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리뷰] 성해나- 두고 온 여름
[다 읽은 사람을 생각하며 글을 씁니다. 책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해나 작가의 ‘두고 온 여름’을 읽고 며칠간 책을 못 읽었다.
읽고 난 뒤 느낀 녹진한 여운이 내 발을 붙들어, 그 순간에 머물게 했다.
책은 물과 같아, 기본적 성질이 차갑다고 했다. (이동진 평론가의 말이다) 이에 동의하는 바다. 차가움은 근본적으로 이성의 것이다. 그래서 이제껏 책을 읽으면서 감명받고 여운을 느끼고, 생각에 잠긴 적은 많지만, 감정적으로 동요되진 않는다.
처음으로, 이 소설을 읽으며 매우 감정적으로 되었다. 슬펐고 눈물이 났다. 길지 않은 소설임에도, 중간에 책을 덮어야만 했다. 글씨가 보이지 않게 되었기에.
책을 읽고 나면 감상을, 서평을 남기는 편이지만 이 책은 하지 않으려 했다. 책이 그렇듯, 글도 이성적 영역이라 여긴다. 소설의 표현, 이야기, 인물의 행동을 이성적으로 해석하고 말하는 게, 서평이니까. 하지만 내가 느낀 건 결코 이성의 영역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순수한 감성의 영역이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가슴 속에서 갑자기 솟구쳐 올라온 슬픔과 눈물을 그대로 감정으로써, 나의 기억으로써 온존하고자 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이성의 영역으로 살짝 물들여야만, 이 녹진한 여운을 내게서 떨어뜨려 놓을 수 있을 듯하다. 그래야 다음 책을 집어들 수 있으리라.
소설은 기하와 재하의 시점에서 서술되고, 이 둘의 이야기를 다룬다. 각각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하면서 가족이 된 사이다. 피가 이어지지 않은 형제. 18살, 10살에 갑자기 새어머니와 동생이, 새아버지와 형이 생겨버린 인물.
사실 이 소설의 내용은 결코 독특하지 않다. 오히려 평범하다. 18살에 새어머니가 생긴 기하는, 다소 비딱하고 냉소적이다. 그에 비해, 10살인 재하는 친부가 너무나 나쁜 놈이었기에, 다정한 새아버지가 좋다. 이런 인물들의 태도는 자연스럽다. 그럴 수 있다고 충분히 이해된다. 새어머니와 새아버지는 두 분 다 새롭게 만든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짠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가정을 이루기 위한 그들의 고투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너무 현실적인 결론은 마음 한 켠을 쓸쓸하게 한다.
기하와 재하의 태도가 모두 너무 마음이 쓰였다. 기하가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과, 재하가 비정엔 익숙하지만, 다정에는 그렇지 못한 것.
“비정에는 금세 익숙해졌지만, 다정에는 좀체 그럴 수 없었습니다. 홀연히 나타났다가 손을 대면 스러지는 신기루처럼 한순간에 증발해버릴까, 멀어져버릴까 언제나 주춤.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습니다. 가감 없이 표현하고 바닥을 내보이는 것도 어떤 관계에서는 가능하고, 어떤 관계에서는 불가하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태어난 것일까요.” -58쪽, 재하.
빚이 있던 어머니와 이를 갚아준 새아버지. 그리고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오면서, 자연히 몸에 익힌 어른스러움은 10살의 어린 아이인 재하에게 가혹하다고 느꼈다. 그런 걸 몰라야 할 나이인데…
“어머니는 밑천 없이 새아버지와 합가한 것을 두고두고 죄스러워했고, 새아버지나 기하 형에게 누를 끼치면 안 된다 못 박곤 했습니다. 어렸지만 저도 어느 정도는 체감했던 것 같습니다. 기하 형이 보호자로 매주 병원에 동행하는 것이나 새아버지가 대주는 병원비가 일종의 채무와 같다는 것을요. 혈육 사이라면 자연스러울 어떤 책임이나 보살핌이 저와 그들 사이에선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요.” -56쪽, 재하
따스한 다정이 있는 가정에 합가했음에도, 여전히 눈치를 살피는 그 어린아이를 상상했다. 어떤 소설이었는 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건 곧, 권력을 상징한다고 이야기했던 소설이 떠올랐다. 반대로 말하면, 눈치를 본다는 건. 그만큼이나 권력이 없다는 뜻이다. 하나의 가족이 되어도, 여전히 눈치를 봐야만 하는 건. 그들 사이에 여전히 권력관계가 존재한다는 거다.
소설을 더 읽을수록, 이 사실이 참 서글프게 느껴졌는데. 새아버지와 새어머니 두 분다 보이지 않는 그 관계를 깨트리기 위해, 노력을 다함에도 결코 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재하는 심한 아토피를 지녔다. 나도 아토피가 있다. 학창 시절엔 정말 심해서, 진물과 피가 흐르고 밴드로 계속 붙이고 다녔다. 그래서 좀 더 인물들에 더 몰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재하는 아토피 때문에 병원에 갔는데, 그때마다 기하가 데리고 다닌다. 병원에서 나오면 기하와 재하는 대학로 중식당에서 중국 냉면을 먹는다.
“버터를 섞어 만든 땅콩 소스는 아무리 저어도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굵직한 덩어리 그대로 면에 엉겨 붙었지요. 제가 힘겹게 젓가락질하는 모습을 빤히 보다 형은 그릇을 이리 줘보라 일렀습니다.” -61쪽, 재하.
이 중식당에서의 장면은 이후에 재하가 다시 회상하곤 한다. 그들이 처음부터 가족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기하 형이 좋아하는 중국 냉면의 맛이 적응되지 않아, 땅콩 소스를 잔뜩 넣어서 먹는 재하. 하지만, 재하는 그 땅콩 소스를 스스로 풀지 못한다. 이는 기하 형이 좋아하는 걸 먹어야만 했던 그들의 권력관계를 상징하며, 또한 이 관계를 풀 수 있는 힘은 기하에만 있음을 보인다. 마치 땅콩 소스가 재하 손에는 풀리지 않아도, 기하 손에는 풀렸듯이 말이다.
풀리다. 라는 단어가 이처럼 중의적 상징으로 읽힌 건. 과한 의미 부여일까. 이야기의 전체에서,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던 건 기하가 맞다. 이후에 대략 15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다시 기하와 재하가 재회하는데, 이때에도 그들 사이의 연결을 유지할지 말지를 정할 수 있던 건, 여전히 기하였다. 기하가 먼저 찾아왔으며, 연락처를 주지 않은 것도 기하였다. 어린 시절에도, 성인이 된 후에도 여전히 기하에게 키가 주어져 있었으나, 기하는 열쇠를 돌리지 않는다.
기하와 재하. 그들이 처음 만난 순간, 형성된 보이지 않는 권력관계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도 사라지지 않는다. 더욱 안타깝고 쓰린 것은, 그 누구도 악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실이라는 한계와 자존심, 자신감 같은 비루한 인간적 감정의 결핍들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러가 버렸다는 거다. 오히려 부모들은 악의를 품은 존재가 아니라 선의로 가득한 사람들이어서, 더욱 쓰리게 한다.
눈물을 흘린 부분은, 첫 번째 재하의 이야기를 듣던 중이었다. 그 아이가 눈치를 보면서도, 따스한 새아버지의 다정을 느끼고 기하 형이 좋으면서도 거리를 두게 되는 상황에 몰입하면서도 동시에 기하가 보여준 냉소적인 태도도 너무나 이해가 되었기에. 기하와 재하의 면모들을 보면서, 난 내 가족을 떠올렸고, 동시에 나를 떠올렸다. 기하의 냉소, 재하의 수긍. 전부 내 이야기 같았다. 새어머니는 내 어머니 같았고, 기하와 재하가 가진 한계들은 전부 나였으니. 죄송스럽고 서글프며,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듯한 씁쓸함이 다가온 걸까. 이렇게 설명하며 글을 쓰곤 있지만, 사실 여전히 적확히 어떤 감정이 솟구쳐서 눈물을 흘린 건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그저 감정으로, 기억으로 두려했다.
기하의 아버지와 재하는 이상한 사진을 찍는다. ‘흑백의 풍경 사진들’, ‘죽은 곤충이나 영양분이 없어 마른 나무, 뱀의 허물’, ‘괴괴한 사진들’ 사진이란, 기록을 남긴다. 그 순간을 포착하고 기억한다. 그들은 왜 하필이면 저런 걸 찍은 걸까. 쓸모가 다해버린 것들. 지나가 버린 것들. 그런 것들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싶어서지 않을까. 세상은 앞만 보고 달려 나가는 사람들을 좀 더 우대해준다고 느껴진다. 끊임없이 자기 계발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의 노력을 훌륭한 것으로서 치하하며, 우리가 이정표 삼아야 할 이상적 모델로서 사회는 다룬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때론 뒤돌아보는 행위도, 실패한 과거도 소중한 것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굳이 실패한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더라도 말이다.
재하는 마지막에 이르러,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기하에게 편지를 쓴다. 지나간 날의 인연. 실패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재하는 편지를 쓰며 다정했던 새아버지, 그리운 어머니, 미소 짓는 기하 형을 모두 떠올린다. 그리고 그 누구도 더이상 슬프지 않기를 바란다.
현실에서도 수많은 인연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어떤 인연은 악연으로 남고, 어떤 인연은 잊혀져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누군가는 상처만 남겼고, 누군가는 지나치게 다정해 마음을 아리게 한다. 상대방의 실수로 상처받은 경우도 있지만, 내가 잘못해 상처를 준 인연도 적지 않다. 이제는 모두 멀어져 사라져버린 듯한 그 모든 관계들이, 재하가 그랬듯 더 이상 슬프지 않았으면 한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인연이라 해도, 고요히 행복하길 희원한다.
“누가 이 편지를 받을까요.
재하야, 다정히 부르며 이마를 쓸어주는 아버지일까요. 희고 따듯한 빛이 새어 들어오는 창가에 서서 해바라기를 하는 어머니일까요.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다 가만히 미소 짓는 형일까요.
누구든 그곳에서는 더이상 슬프지 않기를 바라며 (중략) 편지를 건넸습니다. 미처 못다 한 말이 봉해진 편지를요.” -143쪽, 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