히 엮여 있지 않은가. 그는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았을 뿐이고, 우리의 삶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독자가 자기 삶을 그에게 투사하며 공감하고 감동하는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스토너는 많은 것을 인내한다. 이디스의 괴롭힘, 로맥스의 핍박을 묵묵히 견딘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한 번쯤 맞서보는 편이 어땠을까 싶다. 특히 이디스가 딸을 자신에게서 떼어놓으려 할 때만큼은 그저 받아들여선 안 됐다. 이디스의 괴롭힘은 대화의 여지가 있었고, 로맥스와도 협상할 수 있었으며, 세미나에 왔던 로맥스의 제자와의 충돌도 더 논리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니 냉정히 말해 스토너는 그리 현명하거나 영리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투어야 할 때는 피했고, 다투지 않아도 될 때는 맞섰다. 어긋난 대응이 그의 실패를 한층 더 부풀려 놓았다.
이런 어리석음이 처음엔 답답하고 짜증스럽게 다가왔지만, 읽을수록 생각이 바뀌었다. 그게 바로 인간이다. 그게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다. 본디 인간이란 어리석기 마련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스토너는 끝내 평범한 사람이었다.
스토너의 삶을 실패라 부른다면, 대부분 사람들의 삶도 실패가 되고 만다. 우리 모두 어딘가 한 부분은 실패하기 마련이니까. 그도 그랬듯이.
그래서 나는 그의 삶을 실패라 부르고 싶지 않다. 적어도 그는 교수가 되었고 테뉴어를 받았으며, 평생 그곳에서 교육자로 살아갈 수 있었다. 적어도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딸은 그를 사랑했고, 학장인 친구도 있었다. 알아주는 이가 드물었어도 책을 집필해 세상에 남겼다. 이 정도면 할 일을 다 한 것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암과 싸우며 정신이 흐릿해진 채 인생을 되짚어볼 때, 그를 찾아와주는 딸과 친구가 있었고, 곁에 두고 볼 수 있는 자신의 책이 있었다. 그는 많은 것을 남겼다.
인생에 무엇을 기대했는가? 그가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다. 동시에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
당신은 당신의 인생에 무엇을 기대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