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1] 영화 위키드

-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

by 무명


영화 위키드 1편을 작년에 보면서 했던 생각은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는 선하지 않다였다. 그리고 올해 개봉한 2편까지 합쳐서 하나의 이야기로서 영화 위키드는 위선이 선이 되어가는 과정을 이야기였다. 누군가는 이 영화가 서쪽 마녀와 동쪽 마녀의 우정이 주된 이야기라고도 한다. 물론 그것도 맞다. 그들 사이에 만들어지는 우정이, 위선이 선으로 변모할 수 있게 도와줬다고 생각한다. 다만, 다른 이들이 남겨놓은 여러 의견 중에 동의하지 않는 것들이 있어서, 그것들에 대해 논하는 걸로 글을 써보려 한다.



O1. 엘파바와 글린다 사이의 우정이 깊게 형성된 게 이해되지 않는다. 우정이 만들어지는 서사가 빈약하다.



위키드 1편을 보고 나서 아는 지인이 했던 말이다. 둘의 우정이 이야기의 소재이자 주제인데, 우정이 형성되는 과정이 빈약하다는 것. 그래서 그들이 깊은 우정을 가진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있다는 게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그런 이야기다.

이 의견에 대해 내 생각은 간단하다. 난 그들이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2편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그제야 우정이 깊어졌다고 생각한다. 2편 마지막에 다다라서 글린다가 그제야, 엘파바에게 너에 대한 세상의 오해를 말하겠다고 한다. 난 그때 되어서야 그들이 친구가 되었다고, 우정이 깊어진 거라 생각한다. 즉 영화는 1편과 2편의 이야기 전체를 걸쳐서 우정이 만들어지는 이야기이며, 그들의 관계에 의해서, 그들이 변화하는 이야기이다.

이러면 다시 내게 되물을 거다. 1편의 후반부에 보면, 분명히 엘파바와 글린다는 에메랄드 시티에 같이 가고 defying gravity를 부르고 하는 장면들은 그들이 이미 친구가 되었다고 여겨지지 않느냐고. 거기서 난 의견을 달리한다. 그리고 여기서 이 영화의 주제인 선악의 모호성, 그리고 위선이라는 주제가 점차 드러나기 시작한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살아오는 삶이 다르다.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도 다르다. 성격도 다르고, 그러니 같은 상황에 대한 이해도 다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르게 여기고 있다.

먼저 글린다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보자. 글린다는 어린 시절부터 이쁨받고 사랑받았다. 세상의 관심이 전부 본인에게 집중되어야 하는 사람이다. 나르시시즘의 대표적 캐릭터다. 학교에 입학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인과도 같은 친구들이 항상 따라다니고 기숙사 방도 특별 취급받아야 하며, 학교 모든 사람이 본인을 사랑하고 좋아해야 한다. 글린다의 행동 양식은 명확하다.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짓된 삶을 살아도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본심이 아닌 말도 쉽게 쉽게 한다. 이런 요소는 2편에서는 내내 나온다. 착한 마녀는 가짜의 삶 자체이며 프로파간다에 종속된 삶이지만, 모든 오즈민의 연예인이다. 그래서 쉽게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즐긴다. (버블 이동 수단이나 지팡이 받을 때 보면, 마법 쓸 줄 모르지만 쓸 줄 아는 척하는 것도 즐긴다) 마지막엔 글린다 스스로도 인정한다. (마담 모리블이 그녀를 갈린다라고 부르면서 쏘아붙인 뒤, 부르는 노래의 가사를 보면 나온다) 이 장면을 기점으로 글린다 자신의 위선을 인정하고 엘파바라를 찾아간다.

그런 그녀의 위선적 태도는 1편에서 이미 알 수 있다. 기억나는 장면들로는 보크가 자신을 찾아오자, 네사 로즈를 가리키며 그녀와 같이 파티에 오라고 하는 장면, 갈린다가 스스로 이름을 글린다로 바꾸겠다고 선언하는 장면, 엘파바를 처음 마주했을 때 하는 말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보크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대놓고 거절하기보단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얼버무린다. (이 행동은 2부에서 보크와 네사 로즈 사이의 거대한 갈등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이름을 바꿀 때 보면 염소 교수님 닥터 딜라몬드를 기리면서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저 피예르의 관심을 끌기 위함인 걸로 묘사된다. (피예르가 엘파바에게 대놓고 관심을 표하고 있었기 때문에) 엘파바를 처음 마주했을 때는 초록 피부를 고쳐주겠다고 말한다. 어떤 동정, 적선, 연민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그 직후에 자기 방에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엘파바를 학교에서 왕따 시켜버리는 게 글린다였다. 이런 모든 장면이 글린다가 얼마나 위선적인지 드러낸다.

그런 그녀의 태도를 기반해서 그들의 관계를 다시 살펴보자. 엘파바를 왕따시키고 괴롭히던 주동자가 글린다다. 피예르가 엘파바를 좋아한다는 것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다. 그녀가 엘파바를 친구로서 좋아할까? 엘파바가 마법의 재능을 지닌 것도 질투 난다. 단지, 엘파바가 마담 모리블의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해준 것 말고는 없다. 글린다는 엘파바말고도 주변의 친구들이 많다. 거의 모든 학교의 사람들을 친구로서 여긴다. 그마저도 친구가 아니라 하인처럼 여기는 걸로 보이진 않는가? 글린다는 엘파바도 그런 정도의 친구로 여겼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2편에서도 나오는 모습이지만, 글린다는 자기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진실이나 진심은 중요하지 않다. 다소 거짓 돼도 상관하지 않는다. 피예르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결혼식을 강행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이 글린다다. 왜냐면 자기가 피예르를 가지고 싶으니까.

글린다는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 있다. 마법을 쓰는 것. 그러나 재능은 없었다. 마담 모리블의 흥미를 끌지 못한 것만이 글린다가 학교에서 얻어내지 못한 부분이었다. 이를 채워준 사람이 있으니, 그게 엘파바다. 만약 엘파바와의 사이가 틀어진다면, 글린다는 모리블로부터 수업을 들을 수 없다. 엘파바만이 마법과의 연결을 유지해주는 유일한 끈이다. 그러니, 그녀와의 반목을 유지할 수 없다. 친구로서 지내는 게 이득이다.

이게 글린다의 입장이다. 그러니, 촌스러운 모자를 엘파바에게 버렸을 뿐인데 고맙다며 모리블에게 자신을 소개해주고 수업을 들을 수 있게 연을 이어주고 있는 엘파바를 평범한 친구1 정도로 주변에 두는 게 좋았을 것이다. 친구가 되어가는 서사가 부족한게 이상하지 않다. 부족한 만큼 그냥 평범한 동급생 정도의 관계다.



물론 엘파바의 입장은 조금 다를 수 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어린 시절도 동네 아이들의 괴롭힘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차별받고 살고 있으며, 학교에서도 따돌림당하고 있다. 심지어 자신이 잘 돌봐준 동생도 자신에게 큰 관심이나 고마움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그런 상황에서 아마도 살면서 처음으로 자신에게 선물 준 인물이 있으니, 그게 글린다 였다. (물론 글린다는 촌스러운 모자를 버린 거지만, 그런 속사정은 엘파바는 전혀 몰랐다) 그러면서 동시에 글린다로부터 초대도 받았으니, 글린다의 위선이었을지라도 처음으로 받은 호의였기에, 엘파바는 고마웠고 자신이 가진 게 마담 모리블 뿐이어서, 그걸 소개해주었다. 그랬더니 글린다의 태도가 확실히 호의적으로 된다. 글린다의 입장과는 달리, 엘파바는 학교에서 처음을 얻은 친구다. 그 친구가 아무리 평범한 친구1의 관계라고 할지라도, 엘파바의 입장에서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유일무이한 단 하나뿐인 친구니까. 깊은 우정이 아니어도, 그게 깊은지 아닌지 엘파바는 알 수 없다. 경험이 없으니까. 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없으니까. 자신에게 생긴 삶에서 처음으로 얻은 친구가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엘파바 입장에선 글린다가 소중한 친구였을 수 있다. 그러니 에메랄드 시티에 같이 가자는 제안도 하고, 1편 마지막에 자신을 따라오지 말라고 말하기도 한다. 글린다가 피해받지 않기를 위해준다.



다시 반대로, 글린다는 1편의 마지막에 계속 엘파바를 설득한다. 돌아오라고. 그 상황에서 엘파바보고 돌아오라고 하는 그 말이, 과연 엘파바를 위한 걸까? 마담 모리블이 자신에게 제안했던 걸 얻기 위해서 설득할 뿐인 거로 보는 게 맞다. 즉, 글린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엘파바에게 돌아오라고 하는 거다. 이런 글린다의 태도는 2부에서 이어진다. 피예르는 엘파바에 대한 세상의 오해를 바로잡거나, 엘파바의 찾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지만 글린다는 아니라고 한다. 이후에 엘파바가 만나러 왔을 때도 보자마자 말한다. 타협하라고, 협상하는 게 어떠냐고. 글린다는 여전히, 오즈의 마법사나 마담 모리블 쪽이 아니라, 엘파바쪽을 설득한다. 이는 현재 자신이 착한 동쪽 마녀로서 가지고 있는 세간의 위상이 좋으니까. 그걸 잃고 싶지 않으니까. 현재의 체제를 전복시키고 싶지 않으니까. 거기에 순응하고자, 그걸 뒤집을 힘이 있는 서쪽 마녀 엘파바를 설득하는 거다.



결국, 글린다는 엘파바를 진정한 친구로서 여기고 있지 않았다. (애초에 그렇게 여기는 친구가 없을 거 같기도 하다) 그게 내 생각이다. 엘파바는 처음부터 선한 마음씨를 지닌 인물이지만, 글린다는 그렇지 않다. 타인을 속이고 자신의 겉모습을 꾸며대며 살아가는 데 있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친구를 하인처럼 대하기도 하고, 엘파바를 왕따 시키기도 하며, 염소 교수님인 닥터 딜라몬드를 조롱하기도 한다. 결코 글린다는 선하지 않다.



O2. 인물들이 급발진하는 경우가 많다. 네사 로즈의 급발진, 보크의 급발진, 엘파바와 피예르의 급발진 등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다.



다음 글은 이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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