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 생과 사가 뒤섞인 혼곤함
1948년, 일제가 물러난 지 얼마되지 않은 시간. 육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거대한 비극이 제주에서 일어났다. 수만의 민간인이 학살되고, 수많은 무고한 사람이 범죄자로 낙인찍혀, 길게는 20년 넘게 징역에 넘겨졌다.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고, 생존자들은 생사를 알 수 없는 가족을 평생 그리워하고 갈구했다. 70년도 더 지난 지금, 아직도 제주 4.3 사건의 무고한 피해자들의 무죄를 판결해주기 위한 재심이 열리고 있다. 우리의 역사는 다난했지만, 그럼에도 제주 4.3은 그 규모가 남다르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이 가지는 비극을 증언의 형식으로 전개해서, 그때의 기억을 현재로 잇는다.
제주 4.3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이 소설을 통해서 가깝게 접했고, 자세한 이야기를 찾아봤다. 이렇게도 거대하고 비극적인 사건이 그 규모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는 제주도라는 고립된 공간과 1948년이라는 혼잡한 시간선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 결과, 제주 4.3 사건은 그 전개와 진행이 흐릿하고 모호하다. 이런 부분을 한강은 소설 속에 녹여냈다.
소설의 주된 배경은 제주도에 있는 인선의 외딴 집이다. 폭설이 내리는 제주도, 인선의 집은 단전, 단수된다. 가는 길은 험난하고 버스도 없다. 경하가 인선의 집에 도달했을 때, 집은 인선이 사고난 순간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흘러내린 피의 흔적이 남아있고, 아마는 미동도 없이 쓰러져있었다. 이 집에 올 사람은 현재 아무도 없다. 고립된 그곳에서 경하가 겪는 일들은 누구도 목격하지 못하리라. 제주 4.3 사건의 비극이 극대화되고도 잘 알려지지 못한 것처럼.
소설은 시점도 계속 변주한다. 경하의 현재, 그들의 과거, 피해자들의 증언 등이 번갈아가며 제시한다. 거기에 증언은 끔찍하여 괴롭다. 잔인하고 고통스런 내용이 같이 곁들여지면서, 읽는 독자는 혼곤해진다.
경하는 죽은 앵무새가 다시 날아오는 걸 본다. 육지에 있을 인선이 나타난다. 자연스럽게 나타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료를 보여준다. 인선이 죽은 건지, 오히려 경하가 죽은 건 아닌지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생과 사가 뒤섞여있다.
살아난 앵무새나 인선의 존재는 마치, 과거의 흔적이 아닐까. 죽은 존재들도 과거엔 살아있었다. 경하는 살아있는 시간대의 앵무새를 본 건 아닐까. 인선도 마찬가지 일지 모른다. 인선이 설명하는 어머니의 기억, 자료들. 인선이 만든 영화 속 피해자의 증언도 과거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결국 소설 속 경하는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목격한 것이다.
공간은 단절되었고, 시간도 일정하지 않다. 마구 왜곡된 시공간 속에서 경하는 죽음과 삶을 마주하고 역사적 트라우마를 목도한다. 이런 시공간적 특징은 실제 제주 4.3사건을 은유하는 듯하다. 고립된 섬을 은유하고, 1948년이란 먼 과거의 일이,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의 상태임을 은유한다. 과거의 일이라 단순히 치부할 수 없고, 그들이 겪은 불명예와 제주도에 남은 상흔은 여전하다. 제주 4.3 사건은 현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