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대상이 달라진다.
아들 딸 뻘되는 젊은이들과
함께 일하면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그들이 듣는 최신 음악을 거저 얻어듣고
그들에게서 스며나오는 생동감을
내 눈에 매일 담을 수 있는 것이다.
학업적 지식이나 직업적 경험과는 상관없는 것들이다.
그냥 그 사람들 자체에서 느껴지는 감동들이 있다.
어디가면 지금의 나의 나이인 사람에게는
말도 걸어주지 않을 나이뻘의 사람들이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발자국 걸음을 떼고 싶어
일어났다가 주저 앉기를 셀 수 없이 반복하는
아기의 모습에서는
어떤 걱정이나 고민도 볼 수 없다.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는 모습이 주는
감동이 있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어르신들도 마찬가지이다.
젊었을 때
배우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배우지 못했던 것들.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을 때
할 수 있는만큼 하시는 모습 자체를 보면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기술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학습해야 할 지식을 따라잡기 버거워
직업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하고 다녔는데.
지금은 그 때보다 더 빠르게 모든 것이 변한다.
새로운 것을 익히고 있는 와중에,
방금 익힌 것들은 순식간에 쓸모없어진다.
다윈 선생님이 얘기하셨던
"Survival of the fittest"처럼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개체가 살아남는다.
배워야 할 것은
지식과 경험보다도 태도가 된 것 같다.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