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출처보다, 말이 닿는 곳에 대하여
스즈키 유이의 장편소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아쿠타가와상 수상과 이동진 평론가의 추천으로 국내에 알려진 작품이다.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티백을 비추는 아침 햇살 같은 표지는, 이 소설이 지닌 정조를 정확히 예고한다. 잔잔하고 우아하며, 조용히 스며드는 이야기.
소설의 중심에는 일본의 독문학자 히로바 도이치가 있다. 그는 식당에서 우연히 본 티백에 적힌 문장—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을 보고 이 말이 과연 진짜 괴테의 것인지 의문을 품는다. 학자에게 출처란 생명과도 같다. 그렇게 시작된 ‘출처 찾기’는 단순한 사실 확인을 넘어, 말과 진실, 그리고 삶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이 소설은 스펙타클하지 않다. 갈등은 작고, 전개는 느리며, 사건은 조곤조곤 이어진다. 그러나 그 잔잔함 속에서 독자는 묘한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힐링 소설에 가깝다고 느껴질 만큼, 이 작품은 독자를 다그치지 않는다.
작품 전반에는 수많은 명언과 인용이 등장한다. 주인공 도이치와 그의 가족, 주변 인물들 모두가 학자라는 설정은 이러한 인용의 홍수를 자연스럽게 만든다. 물론 이로 인해 다소 현학적으로 느껴질 여지도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인용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의미를 품고 있고 다시 읽어가며 곱씹을 가치가 있다. 언젠가 다시 읽어봐야 겠다.
도이치는 출처를 확인하지 못한 채 방송에서 해당 문장을 인용하고, 이를 스스로 ‘범죄’에 가깝다고 느낄 만큼 학자적 엄격함에 시달린다. 그러나 소설이 끝내 묻는 것은 이것이다.
그 말이 정말 괴테의 것인게 중요한가?
이 질문은 소설의 구조를 통해 한 번 더 강조된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액자식 구성으로, 도이치의 사위가 장인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뒤 소설로 엮었다는 설정을 취한다. 이 장치는 독자로 하여금, 우리가 읽고 있는 이 모든 ‘사실’조차 누군가의 해석과 각색일 수 있음을 인식하게 만든다. 진실은 언제나 단일하지 않다.
소설 속 학자 시카리는 명언이 어떻게 전승되고 왜곡되는지를 이야기하며, 유명인의 이름이 말에 권위를 부여하는 현실을 냉소적으로 지적한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라는 제목 자체가, 출처를 모르는 말은 일단 괴테에게 돌려버리는 농담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이 작품의 문제의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꿈이라는 문학적 장치 또한 인상적이다. 도이치는 꿈속에서 괴테를 만나고, 그곳에서 이런 말을 듣는다.
“실생활에서 따오든 책에서 따오든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어.
제대로 사용했는지 아닌지, 그것만이 중요하지.” -117쪽
이 문장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에 가깝다. 말의 기원보다, 말이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가가 중요하다는 선언이다.
도이치의 스승 마나부가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의 문구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이 어두운 시대에는 자네가 들려주는 말이 더더욱 중요해지네.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좋은 말을 계속 들려주게” -93쪽
프롤로그의 마지막에서 도이치는 이렇게 해석한다.
“설령 좋은 말은 모두 연기라 해도 그 안에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러 차례 연습하며 입에 붙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움을 획득하면 마침내 그 의미가 드러날 것이다. 그렇게 믿는 다면, 말은 전부 미래로 던져진 기도다.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자신이 스승에게 건네받은 화두에 대한 해석의 한계다.” -239p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결국 말의 ‘진위’를 가려내는 소설이 아니다. 이 작품은 말이 어디에서 왔는가가 아니라, 말이 삶과 어떻게 맞닿는가를 묻는다. 학문적 엄격함이 무너지는 순간들, 원칙이 허망해지는 장면들 속에서 작가는 조용히 말한다. 중요한 것은 정확함 그 자체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천되는 의미라고.
“전 학자들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시가 생활에서 나오지 않고 책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듯해서요.”- 117p
“ ‘네 노력은 사랑 속에 있어야 하고, 네 생활은 실천 속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네. 이것만 잊지 않으면 지금으로선 문제가 없어. 이건 괴테의 말이지?”-154p
좋은 말은 출처에서 오지 않는다. 사랑 속에 놓인 노력, 실천 속에 깃든 생활에서 나온다.
카뮈가 했던 “원칙은 큰 일에만 적용하고, 작은 일엔 연민으로 충분하다”말 처럼, 엄격하게 이것저것 따지는 것 보단,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 생활에 맞닿아있는 본질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