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된 신념, 경직된 사상, 분열된 사회. 그리고 풍자.
부고니아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감상을 남기기 전에 일단 한가지. 언제나 영화와 소설에 대해 글을 적을 때마다, 보고 읽은 사람을 독자로 생각하고 씁니다. 그래서 스포일러를 신경 쓰지 않고, 내용을 말하는 데 제약을 두지 않습니다. 해당 책과 영화를 추천하기 위해서 보단, 같이 보고 읽은 사람으로서 의견을 공유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번 글에도 부고니아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 영화, ‘지구를 지켜라’의 리메이크 작품이라 합니다. 원작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서, 이번 영화 ‘부고니아’의 내용을 모른 채로 봤습니다. 영화에 포함된 반전도 전혀 몰랐고 놀랐습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어떤 동떨어진 곳에 사는 두 남자가 있습니다. 지능이 조금 모자란 ‘돈’과 음모론 신봉자인 ‘테디’입니다. 테디는 자신의 음모론을 돈에게 세뇌하면서 어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합니다. 테디의 주장은 ‘미셸’이라는 제약 회사의 여성 CEO가 지구를 멸망시키려 하며, 이는 그녀가 외계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를 납치하고 외계인임을 밝히며 자신들을 우주에 있을 모선으로 데려가게 만들고 외계인과 협상해서 지구를 지키겠다는 겁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테디의 음모론을 신봉하는 태도와 외계인이 아니라고 아무리 미셸이 이야기해도 듣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일종의 동정을 느꼈습니다. 우리의 현실에도 존재하는 다양한 음모론자들이나, 대화가 통하지 않는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강건하지만 그릇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 평평론자들이나 인류의 달 탐사가 거짓이라는 음모론, 아니면 극단적인 사상을 지닌 래디컬 사상주의자, 극우와 같은 극단적 주장을 펼치는 정치병자 또는 사이비 신도, 안아키 이런 사람들 말입니다.
그런 인물들을 보면서 전 항상 답답함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대화가 진전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건 의미 없습니다. 그들의 사상은 믿음의 요소이지, 근거와 논리에 기반한 주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장을 반박하고 현실을 알려주는 건 그저, 그들의 세상을 깨부수는 행위에 불과하고, 그 결과 그들은 강한 반발을 보이며 때론 폭력적인 언사를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다다르기 전까진 테디의 모습은 이들과 같습니다. 유명한 거대 제약기업의 CEO가 외계인이라는 주장을 하고, 미셸이 이를 아무리 부정하고 대화를 나눠보자고 설득하더라도, 결코 통하지 않습니다. 그의 머릿속에선 이미 그녀는 외계인이며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전 미셸의 입장에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음모론에 전혀 동의가 되지 않았거든요. 근거를 명확하게 설명하지도 않고, 그들의 행동은 다소 모자라 보일 뿐입니다. 역시나 미셸의 입장에서 그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어서 답답했고 동시에 슬픈 동정의 감정이 들었습니다.
영화 속, 보안관과의 대화나 테디와 돈의 대화, 테디의 회상, 미셸과의 대화를 통해서 쉽게 암시되는 테디의 삶은 고통에 가득 차 보입니다. 보안관은 베이비 시터로서 테디에게 나쁜 짓을 했던 거 같고, 어머니는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테디의 삶은 부조리하며 괴롭힘으로 가득했던 거로 보입니다. 그는 삶을, 그리고 세상을 원망하며 비난하고 비관했던 거로 보입니다. 그런 때에 미디어나 책에서 접한 음모론은 그로 하여금 현실을 외면하고 도망칠 수 있던 피난처가 되었던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러고 나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꽉 닫혀있고, 자신들의 비루한 현실은 본인들의 잘못이 아니어야만 하거든요.
미셸이 하필이면, 테디가 일하는 공장의 대표인 점과 실제로 미셸의 회사가 테디의 어머니에게 어떤 과오를 저질러서 그에 대해 보상을 했었다는 부분은 그가 미셸을 외계인이라 여긴 것과 연관 있어 보였습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그들의 대화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꽤 긴장감 있고 서스펜스가 있습니다. 어떻게든 미셸은 대화로서 테디와 돈을 설득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테디는 절대 넘어가지 않죠. 그런 모습은 테디가 어딘가 정신병적인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 사람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상황은 닭살 돋게 만듭니다. 미셸이 대화를 시도할 때마다, 테디는 점차 공격적인, 폭력적인 언사를 합니다. 거기에 어느 순간 돈에게 총기를 쥐게 하는 것으로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는 긴장감을 더욱 예리하게 만듭니다. 정신병을 앓는 이들은 행동의 변화가 극단적이고 충동적이기에, 예측하기 어려워서 테디의 반응도 관객으로서는 예측할 수가 없고 그래서 더욱 긴장의 끈을 부여잡게 되는 듯합니다.
테디가 갑자기, 미셸에게 황제셨군요. 하는 장면이나 돈이 자기 머리를 쏘는 장면은 갑자기 벌어지면서 상황이 급변하게 되고 이야기의 흐름을 한순간에 바꿉니다. 예상 불가한 이야기의 흐름은 제겐 상당한 재미이자 두근거림이었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부동액이 어머니의 해독제라는 미셸의 말에 속아, 신나서 자전거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테디의 모습은 너무나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열심히 현실을 외면했지만, 어머니를 살릴 수도 있다는 일말의 희망에 다시 현실로 돌아와 버렸고, 관객인 저는 그게 거짓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손으로 어머니를 죽인 테디는 또다시 현실의 진실로부터 회피하기 위해, 미셸이 말하는 외계 모선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그릇된 음모론을 다시 믿습니다. 결국 미셸과 함께 회사로 가게 되고, 계산기로 코드를 보내고 옷장에 들어가면 전송되어 외계로 갈 수 있다는 미셸의 말까지도 믿으며 결국엔 스스로 만들었던 사제 폭탄이 터져버리면서 죽게 되는 테디는 끝까지 비루한 현실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나는 듯싶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구급차에 실려 가던 미셸이 깨어나더니, 내려서 다시 회사로 돌아갑니다. 그 옷장으로 들어가죠. 그리곤 외계 모선으로 전송됩니다.
?
테디가 말했던 음모론, 미셸의 머리카락이 위치를 추적한다던가, 외계 모선의 생김새, 그녀가 인류를 멸망케 하려 한다던가, 그녀가 외계인이며 심지어 황제라는 등의 모든 음모론이 진짜였습니다. 마지막에 계산기에 코드를 입력하고, 옷장으로 외계 모선에 갈 수 있다는 말도 다 사실이었습니다. 영화의 중간중간에 나오던, 챕터를 넘길 때 나온 평평한 지구의 모습도 진짜였습니다. 영화 속 지구는 평평합니다. 미셸이 말한 인류 종을 만들었다든가 하는 말들이 다 사실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인간의 자기 파괴적인 본성을 고치려 했던 실험들도 사실이었습니다.
참, 반전입니다.
테디는 그릇된 신념이 아니었네요. 진실을 파악하고 있는 인류의 유일한 인간이었습니다.
진실과 거짓이 뒤엉켜있고 관객으로 하여금,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 어렵게 만들어 두었습니다. 대체 그 누가, 테디가 말하는 게 사실이라 믿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어리석어 보이고 모자라 보이며, 정신병도 있어 보이며, 후줄근하고 비루한 차림새의 그가 하는 말이 진실이라 생각할까요. 어쩌면 관객인 저의 그런 편견과 편향을 의도적으로 비꼰 거 같기도 합니다. 쉽게 진실을 확신하지 말라는 경고 같기도 합니다. 물론 테디 같은 태도도 문제 있습니다. 아무리 그게 진실이라 하더라도, 그의 방식은 폭력적이고 현명하진 못합니다.
영화의 결론이, 해석이 모호해졌습니다. 전 분명 후반기까지도, 그릇된 신념을 가지게 된 어리석고 불쌍한 테디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진실을 회피해야만 하는 사람들, 너무나 괴롭고 고통스러워서 도망쳐야만 했던 사람들에게 동정과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영화. 동시에 그들의 어리석음과 그렇게 내몰리게 만든 사회를 조롱하고 풍자하는 영화. 그런 영화였는데, 그릇된 신념이 애초에 아니었네요? (부고니아란 영화의 제목부터 그릇된 신념을 은유하고 있습니다.)
관객인 제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미셸은 평평한 지구를 둘러싼 공기 방울? 같은 걸 터트리고, 지구에 있는 인간만 다 죽습니다. 결국 인류 종이 가지는 자기 파괴적 본성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벌 CCD (군집 붕괴 장애)가 지구 멸망의 징조라는 주장을 테디가 합니다. 양봉업자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군집이 무너지고 있다. 문득, 군집이 무너진다. 군집에 해체되고 흩어진다는 이 말이, 우리의 현실을 꼬집는 거 같았습니다. 미디어가 생겨나고, 아주 소수의 극단적 사상을 지닌 자가 인터넷에 게시되는 의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은 언제나 사람들 간의 분열을 부추기는 듯한 의견을 게시합니다. 공격적이고 혐오적인 글을 쓰죠. 남녀, 좌우, 세대, 지역 갈등도 조장합니다. 이런 문제 아니어도, 단순히 어떤 스포츠나, 연예인에게도 비난을 퍼붓거나 사실을 미묘하게 곡해해서, 가짜 정보를 퍼뜨리는 이들도 있죠. 가짜 뉴스는 사회적 문제가 된 지도 꽤 됐습니다. 댓글 조작도 드러난 적도 있죠. 이런 사회 문제들은 제가 보기엔, 전부 갈등을 조장하는 겁니다.
인류는 사회를 형성하면서 단체가 되었고, 서로 협력이 가능하기에 자연에서 최강의 포식자가 되었습니다. 그게 없다면, 자연에서 호랑이의 피식자를 벗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만들어진 사회는, 점차 비대해지고 방대해지면서 지금과 같은 거대한 도시, 국가의 단위에서 세계란 수준까지 커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오히려, 다시 분열시켜서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죠. 국가 간의 경쟁은 심해졌고, 제국주의란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정치적 사상의 좌우는 서로 물어뜯기 바쁘고, 세대 갈등과 남녀 갈등도 서로를 설득하고 이해하기보단 비난합니다.
CCD가 지구 멸망의 징조라는 그 말은, 군집이 흩어지면 멸망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마치 지금 현대 사회의 분열 양상을 비유하고, 결국 인류가 쌓아 올린 사회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다는 은유로 들렸습니다. 영화에 과하게 의미 부여하는 거 같기도 하지만, 문득 든 생각입니다. 영화는 인류라는 종이 가진 자기 파괴적 본능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결론 내려 버렸거든요.
반전이 드러나기 전과 후에 느낀 제 두 감상 모두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원작을 모른 채로 봐서 순전히 즐길 수 있던, 재미있는 영화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