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열흘 후기
2년 동안 두려워했던 복직. 어렴풋, 그럴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역시 버틸 만하다.
비록 복직 전날까지 부서가 정해지지 않고, 복직 날짜마저 잘못 알려준 회사지만 기대 이상으로 환대해준 새로운 팀 사람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타이밍 좋게 나온 보너스로 갑작스럽게 애사심이 차올랐다.
내가 복직을 두려워했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내 커리어가 망가질 우려.
나는 8년간 마케팅을 해왔고, 휴직을 하면서도 마케팅 분야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나의 회사는 대기업이라 '안정적'이라는 메리트가 있으면서도, 다양한 부서가 있어 어디로 갈지 모르는, 그러니까 내 커리어만큼은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게다가 복직 직전까지 어디로 배치될지 알려주지 않는 회사라니. 나의 불안감은 극에 다다랐다.
너무나 다행히도, 인사팀이 내 커리어를 조금 고려해 줬고, 여러모로 타이밍도 괜찮았다. 이제까지 해 온 분야와는 조금 다르지만 그래서 배울 것이 많고 응용할 것이 많은 부서에 배치됐다. 나와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같은 팀에, 옆 팀에, 같은 층에 제법 있다. 정말 다행히도 내 커리어는 망가지지 않았다.
심지어 회사에서 근무 시간을 각자의 상황에 맞게 조율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9-6 근무가 일반적이었던 회사였는데, 전보다 눈치 보지 않고 8-5 근무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는 어느 날 12시간 근무하면, 어느 날은 4시간만 근무해도 될 정도로 자유로운 분위기다. 여전히 보수적인 부서도 존재하지만, 운 좋게 내가 배치된 부서는 아주 자유롭다.
두 번째, 불편한 사람들과 불편한 대화.
나의 회사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대부분은 나의 되바라진 성격 때문일 것이다. 나는 평생 둥글둥글한 성격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육아휴직 2년 동안 마음속 깊이 자아성찰과 참회를 반복해 왔다. 쓸데없는 것에 고집 피우는 아기를 보며, 지금껏 팀장님들이 날 이렇게 봐 왔을까, 진심으로 반성했다. 팀장님의 말에 반박하며 내 의견이 맞다 고집부렸던 나의 과거들이, 육아의 시간 곳곳에서 스쳐 지나갔다.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나는 윗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한 직원이었다. 그래서 사람이 불편했고, 그들과의 모든 대화가 불편했다. 고집은 세지만 너무나 귀여운 우리 아기와 떨어져, 못생기고 성격 나쁜 아저씨들과 부대끼며 일해야 하는 환경이 너무나 싫었다.
나의 자아성찰과 참회, 반성. 그리고 '복직뽕'이 더해지면서, 생각보다 아저씨들이 꼴 보기 싫지 않았다. 상사들이 날 미워하지 않게 '가급적 착하게 살겠다'는 은밀한 공약도 나 홀로 세워두었다. 회사는 결국 윗분들의 입맛에 맞게 일하되, 가끔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내는 '적절히 나대는 직원'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회사가 원하는 인물이 되어보기로 했다. 불편하디 불편했던 환경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느끼려면 그 길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이 원하는 직원을 연기할 것.
세 번째, 아이와의 이별.
육아맘에서 워킹맘으로 전환되면서 가장 큰 문제는 아이와 떨어지는 시간이다. 엄마와 온종일 붙어있다가, 이제는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만나게 되면 아이가 얼마나 힘들어할까, 하는 걱정이다.
나는 복직을 고려하여, 그리고 나의 자유를 위하여 아이를 일찍이 어린이집에 보냈다. 첫 1년은 하루 1시간, 3시간 정도만 보내다가 올해 들어서는 하루 6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스스로 눈이 떠질 때 즈음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어린이집에서 오전 간식, 점심, 낮잠, 오후 간식을 먹고 집에 돌아오는 일정으로 두 돌 무렵까지 살아왔다.
이제 엄마의 복직으로 아이의 일상이 조금 바뀐다. 이제 아침에는 타의에 의해 눈을 떠야 하고, 아침은 더욱 간단히,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집을 나선다. 1등으로 어린이집에 도착해서 조금 기다리면 또래 친구들이 하나둘 도착한다. 평소처럼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일주일에 3번은 하원이모가 평소와 같은 시간(오후 4시)에 데리러 온다. 일주일에 2번은 평소보다 1~2시간 늦은 시간에 엄마가 데리러 온다. 이모와 하원하는 날에는, 엄마보다 체력이 좋은 이모가 놀이터에서 힘껏 놀아주고 집에 돌아가서는 간단한 간식을 챙겨주고 책을 읽어준다. 이모가 태워주는 비행기는 몇 번을 타도 재밌다. 엄마가 데리러 오는 날은 하늘이 어둑해질 무렵 집에 가게 되는데, 목소리는 밝지만 어딘가 피곤해 보이는 엄마가 평소보다 허용적으로 간식을 마구 준다.
선배들의 말대로, 아이는 나의 복직과 동시에 아프기 시작했다. 복직한 당일에는 열도 나고 기침도 심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기침 달고 다니며 모두의 동정 어린 시선을 받던 우리 아이는, 컨디션만큼은 최고였다. 평소보다 조금 쉽게 피곤해하긴 했지만 항상 울음이 짧고, 쉽게 웃었다.
우리 아기의 일상은 복직 전과 제법 달라졌으나, 생각해보면 별 차이 없다. 달라진 점이라면 아침 1시간, 오후 두어 시간. 하루에 총 3시간 정도 되는 시간이다. 물론 엄마와 함께 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매일 엄마와 함께 하는 저녁식사는 꽤나 달콤한 것이다. (달달한 간식을 평소보다 많이 주었기 때문)
단 한 명도 빼지 않고, 모든 워킹맘 선배가 말했다. 육아보다 회사가 좋다고. 심지어는 퇴근보다 출근이 좋을 때도 있다고. 복직 전에는 그 말이 1%도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리 육아가 힘들다고 한들, 회사보다 힘들까.
복직 후 열흘이 지난 지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아직은 '육아의 어려움'보다 '출근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점에서, '조금' 동의하는 수준이다. 생각보다 아이는 불안해하지 않았고, 나 역시 기대 이상으로 회사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고, 의외로 아이에게 미안하지 않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먹이는 아이의 영상을 보면 '엄마가 곁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생각보다, '이렇게 엄마에게서 멀어지는 연습을 해야지'라는 생각이 든다.
육아의 목적은 '양육자로부터 독립해, 스스로를 길러내며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이니까. 그리고 내 삶의 목적 역시 '아이를 잘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잘 길러내어 내 삶의 가치를 찾는 것'이니까.
나는 항상 최악을 상상한다. 혹여 생각했던 것보다 좋지 않은 결과를 마주하면 너무나 당황스럽고 절망스러울 테니, 미리 최악의 상황을 상상함으로써 예방주사를 맞는 것이다. 나의 현명한 예방주사 덕에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현재를 맞이했다.
나의 2년 간 육아 휴직 기간은 참으로 행복했다. 남들이 겁주던 것만큼 힘들지 않았고, 살 만했다. 평생 이렇게 살아도 좋을 정도로, 복직으로 인해 내 안온한 삶이 끝나는 것이 서운하고 심지어는 두려울 정도로.
나의 2년 만의 복직은 '행복'까진 아니지만 제법 만족스럽다. 어찌 되었든 내 삶은, 내 평화는, 내 행복은 이어진다. 갑자기 나락으로 가지 않는다. 다 사람 사는 곳이고,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 싶고. 그럭저럭 살 만하다. 갑자기 변화한 내 일상이 당황스럽고, 이따금씩 사회성 떨어지는 나의 실수들이 이어지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우당탕당 최대리의 회사생활은 굴러간다. 항상 그러했듯, 나의 삶은, 우리네의 삶은 살 만하다.