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들의 급발진에 대해
O2. 인물들이 급발진하는 경우가 많다. 네사 로즈의 급발진, 보크의 급발진, 엘파바와 피예르의 급발진 등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다.
영화에 급발진이 있다는 점은 동의한다. 1편에서는 천천히 서사를 쌓고 이야기를 전개했지만 2편에 오면서 시간도 빠르게 흐르고 이야기 전개도 빠르다. 그 과정에서 몇몇 부분들이 분명히 갑작스럽다고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1편에서부터 이어진 캐릭터의 서사가 설득력을 나름대로 만들어주고 있음에도, 급작스럽다고 생각하는 관객이 있어서, 내 나름대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나도 쟤 왜 저래? 하고 급발진한다고 여겼던 캐릭터가 있는데, 그게 바로 네사 로즈 즉 엘파바의 동생이다. 그녀는 오랜만에 돌아온 엘파바를 과하다 싶게 원망하고 있었고, 그래서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거기에 보크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서 집착되고 더 나아가, 강제로 권력을 이용해서 도망가지 못하게 막는다. 거기에 보크가 진심을 고백하자. 분노하더니 심장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마법을 외워버리기까지 해서 너무 뒤가 없이 안하무인처럼 격하게 행동한다.
네사 로즈의 행동은 다소 심하다. 이 급발진을 옹호하고 싶진 않다. 너무하다 싶어질 정도로 이기적이고, 과하게 행동해서 이해되지 않고 눈이 찌푸려진다. 다만, 한가지 영화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면이 있다. 네사 로즈는 1편에서부터 사실 계속 그런 이기적인 인물이었다. 즉, 영화는 1편에서 2편에 오기까지 적어도, 네사 로즈의 캐릭터에 일관적이었다.
1편에서 엘파바는 동생을 돌보는 역할을 자처한다. 학교에 입학하는 것도 아닌데, 휠체어를 끌어주며 나타나고 아버지도 엘파바를 무시하면서도 동생을 맡기는 듯이 보인다. 길게 서사를 다루진 않았지만, 엘파바가 어렸을 때부터 동생을 보살펴왔을 것이라고 보이는 뉘앙스들도 자주 보인다. 그 후 학교생활을 하면서 엘파바는 왕따가 된다. (글린다에 의해서) 그때 동생 네사 로즈는 엘파바를 위해서 무엇을 하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른 척하는 거 같기도 하다. 가족이고, 어렸을 때부터 계속 돌봐주던 언니가 고립되고 있는 데도 모른 척한다. 범인인 우리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행태이지 않은가? 네사 로즈는 애초에 이기적인 인물이다. 파티에서 엘파바가 혼자 이상한 춤을 출 때도, 네사 로즈는 호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글린다는 호응하는데) 이기적이다. 아버지의 차별적 대우에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게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 인물이다. 어쩌면, 아버지의 차별적인 태도와 생각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런 인물이니까. 엘파바가 악한 마녀라는 누명을 쓰고 숨어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그 사실은 관심 없고, 그저 언니가 그저 자신을 보살펴주었듯이, 마법을 쓸 줄 알게 되었으면 자기 다리를 고쳐주러 와야지. 왜 날 찾아오지 않는 거야? 그 소중한 아버지가 죽었는데 왜 장례식에 나타나지 않는 거야? (괴롭히고 차별당한 엘파바의 감정은 신경 쓰지 않은 채 말이다) 하는 태도를 보이는 게, 이상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보크에 대해서 권력을 이용하고 심장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등의 극단적인 태도도 네사 로즈가 보여주었던 태도와 인성을 고려해보면, 급작스럽고 급발진이긴 하지만 적어도, 일관되기는 하다.
보크가 글린다에게 고백하러 가야겠다고 말하며 나가는 장면에서 급발진이라 느끼는 분들도 있는 거 같다. 1편에서 보크가 네사 로즈에게 파티에 같이 가자고 한 이유는 순전히 글린다의 말 때문이다. 보크는 처음부터 글린다를 좋아한다. 글린다가 그저 보크를 떼내려고 적당히 한 말 때문에, 네사 로즈에게 파티에 가자고 말한다. 네사 로즈는 그 때문에 오해해서 보크를 사랑하게 된다. 보크는 애초에 네사 로즈에겐 관심 없었다. 오직 글린다 뿐. 문제는 이후에 네사 로즈가 영주 가문이라서 계속 집사처럼 근처에 머물러야만 하게 되었다는 것과 글린다는 보크의 존재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
1편과 2편 사이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 지는 제대로 나오진 않지만, 그래도 꽤 시간이 흐른 듯이 보인다. 그 사이에 엘파바 아버지는 죽었고, 학교를 졸업한 건지 보크와 네사 로즈는 영지에 있다. 그 기간에 계속 보크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근처에 머물면서 눈치만 봤어야 했다. 여전히 글린다를 사랑하면서.
그러고 있는데, 글린다의 결혼 소식을 들으니, 그간의 설움과 글린다를 향한 사랑이 한 번에 터져 나온 게 아닐까. 꾹 눌러둔 감정이 폭발하는 것이기에, 그렇게 급작스럽게 행동이 드러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어떤 이는 엘파바와 피예르가 마주한 뒤, 도망가서 엘파바가 혼자 살던 곳에 왔을 때, 성관계를 맺는 묘사가 말이 되냐고 하기도 했다. 글린다와 결혼식 직전까지 간 것도 알면서, 그 친구를 배신하고 그렇게 관계를 갖는 건 엘파바가 나쁜 인간 아니냐는 주장이다.
난 이건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상황에서 성관계를 안 하면, 동화니까, 영화니까, 조금 완화해준 거라고 본다. 그저 관계를 갖는 게 훨씬 자연스럽다.
첫 번째 이유는 당연하지만, 그들이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1편에서부터 서로의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2편에 와서도 피예르는 엘파바를 위하는 말들을 했다. 글린다와의 결혼식도 결코 그녀를 사랑해서 하는 게 아니다. 처음부터 계속 엘파바를 사랑했다. 엘파바 입자에서도 마찬가지다. 엘파바는 살면서 사랑을 받은 적이 없다. (유일하게 곰인 보모가 챙겨준 게 다이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살던 그녀에게 처음으로 사랑하는 감정과 표정을 보여준 인물이 피예르다. 그런 감정을 키우고 있는 과정에 있는데 사건이 터졌고 생이별을 겪었다. 이전보다도 더 혼자가 돼버린 엘파바는 그 사랑의 감정을 스스로 곱씹으며 견디고 있었을 테니, 사랑의 감정이 더 커져도 이상하지 않다.
두 번째 이유는 상황이다. 우리는 흔히 남녀가 모텔에 같이 있게 되거나, 술자리에 단둘이 있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감정이 생길 수 있음에 대해 이해한다. 그러니까, 연인이 남사친, 여사친과 무언가 하는 것도 경계하는 거 아닌가? 꼭 그런 거 아니어도, 상황이 사람의 감정과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 다시 엘파바와 피예르의 상황으로 돌아와 보자. 현재 그들은 세상에서 동떨어진 곳 (여자가 혼자 사는 집)에 단둘이 도망쳐왔다. 여성이 남성을 집에 초대만 해도, 우린 관계를 맺는 상상을 한다. 그들도 지금 마찬가지다. 거기에 그들은 사랑의 도피를 했다.
엘파바는 사악한 서쪽 마녀가 되어 세상의 미움을 받고 있고, 피예르는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선택했다. 그 선택은 그가 가지고 있던 기사장, 왕자의 지위를 모두 내려놓은 것이고 똑같이 세상의 미움을 받겠다는 선택이었다. 그가 가진 모든 걸 내려놓은 비현실적인 결정이다. 오로지 사랑하는 감정 하나를 위해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내몰릴 선택을 자처했는데, 성관계도 안 가지면 너무 얻는 게 없지 않은가? 많은 걸 내려놓은 만큼 그들의 감정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고, 포기한 지위만큼이나 보상 욕구가 생기는 건 자연스럽다고 본다.
세 번째 이유는, 이전 글에서도 말했듯 위키드란 영화는 엘파바와 글린다의 관계가 점차 가까워지는 이야기다. 결코, 1편에서 진정한 우정 같은 게 완성되어있는 게 아니다. 2편의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우정이 형성된다. 그러니, 그 관계를 가질 때, 엘파바와 글린다가 진정한 우정을 지녔다고 여기면 곤란하다. (후에 서로 손찌검하면서 싸우는 것도 갈등을 통해 돈독해지는 과정이다) 그런 글린다를 생각해가면서, 엘파바에게 자신의 사랑까지도 포기하라는 건 너무 가혹하다. (엘파바가 가진 유일한 것인데?)
단지, 동화 같은 이야기에서 성관계했다는 묘사가 나온다는 게 다소 놀랄 순 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영화 보러 갔는데 웃통 벗고 있는 남자가 여자를 안고 침대에 누워있는 장면이 나오면 당황스러운 건 인정한다. 그래서 굳이 넣지 않아도 되는 장면이었을 거 같긴 하지만, 그렇게 그들이 관계를 갖는 게 이야기적으로 갑작스러운 건 아니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